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와의 인간관계
초급간부는 누구나 임관 후 장교든, 준사관이든, 부사관이든 자신이 살피고 책임져야 할 병사가 생긴다. 분대장이라면 9명, 소대장이라면 27명, 참모부 담당관이라도 최소 1~3명은 책임지게 된다. 당신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본인 이외의 누군가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즉, 당신에게도 부하(部下, 남의 밑에 딸려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가 생기는 것이다.
많은 초급간부가 부하를 처음 맡았을 때 보이는 양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부하로부터 대우를 받으려는 이들.
둘째, 부하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끼며 솔선수범으로 그들을 도우려는 이들.
만약 초급간부가 자신은 편하게 지내며 직책의 혜택만 누리려 하고, 병사들을 수단 삼아 대우받으려 한다면, 그 순간부터 주변엔 그 나태함을 이용하려는 암적인 조직이 생겨난다. 병사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각종 사조직이 대표적이다. 이런 조직은 부대의 전투력을 마비시키고 부조리를 키우며, 결국 당신이 이끄는 부대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비극의 시작은 다름 아닌 당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병사들은 이런 초급간부를 정확히 알아본다. 당신이 병사들을 방치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한다면, 겉으로는 시키는 대로 잘하는 척하면서도 수면 아래에서는 각종 부조리가 자행된다. 그러다 당신이 사태를 인지했을 때, 병사들은 당신의 나태했던 과거를 낱낱이 기록한 '데스노트'를 꺼내 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배신이 아니다. 당신이 그렇게 만든 결과일 뿐이다.
더 나아가 초급간부 시절부터 부적절한 권위의식이나 게으른 근무 태도가 습관이 되면, 이는 훗날까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중견간부 시절 조직을 흔드는 문제를 일으켜 중도에 군복을 벗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반면, 계급과 직책의 무게를 스스로 자각하고, 의무복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병사들의 고충을 공감하며 그들을 도우려는 초급간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솔선수범’을 실천할 줄 안다. 항상 먼저 준비하고, 먼저 행동한다. 직책의 혜택을 병사들 위에 군림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굳이 “이건 지시다, 빨리 해라!”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된다. 상관이 몸소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부하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 초급간부의 행동은 말보다 무겁다.그렇게 하려면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군에 처음 온 당신이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우수한 초급간부는 부지런하다. 이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솔선수범을 위한 지식을 쌓는다.
예를 들어 진지공사를 앞두고 있다면, 적의 접근 방향, 진지의 규격, 삽질 요령, 황토와 짚의 비율, 축성 시 각도, 수류탄 처치공의 길이와 경사도, 배수 방식, 교통호 연결 방법 등 수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부지런한 초급간부는 며칠 전부터 선배들에게 묻고, 축성 도구의 상태를 점검하고, 행정보급관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늦은 밤까지 공부한다. 어떤 이는 실제로 주말에 부대 인근에서 삽질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런 초급간부를 나는 여럿 직접 목격했다.) 반면 게으른 간부는 정시에 퇴근해 게임을 즐기고, 다음 날 아침엔 느긋하게 출근해 병사들에게 “너희가 알아서 준비해!”라며 떠넘긴다.
현장에 출동한 부지런한 간부는 누구보다 먼저 삽을 챙기고, 병사들이 규격을 몰라 헤매면 줄자로 치수를 재어 선을 그어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며 적의 접근로가 적절한지, 배수 기능이 충분한지, 진지의 성능이 확보됐는지를 꼼꼼히 확인한다. 10분 휴식 시간에도 병사들은 쉬게 하고, 본인은 진지 앞으로 나아가 현장을 재확인한다.
이처럼 초급간부의 헌신이 깃든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작업 효율이 높아지며 시간이 단축된다. 중대장이 현장을 방문하면 칭찬이 이어지고, 부대는 예상보다 일찍 휴식에 들어간다. 부하들이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에는 존경이 서린다. 휴식 시간엔 시원한 음료를 나누며, 틈틈이 병사들의 애로사항을 묻고 귀를 기울인다.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우리 소대장(분대장)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바로 옆 소대는 상황이 정반대다. 게으른 초급간부가 맡은 부대는 작업이 기한 내 끝나지 못하고, 규격도 맞지 않아 중대장에게 질타를 듣는다. 중대장은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명령한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초급간부는 “너희들이 준비를 안 해서 그런 거야!”라며 병사들을 탓한다. 병사들은 입을 삐죽 내밀고 무능력한 상관을 욕하며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날의 일을 노트에 또박또박 적어둔다. 그것은 책임은 다하지 않고 권위만 누리는 초급간부를 한방에 보내버릴 기록이다.
어떤 초급간부가 병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답은 자명하다. 결국 당신의 태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병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초급간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병사들은 간부를 선별하는 감각이 있다. 당신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 귀신같이 알아낸다. 당신이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그들은 당신을 존경하고 따를지 아니면 철저히 이용할지를 결정한다.
전우애(戰友愛)! 전우로서 서로 돕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만약 전투 현장의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당신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적진을 향해 달려갈 때, 부하들이 용맹하게 당신을 따라 함께 뛰어들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전우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만 뛰고 있고,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면......
초급간부와 병사 간의 인간관계의 최종 상태는 피 끓는 전우애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당신의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