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2014
디테일에 목숨 거는 감독, 언제나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 「인터스텔라」입니다.
「인터스텔라」는 방대한 우주를 실감 나게 구현한 상상력과 인류의 운명을 두고 벌어지는 사투, 그리고 감독의 철학이 잘 버무려진 명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큰 실수를 했던 과거의 자신을 말리는 이 사진 역시 밈으로 널리 사용되었죠. 사실 흥행의 또 다른 보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내 요소가 밈이 되느냐.
스크린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우주의 압도감과 그러한 시각 효과를 훌륭히 이끌어주는 한스 짐머의 OST, 몸부림치는 작은 존재들의 처절함이 잘 전달되는 작품인데요.
흥행과 평가 역시 대성공을 거두며 양질의 작품임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세계 각국의 정부와 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미래가 다가온다.
지난 20세기에 범한 잘못이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을 불러왔고, NASA도 해체되었다.
이때 시공간에 불가사의한 틈이 열리고, 남은 자들에게는 이곳을 탐험해 인류를 구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인류라는 더 큰 가족을 위해,
그들은 이제 희망을 찾아 우주로 간다. 그리고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중에는 어린 자식들과 노인을 지구에 두고 가야 했던 이가 있었으니.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라진 햇빛과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먼지 폭풍.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들만이 인간의 유일한 식량이었으나 그마저도 고갈되어 가는 상황이 닥칩니다.
한 눈 팔면 쌓이는 먼지들 때문에 아이들은 채 자라기도 전에 폐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꽤 오랜 시간 대두되어 온 환경오염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 같죠.
슬하에 1남 1녀를 둔 조셉 쿠퍼에게 남은 것이라곤 자식들과 늙은 장인어른, 그리고 날이 갈수록 황폐해져 가는 농장뿐.
과거 NASA가 폐쇄되기 전 엔지니어, 테스트 파일럿으로 근무했던 그는 여전히 과학과 기계를 그리고 모험을 잊지 못합니다. 무인 드론을 발견하자 흥분하며 차로 옥수수 밭을 짓밟고 쫓아가기까지.
이 장면은 작품 전체와 우리 인간의 모습을 관통하는 메타포를 가집니다. 우리보다 한 단계 더 위에 있는, 미지의 존재를 쫓아가며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곳을 질주하며 탐험하죠.
그러던 어느 날, 쿠퍼는 막내딸 머피의 방에서 기현상을 발견합니다. 미처 닫지 못한 창문으로 들어온 모래가 좌표를 만든 것을 발견하는데요. 방에서 책을 떨어뜨리는 유령이 있다던 머피의 말을 상기한 채, 쿠퍼는 좌표가 표시하는 주소로 찾아갑니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전 직장이자 폐쇄됐다던 NASA. 그들은 소수정예만이 모여 비밀리에 인류 절명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파일럿 경험이 있던 쿠퍼는 NASA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우주비행사로 참여하게 되죠.
회생 불가한 지구 대신 인간이 살 수 있는 제2의 행성을 탐사하고 인류를 이주시킨다는 계획.
당연하게도 저 새카만 우주에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만한 위험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노릇이기에 막내딸인 머피는 자신을 떠나는 아빠를 애절하게 잡지만, 자식들이 지구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걸 바라지 않았던 쿠퍼는 마지막까지 토라져있는 머피를 뒤로 하고 우주로 떠나게 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언젠가 한 번 이런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간 문명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묶고 때로는 잘라내며 압축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는 인간의 가장 큰 두 가지 면모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인간 각각의 개체는 모두 생각하는 것이 달라 부딪힌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그들은 '답'으로 귀결되는 합의점을 찾아 지금의 세상을 건설해 온 것.
