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장 시절, 유격훈련 복귀 40Km 행군을 실시했다.
병력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다. 행군로상에 위치한 갈비집이 늘어선 거리를 지날 때면 숯불 냄새에 400명 전원이 코를 벌름거리며, ‘훈련 끝나면 꼭 사 먹어야지’ 하고 침을 삼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행군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10분간의 휴식이다.
힘겹게 걷다가 "선두 정지! 현 위치에서 10분간 휴식한다!"는 지휘자의 구령이 들리자마자, 모두 논두렁에 널브러졌다. 나 역시 군장을 베개 삼아 누워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편안했다. 집에 있는 침대에 누운 듯한 기분이었다.
옆 전우가 내미는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여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뿜자 퍼져나가는 회색 연기는 마치 나의 피로를 함께 날려 보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그리움’이 무엇인지 문득 깨닫게 된다
“출발 3분 전! 인원·장비 확인 후 보고!”
갑작스러운 지휘자의 구령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찰나의 순간 잠이 들었음을 깨닫게 된다. 짧은 휴식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투화 끈을 질끈 조이며 다시 출발 준비 한다.
'터벅, 터벅..'
끝날것 같지 않았던 40Km 행군은 어느 덧 저 멀리 대대 막사로 부터 우리를 향해 유난히 찬란하게 빛나는 불빛이 보이면 '이제 끝이구나'라는 안도감과 성취감이 나를 흥분시킨다.
행군을 무사히 마치고 대대 정문을 통과할 때, 환자와 선발대로 열외된 인원들이 도열해 박수로 우리를 맞이했다. 각 중대 행정보급관은 막걸리 한 잔과 김치 몇 조각을 준비해 두었고, 그것으로 병력들은 허기를 달랜 뒤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생활관의 익숙한 냄새와 편안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군장을 정리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눕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수고했다”는 소곤소곤한 말소리와 훈련 중의 에피소드를 주고받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이곳저곳에서 코 고는 소리가 퍼졌고, 말소리는 어둠 속으로 잠겨갔다.
다음 날 아침, 대대장실로 A 하사가 찾아왔다. 여군 분대장이었다.
"대대장님, 건의사항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봐라."
"어제 행군 간 너무 힘들었습니다."
"대단히 수고했다. 지휘자로서 40km 행군을 완주한다는 건 병력들의 상태를 살피며 걷는 일이니, 체력적·정신적 부담이 용사들보다 훨씬 클 것이다. 아주 잘했다, A 하사!"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체력적인 것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휴식 시간에 병사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담배 연기가 싫습니다. 행군간 휴식 중에는 병사들이 금연을 하도록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A 하사의 입장에서 보면 담배 연기가 싫은 건 너무도 당연하다. 사실 나도 담배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병사들 입장에서, 행군 중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 시간에 담배 한 대 피우는 것 조차 제한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어쩌면 기본권 침해가 될 수도 있었다.
솔직히 A 하사의 건의사항은 머리로는 이해가 됐다. 그러나 내 가슴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너는 지휘자 아닌가?’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렇게 A하사에게 반문하고 있었다.
A 하사에게는 “검토해 보겠다”고 말한 뒤 돌려보냈다. 이후 주임원사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짧게 말했다.
“제가 잘 교육하겠습니다.”
그 이후로 A 하사는 동일한 건의를 다시 하지 않았다. 나는 주임원사에게 그 ‘교육’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았다. 다음 행군 때, 일부러 A 하사의 분대가 위치한 대열로 가보았다.
여전히 병사들은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A 하사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병사들과 따로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언가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아마도 A 하사 역시 지휘자의 역할을 머리로는 다 이해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가슴으로는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지휘자는,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머리가 먼저가 아니라,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그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