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장은 통신병과 함께 훈련하며 긴 시간을 보낸다. 작고 밀접한 조직인 소대 안에서도 나름의 권력이 형성되며, 그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소대장에 취임하자, 선임분대장이 다가와 물었다.
“통신병을 교체할 생각 있습니까?”
당시 나는 ‘굳이 신임 소대장과 신임 통신병 조합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통신병은 소대 본부에 1명만 편제되어 있어, 소대장이 임의로 바꿀 수 있는 보직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엔 분위기상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두라고 말했다.
그 통신병은 나를 정말 편하게 해주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전기를 매고 따라왔고, 잠시 자리에 앉으면 앉을 자리를 정리해주었다. 수통을 건네 물을 권했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에게는 사탕을 내밀기도 했다. 이제 막 장교로 임관하여 소위 계급장을 달고 군대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나는, 그 작은 권력의 달콤함에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통신병은 나의 손과 발이었고, 점차 나의 눈과 귀가 되었다. 소대의 분위기를 종종 보고하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어느새 그를 통해 웬만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소대원들에게 전할 지시는 그를 통해 전했고, 소대원들의 건의사항도 그를 통해 전해 들었다. 겉보기에 소대는 잘 돌아갔고, 나는 그 시스템이 완벽히 정착된 줄로만 알았다.
내 뜻대로 조직이 움직이는 모습이 즐거웠다. 나는 마치 타고난 군대형 지휘자인 양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점차 타성에 젖은 게으름으로 변질되었다. 어느 날, 중대장님이 나를 불렀다.
“1소대장, 통신병 A는 잘하나?”
“예, 매우 잘합니다. 부지런하고 간부들에게도 깍듯합니다.”
“소대는 문제없어? 잘 돌아가고 있나?”
“예, 그렇습니다. 아주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나에게 제보가 들어왔어. A 통신병에 관련된 내용인데, 혹시 알고 있나?”
“무슨 일입니까?”
“A가 근무시간을 조작해서 가장 좋은 시간대에 본인을 넣고, 특정 후임병과만 지속적으로 근무를 서며 가혹행위를 했다고 한다.”
그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나를 헌신적으로 보좌해주는 믿음직한 존재였고, 나는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르며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신뢰를 이용해 자신이 조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욕망대로 왜곡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대장은 헌병대(현 군사경찰대)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관이 들이닥쳤다. 소대는 쑥대밭이 되었다. 교육, 훈련, 작업은 모두 중단되었고, 3일간 반복되는 조사와 설문에 소대원 모두가 탈탈 털렸다.
수사 결과, A는 “소대장 지시로 했다”고 주장하며 근무 시간 조작을 10여 회 했다고 밝혔다. 그중 8번을 특정 이등병과 함께 근무하게 편성했고, 근무지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연애 이야기를 강요하고, 거부 시 머리를 박게 하거나, 담배를 피울 때 망을 보게 하고, 심지어 금전까지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소원수리를 통해 중대장에게 직접 제보했던 것이다.
결국 A는 영창 15일 처분과 함께 타 부대로 전출되었고, 나는 중대장님의 선처 요청 덕분에 경고 조치로 마무리되었다.
그 사건 이후, 나에겐 거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 일은 어찌 보면 과거 국정농단의 주범이었던 최순실 사건과도 닮았다. 아니, 똑같다. 권력은 크기에 상관없이 달콤하며, 권한이 생기면 반드시 그 권한에 기생하려는 세력이 따라붙는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초급간부 주변에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권력에 기대어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려 한다. 그래서 조직을 밝히기 위해서는 주변을 더 환하게 비춰야 한다.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야 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권한이란, 행사하는 것보다 감시받는 방식에 따라 조직의 건강함이 결정된다. 초급간부일수록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권력은 은밀한 곳에서 썩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