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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예술 Aug 16. 2023

38평 좌불안석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

엄태화 감독 /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주연


우린 선택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엄태화 감독의 작품, 「콘크리트 유토피아입니다. 


  작품은 갑자기 일어난 대지진 이후 운 좋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를 주 무대로, 인물들의 사투와 선악을 보여주는 인간 군상극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2」 같은 재난 영화라기보단 모든 게 무너진 폐허 속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궁극적으론 '나'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며 부딪히고 절벽의 끝에 다다르는 디스토피아 장르에 더 가까운데요.


  오랫동안 수작이 나와주지 않았던 한국 영화계 디스토피아물의 웰메이드 작품이며 출연진들의 열연과 감독의 뭉툭한 듯 섬찟한 연출이 백미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시놉시스

전국을, 어쩌면 전 세계를 박살 낸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이전의 삶이 춘몽에 지나쳤다는 듯 일순간에 무너진 모든 것.
살벌한 추위 속 기적처럼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의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들만의 영토를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침입해 오는 외부인, 언제 다시 흔들릴지 모르는 대지와 서로 간의 불신.

정말 '선택받았다'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영광스러운 춘몽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곳을 유토피아로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I

주요 인물

줄거리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주요 인물 세 명이 등장합니다.

주요 인물

 김영탁 (이병헌 扮)


  영화 초반부 갑자기 등장해 화재를 진압한 주민. 자신의 집도 아닌 호수의 화재를 막으며 그 이유로 "우리 아파트 무너지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한 탓에 알게 모르게 주민들의 신임을 얻어 주민대표로 임명됩니다.


  그 후로도 방범대를 꾸리고 아파트 보수 공사를 진행하는 등 나름 아파트의 우두머리로서 실리와 민심을 함께 챙기며 승승장구하지만,


  점점 고갈되는 자원과 주민 모두를 지배하는 피로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살인과 폭행, 협박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내 가족들, 처자식들 죽게 내버려 둘 겁니까?


김민성

김민성 (박서준 扮)


  명화의 남편이자 영탁이 지휘하는 황궁아파트 방범대의 일원. 그는 초반부 외부인을 집에 들이고 음식을 챙겨주는 등 조금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양심적인 행동을 하는 명화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며 김영탁의 카리스마와 그의 태도에도 부합하는 '가정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점점 살기 위해 폭력을 저지르는 것에 무뎌지게 되죠.


  영화의 엔딩에 다다러선 외부인에게 아파트가 공격당하는 와중 명화와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고 실낱같은 스스로의 존엄을 앞세워 황궁 아파트를 떠나게 됩니다.


우리 여기서 쫓겨나면 끝이야. 다 죽는 거야.


명화

명화 (박보영 扮)   


  김민성의 아내이자 지진이 일어나기 전 간호사였으며 작품 속 윤리와 도덕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고 김영탁 일당의 '생존 방식'에 회의를 품는 인물.


  그녀는 황궁아파트 내 외부인 퇴출이 결정된 이후에도 몰래 숨어있던 외부인들을 챙겨주고, 자신의 남편인 김민성이 인간성을 끝내 버리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등 여러모로 재난물 속의 양심을 지키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너 이렇게 사람 해치는 일 못해. 망가진다고!


황궁아파트의 주민 수칙을 공지하는 임원들

  그들이 가족을 지키고 살아남고 싶은 만큼 각자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취할 수밖에 없는 태도는 영탁에 가깝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명화에 부합하며 가장 우리가 닮을 현실적인 모습은 민성의 모습이죠. 


  그러나 그들에게도 삶을 이어 붙이기 위해 은연중에 외면하는 위선이 있는데요.


  김영탁은 사실 자신을 등쳐먹은 '김영탁'이라는 주민을 살해한 뒤 아파트 주민 행세를 했었고, 김민성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가장을 해쳤으며 명화 역시 김영탁이 일궈놓은 아파트의 복지와 시스템을 누리고 있는 인물입니다.


