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호국훈련 관찰 평가관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11월 초, 밀린 업무를 정리하던 중 나는 큰 혼란을 겪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의 충격이었다. 아마도 내 군 복무 중 손에 꼽을 정도의 경험이었다.
그 충격의 원인은 다름 아닌, 내가 모시는 과장님에게서 비롯되었다. 평소 침착하고 여유 있는 과장님이 어느 날 사무실에서 매우 부산하게 움직이셨다. 2년 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단 한 번도 그렇게 다급해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전화 통화도 많아졌고, 서류가 구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련 기관에 재촉 전화까지 하시는 모습이 낯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그날 과장님은 갑자기 병원에 다녀오신다고 하셨다.
“나 잠깐 병원에 가서 서류 좀 발급받아 올게. 부장님께는 보고드렸으니 알고 있어.”
한 시간 후, 땀을 흘리며 돌아오신 과장님은 곧바로 인사과에 전화해 기록 변경 절차를 확인하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과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육본에서 신체검사 결과가 반영 안 되었다고 오늘 중으로 처리하라고 연락이 왔어.”
“조금 늦어도 괜찮을 텐데, 왜 그렇게 서두르라고 하나요?”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 심사할 때 모든 자료가 일치해야 하거든. 누락된 사람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것 같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자료가 누락된 사람은 진급 심사에서 배제하면 될 텐데… 이번 장군 진급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그날 퇴근길, 과장님과 함께 걸으며 다시 물었다.
“과장님, 이번에 장군 진급하시는 것 아닙니까?”
“에이, 내가 어떻게 진급하겠냐. 내 동기는 이미 군단장인데 나는 내년 4월 전직지원교육 대상이야. 국방부가 전역 예정자를 굳이 진급시키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
“그래도 육본 인사참모부에서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건 이례적입니다.”
“글쎄, 자기들 신뢰성을 유지하려는 거겠지. 모든 자료가 완비돼 있어야 심사위원들 앞에서 깔끔하니까.”
과장님의 말씀은 일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과장님, 제 기분이 이상합니다. 과장님이 진급하시면 참 기쁠 텐데… 이상하게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과장님이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가슴이 막막합니다.”
나는 2년 동안 과장님과 함께 근무하면서 이보다 더 훌륭한 상관을 모신 적이 없었다. 임무수행 능력과 덕망, 배려심까지 겸비한 분. 그분과 함께 근무하면서 나의 남은 3년간의 군 생활이 더욱 보람차고 행복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그럴 일 없어. 혹시 진급하더라도 내가 합참에 있으면 너랑 계속 근무할 수 있잖아.”
며칠 후, 퇴근 후 독신 숙소에서 후배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내일 장군 진급 심사 결과 발표 예정!”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과장님이 진급하실 것 같은 좋은 예감과 이제 헤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 감정을 잊기 위해 나는 군납 맥주를 연거푸 마셨다. 다음날 아침, 숙취로 얼굴이 붓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태로 출근했다.
“충성! 과장님, 편히 쉬셨습니까? 오늘 장군 발표 있다고 합니다.”
“그래, 나도 들었다. 신경 쓰지 마. 네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아.”
“저는 왠지 되실 것 같습니다.”
과장님은 말없이 웃으며 모니터를 응시하셨다. 그 모습에서 나는 조용한 기대와 긴장을 읽을 수 있었다. 사무실은 적막했고, 초침 소리만 또렷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나는 과장님께 식사를 권했다.
“과장님, 식사하러 가시죠.”
“그래, 벌써 그 시간이구먼.”
식당으로 향하던 중, 과장님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진급하셨구나…’
진급 발표 날, 선발자에게는 전화가 오고, 탈락자에게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상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과장님의 목소리에서 진급 사실이 확실해졌다.
“과장님, 진급하셨습니까?”
“응, 했네. 참나… 너희들끼리 밥 먹어라. 나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그날 점심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무실로 돌아와 앉았지만, 과장님과의 이별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후 내내, 우리가 처음 함께한 2021년 12월이 떠올랐고, 지난 2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퇴근 후,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1년 선배에게 처음으로 술을 청했다.
“선배님, 오늘 술 한 잔만 사주십시오.”
평소 단 한 번도 먼저 술 한잔 하자고 말한 적 없는 내가 그런 말을 꺼내자, 선배는 놀란 눈치였다.
“야, 너 무슨 일 있지?”
사정을 설명하자, 선배는 흔쾌히 술자리를 함께해주었다. 그날 나는 소주 세 병을 들이켰지만, 시린 마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선배와 헤어진 뒤, 나는 과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술 마셨구나? 너 평소에 술 잘 안 마시잖아. 왜 이렇게 마셨어?”
늘 그랬던 것처럼 정겨운 목소리. 나는 그만 목이 메어 목놓아 울고 말았다.
“과장님…”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는 나에게 과장님은 잠자코 울음소리를 들어주셨다.
“김 중령,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거야. 너무 섭섭해하지 마. 내가 진급한 건 네가 도와줬기 때문이야.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이 은혜는 꼭 갚을게. 정말 잘해줘서 고맙다.”
나는 울먹이며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전화를 마무리했다.
얼마 후 과장님은 장군으로 진급하셔서 합참 장군직에 보직 되셨다.
주변에서는 우리 과장님의 임기제 준장 진급에 놀라움과 축하를 함께 전했다. 많은 이들이 “어려운 진급”이라며, 과장님의 묵묵한 책임감과 리더십이 결국 인정받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한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상관과 함께할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작별을 앞두고 방황했던 날들. 그것은 마치 좋은 꿈에서 깨어나기 싫어 몸부림치는 나 자신 같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분이 더 넓은 자리에서 내가 받았던 따뜻함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내 정신도 조금은 정성적으로 돌아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