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삭 Sep 15. 2023

소돔과 고모라

「심판」, 1999

긴급속보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심판」 , 1999

박찬욱 감독 단편


  시니컬한 연출과 노골적인 해학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현실을 풍자한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심판」입니다.


  30분도 채 안 되는 길이에 꽤 풍부한 감상이 떠오르는 영화이자 과거의 잔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함께 관람했던 몇몇 사람들 중 누구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해 저리 치우라고 하기도 했고, 또 누구는 깊게 생각에 잠긴 듯 보였던 기억이 있기도 합니다. 동시에 모두가 이 영화에 대해 자신의 감상을 깔끔하게 다듬지 못하곤 했으며.





I

줄거리


  삼풍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건물 '플러스 백화점'이 붕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이 사건은 뉴스에 보도되는 등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상태.


  사망자 중 연고자를 찾을 수 없었던 여성은 오래전 딸이 가출했었다고 주장하던 부모에게 인도되었고, 죽어서야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여성의 염을 위해 영안실로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연극처럼 한 공간에 모인 장의사, 시신의 부모, 공무원, 기자, 그리고 시신

  하지만 시체의 얼굴을 확인한 장의사가 이 여자는 가출했던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며 이야기는 꼬이게 됩니다.


  [이 여성의 부모는 누구인가?]가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이자 이러한 플롯의 설정 자체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꼬집어주기도 하죠.


  결국 영화 내내 누구 하나 확실한 증거 없이 고성과 다툼만 오갈 뿐 난장판이 되어갑니다. 신이 그들의 죄악을 지켜보았는지 갑자기 지진이 발생해 아수라장이 되고,


  기자의 실수로 전등이 물난리가 된 바닥에 떨어지며 시체를 지키려던 장의사를 제외하고 인물 모두가 감전사하게 됩니다.


  장의사는 고요해진 영안실에서 위(심판자)를 바라보며 영화는 막을 내리고.





II

진짜로 무너지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나

부조리를 풍자하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답게, 대놓고 웃을 순 없지만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근무시간 중에 맥주를 달고 사는 장의사, 딸은 자신을 빼닮았다며 붕괴로 훼손된 시체에 나란히 얼굴을 대보는 두 아버지.


  딸의 다리에 반점이 있었다는 장의사의 증언을 확인하려던 찰나 붕괴 사고로 잘려있는 시체의 오른쪽 다리, 대뜸 시체를 옆에 두고 벌이는 술판 등.


  인물들의 행위만이 눈에 보일 뿐 우리가 타인의 속내를 절대 알 수 없듯이 그들의 동기와 내심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모호하기만 하죠.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어 모자이크 처리

  장의사는 맥주를 달고 살며 과거에도 엉뚱한 시체를 자신의 딸이라고 우겼고, 죽은 여성의 부모는 기자가 데려온 친딸로 인해 그 진의를 의심받죠.


  공권력을 표현하는 공무원은 사건을 빨리 끝내고 번복의 문책을 피하기 위해 DNA 검사를 탐탁지 않아 했고, 언론을 표현하는 기자는 이슈몰이에 미쳐 언행이나 행동을 인간답게 예의 차리지 않습니다.


동시에


장의사는 마지막 장면에서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긴박한 와중에

유일하게 시체를 지키려던 것으로 보아 정말 죽은 여성의 아버지일 수도 있습니다.


부부에게 버려진 딸이었다던 여자도 결국 기자가 데려왔기에 그가 고용한 사람일 수도 있고요.


결국에


이게 다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는 아무도 [이 여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인물 자신들의 욕심에 미쳐 문제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관객들 또한 이 여자는 누군지, 멀쩡한 백화점은 왜 무너졌으며 중간중간 삽입되는 국가의 비극들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화두의 본질이란 소년의 유무죄가 아닌 질문을 던져보는 행위인 것처럼 이 영화는 우리가 진정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오히려 숨김으로써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진이 발생해 모두가 당황한 채 본능에 몸을 맡기던 순간. 진실이자 그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에 영화는 컬러로 전환되죠. 이 아름다운 세상(법정)을 모독했다며 집행되는 심판.


외면된 비극들




III

소돔과 고모라



  성경에서는 수많은 인간이, 크게 보면 전 인류가 멸망하는 순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모세의 홍해, 노아의 방주 등 신의 창조물이 창조자를 의심하고 자신들의 존재가치에 취해 탐욕과 이기심을 키우다 심판자인 신에게 모조리 작업당하는 레퍼토리.


  그 에피소드들 중 소돔과 고모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의 도시였던 소돔과 고모라는 신에 의해 심판당하며 멸망하고 사람들은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렸으니까요.


  우리가 사는 삶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매년 경고되는 종말과 한숨처럼 내뱉어지는 말세에 익숙해져 절벽 앞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힘든 점을 고백하는 것은 어느새 나약함의 증거가 되었거든요.


  하다못해 의견만 표출해도 결국 자신이 자초한 일 아니냐며 비꼬는 것이 당연해졌고 그러한 것이 현실적인 태도로 여겨지는 요즘입니다.


  종교적인 종말과 신의 심판을 맹신하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동시에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소중하게 살아가지는 않는데.


  결국 이런 굴레도 심판이라고 봐야 할까요?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이 현실 속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기시감도 우리에게 주어진 불신의 죄처럼 보입니다. 결국 그냥 살던 대로 살았는데 멸망해 버리는 억울한 개인들.

매거진의 이전글 묻습니다, 아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