  너무나도 상대적인 가치 속에서 세 사람은 종종 한 사람의 내적인 갈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서 다 나가

  사실 작품의 서사를 끌고 감과 동시에 매력을 불어넣어 주는 캐릭터 역시 김영탁인데요. 


  특히 그의 양면성은 작품을 아우르는 메시지와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명 그의 불쌍한 처지에서 비롯되었겠으나,


  영화가 진행되며 영탁은 가정에 실패했던 자신의 결핍을 우리 아파트, 우리 주민분들이라는 바운더리를 일궈가며 빈 공간을 억지로 채워 넣습니다.


  "옛날엔 왜 세상이 나만 못살게 구는 걸까 싶었지만 이제와 보니 그게 다 자산이었더라"는 그의 회고에서도, 우린 선택받았다며 충족을 위한 약탈을 일삼는 카르마에 빠진 그의 광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II

인간답게, 인간이니까

인간의 아이러니


  단단하게 지은 콘크리트 벽,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과 따뜻한 온도.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신선한 음식과 명령할 수 있는 권력.


  짐승의 산물과 인간의 특권이 애매모호하게 뒤섞인 황궁 아파트는 지진이 일어나 모든 것이 뒤바뀐 와중에도 재난 이전의 삶을 끌어와 영위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집단입니다.


  술과 파티, 여가와 의료 등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위해
  살해와 폭력 등 인간이기에 익숙해질 수 없는 행위들을 일삼으니까.


  그들은 음식과 술이 생기면 노래를 하며 잔치를 벌입니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살만하다'는 안도감을 거머쥐지만 그 모든 것은 어딘가에서 빼앗았다는 그림자가 바짝 뒤를 쫓아오죠.


명화와 민성

  분명 어디서부턴가 꼬이고 아이러니해진 욕망. 엔딩에서 명화를 구해주는 피난민들의 [살아야 하니까]라는 투박하고 근본적인 목적과는 대비가 됩니다.


  반면 황궁아파트 사람들의 목적은 꽤나 희망적이고 구체적입니다. 목적을 위해 인간이기에 하기 어려운 것들을 서슴지 않는 황궁 아파트 사람들과,


  단순한 목적과 달리 인간성을 내려놓지 않는 피난민들의 모습. 지진 이전의 삶이 나를 완성시킨다는 듯, 그것들이 없다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듯 생각하는 일종의 오만이죠.


  영화의 장소가 아파트로 설정된 점 역시 이러한 인간의 허영을 표현하려고 한 건 아닌가 싶습니다. 위로 높게 쌓아 올려진 콘크리트 상자.


  우리는 그런 상자들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 하고 아파트를 사기 위해 평생 갚아야 할 빚을 지기도 하며 누군가는 원래 주인을 제거해서라도 자신을 뉘일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죠.





II

소유의 불균형과 리셋

그들이 싸우는 이유


다툼 없이는 평화도 없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관람했던 지인이 말했습니다. 결국 저 사람들은 아파트가 자기 것만 같아서 저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것 같다고요.


  그들에게 소유란 내 것, 지켜야 하는 것과도 같고 또 남들보다 내가 우월한 점이 되기도 합니다.


  후반부 명화를 구제해 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지진 이후로 분명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정확히는 그들의 소유가 아무 의미 없어진 것이라고 봐야 할 듯하죠. 내가 누리던 복지, 편의시설, 여가 등. 제 몸뚱이 말고는 모든 것의 리셋.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삶을 다시 꾸려나가며 유일하게 쥐고 있는 것이라곤 자신의 목숨이기에 여기서 그냥 살아도 되냐는 명화의 질문에 대답합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살아있으니까 살아야지.


  자신들의 것이 아니기에 나눌 수 있고 누군가의 사용을 소유와 박탈로 인식하지 않는. 그러나 황궁 아파트는 정확히 그 반대의 태도를 고수하기에 다툽니다. 내 것이기에 줄 수 없고, 줄 수 없는 것은 곧 내 것이니.


  풍요로움을 손에 넣기 위해 싸우는 그곳은 사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의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고, "원하면 가질 수 있어요."라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황궁 아파트는 다른 말로 유토피아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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