다만 그 합의는 언제나 의견들의 교집합이기에 희생당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당장 자신의 탐사 행성이 이주 조건에 맞지 않으면 버려질 운명이었던 세 탐사자들(만, 에드먼즈, 밀러)이 그러하고,
작품의 반전 요소였던 플랜 B의 희생자들. 즉 과일의 곰팡이처럼 떨어져 나가 지구에서 죽어가야 할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스텔라」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자 지구의 생명체 중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또 동시에 자신이 우주에서 먼지나 다름없음을 인지하는 유일한 존재'임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각인시킵니다.
앞서 쿠퍼 가족이 옥수수밭을 짓밟으며 드론을 쫓아가는 장면을 두고, 작품을 관통하는 인간의 습성을 메타포로 삼았음을 언급했는데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을 넘나들며 나를 앞지르는 미지의 것을 쫓아갑니다. 인간에게 귀중한 식량이 되어준 옥수수밭도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트럭도 인간들이 만들어낸 천재적인 발명품이지만요.
탐사는 미지未知의 영역에 발을 딛는 것이고, 탐구는 그 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답'에 대한 미지성을 탐사하고 곧 탐구해 내며 치열하게 다투는 의견들의 합의점을 찾고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동물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종속되어 있고,
시간은 중력의 손아귀 안에 있으며
곧 중력이 존재를 만든다.
중력은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꼭 어느 한 곳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내가 그것에게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죠.
이 작품 내에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 '가르강튀아'라고도 불리는 블랙홀의 주변에선 중력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해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시간을 초월하며 모든 착륙과 전진을 만들고, 처박혀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 중력과 참 닮아있는 것이 있는데요.
사랑입니다.
작 중 아멜리아는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이유로 에드먼즈 행성을 먼저 탐사하고 싶어 했습니다. 연료가 부족해 모든 행성에 가볼 수 없는 상황임에도 말이죠.
과거 에드먼즈의 연인이었던 그녀는 에드먼즈가 아직 살아있을 일말의 가능성을,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연료로 삼아 그곳에 가려고 합니다.
언뜻 보면 <인터스텔라>는 과학과 이성의 개념에서 해결을 도모하는 듯 보입니다. 방정식을 풀기 위한 끝없는 노력, 침착한 탐사와 사적인 감정을 앞서지 못하는 공리가 그러하죠.
그러나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인과는 각자의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쿠퍼가 가족들을 두고 떠나야 했던 이유, 톰이 농장을 끝까지 지켜야 했던 이유, 연료가 부족한 우주선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쿠퍼가 희생해야 했던 이유.
쿠퍼가 머피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 머피가 쿠퍼의 정보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결국 브랜드가 제2의 지구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
딸 머피를 향한 쿠퍼의 사랑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머피의 사랑
에드먼즈를 찾아 헤매던 아멜리아의 사랑
아멜리아를 걱정했던 존의 사랑
굳건하게 농장을 지킨 톰의 사랑
목숨을 걸고 블랙홀에 들어가 정보를 전달한 '유령' 쿠퍼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인류를 구하려던 과학자 머피
에드먼즈 행성에 가려던 연인 아멜리아
지구를 버렸다는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었던 아버지 존
농장을 지켜 머피가 유령에게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한 톰
「인터스텔라」는 중력이란 요소와 사랑을 일치시키며 인간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한 사랑을 말하고자 합니다. 만물과 차원을 불문하고 나에게로, 더 나은 미래에게로 끌어당기는 힘.
인간은 가끔 과거에만 존재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누군가를 마음에 담기도 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내게 끌어당기고자 하는 힘의 영향으로 함께 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한 경험을 하고요.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엔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라는 채플린의 연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언제나 양립 불가능한 가치를 영화에 집어넣는 걸 좋아하는 놀란은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죠.
과학과 숫자, 우리가 차가워지도록 설득하는 것들과 사랑처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힘을 통해 우리를 무모하게 만드는 것들.
과거와 미래, 공간의 위치와 상관없이 인간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작품 속의 모든 것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블랙홀 속 머피의 방을 가득 채워 넣은 고차원의 존재들 역시, 중력처럼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이 아니었다면 지구가 멸망해 존재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사랑이 언제나 내게 흐르는 시간과 서 있는 공간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