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다다다'
8시 20분만 되면 복도에서 우렁차게 들리는 소리다. 이 소리는 학년이 끝날 때까지 들렸던 아이들의 등교 소리다. 자유 학구제로 스쿨버스가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전교생의 반 이상이 스쿨버스로 등교한다. 스쿨버스가 도착하기 무섭게 선생님들이 안 보이는 사각지대에서부터 우리 교실까지 10미터 정도 돼 보이는 짧은 거리에서 우리 반 남자아이들은 매일 달리기 시합을 한다. 저학년이라 그렇다. 장난꾸러기들! 선생님의 본분을 충실히 하기 위해 들어 먹히지 않을 이야 일지언정 매일 생활 지도를 한다. "걸어 다니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그레한 두 볼을 한껏 치켜들며 환한 미소로 아침 인사를 한다. 다행이다. 아이들이 밝게 등교해서. 그다음 골인한 아이들은 여학생들이다. "재들은 왜 맨날 뛰어 와요?" 하면서 자기들은 뛰지 않고 얌전히 걸어왔고 규칙을 잘 지켰으니 칭찬해 주세요.라는 의미를 함축한 질문을 한다. 나는 "그러니 말이야! 우리 여자 친구들은 역시! 규칙을 잘 지켜" 하면서 기대하던 칭찬의 말을 해준다. 귀여운 녀석들. 마지막 한 명이 더 있다. 작은 몸으로 세상의 중력을 혼자 받는 듯한 발걸음으로 가방에 든 것도 없으면서 어깨는 축 늘어져 있는 아이가 걸어온다. 시커먼 후드 재킷의 모자를 눌러쓰고 온다. 교실 문을 스르르 열고 내 앞으로 와서 인사한다. 눈은 반쯤 감겨 있다. 나는 인사도 받기 전에 물어본다.
"우민아, 어제 몇 시에 잤어?"
"새벽 3시요."
나는 우민이의 모자를 벗기고 두 손바닥으로 누르며 흔든다. "일찍 자라 했지!" 애정 반, 걱정 반으로 잠을 깨운다.
나는 1학년 학생이 수업 시간에 자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1학년은 초롱초롱, 반짝반짝, 통통 튀는 이미지로 말썽, 장난의 토핑을 얹은 달콤하지만, 시큼한 요거트 맛인데 말이다. 우리 우민이는 그 맵다던 중학생 형아 같았다. 3월 한 달은 그래도 잘 앉아 있었다. 3월 입학 적응 기간이 끝나갈 무렵부터 우민이는 1교시부터 스멀스멀 허리가 굽더니 노호혼을 연상케 하는 신나는 수면 모드로 전환을 했다. 그래서 나는 우민이를 맨 앞 내 책상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의 강한 존재감으로 우민이의 몽롱함을 날려버리려는 시도였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렇게 하루를 피곤하게 시작하는 우민이는 모든 학습에 흥미가 없었고 의욕도 없었다. 쉬는 시간이 땡! 하고 시작되면 눈이 더 반짝반짝 해지고 참았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남자들과는 달리 늘 무기력했다. 나는 우민이를 자주 불러 가정환경, 취향, 취미, 가족 관계, 방과 후에 하는 일들, 자기 전에 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캐물었다. 우민이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처음에는 단답형으로라도 잘 말해 주었다. 점점 질문 수가 늘어날수록 우민이 입으로는 대답을 하지만 눈초리는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우민이 부모님은 저녁까지 일을 하신다고 한다. 저녁 시간을 엄마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또 우민이는 지금은 괜찮지만 어릴 적 병을 발견했고 지금도 추적 관찰 중이었다. 우민이 엄마는 아이가 안쓰러워 떼쓰면 다 들어주시고 기본적인 생활 습관도 잡아 주시지 못한 것 같았다. 새벽이 되도록 핸드폰 게임을 하는데도 엄마의 잔소리는 아무런 힘을 못 쓰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머리는 굴러가는 듯한데 수학 계산 속도가 너무 느렸다. 암산으로 할 수 있는 시기에 아직도 손가락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조차도 힘들어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민이 누나도 내가 가르친 제자였다. 그때 당시 5학년인데도 시계를 못 읽어 내가 시계부터 가르친 기억이 난다. 우민이 누나도 수학이 늦었는데 우민이도 그런가. 유전적인 영향인가. 우민이 엄마에게 누나 때도 우민이도 수학이 늦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민이도 걱정이 되었다.
우민이는 그리기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그리는 시간 동안은 혼자 뭘 그렇게 그리는지 고개도 안 들고 집중한다. 수업 시간 집중한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어떤 주제에 대한 그림이라도 결론은 게임 캐릭터이다. 참 창의적인 아이다. 게임 캐릭터를 가지고 모든 주제를 구현해 낸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이용해 자유 주제로 그림 그리기 시간이었다. 동그라미 두 개로 바퀴를 완성하고 세모로 손잡이를 그려 오토바이를 완성하였다. 그 위에 게임 괴물 캐릭터 5마리가 함께 타고 있었는데 다른 포즈로 다양한 모습으로 섬세하게 그렸다. 사실 괴물만 아니면 정말 그림을 잘 그렸는데, 아쉬웠다. 수업 시간에 괴물 캐릭터를 그리게 허용하다면 우리 반 작품은 몬스터협회가 주관하는 작품 전시장이 될 것이다. 어느 날은 시작 전부터 “괴물 캐릭터는 안 돼요.”라고 강력하게 금지했다. 주제는 ‘기억에 남는 학교생활’이었는데 우민이는 열심히 그렸다. ‘그래, 우민아, 너의 그리기 실력을 펼쳐봐.’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우민이에게 다가갔다. 나는 의식 단계 없이 단전에서 올라오는 기괴한 목소리로 탄성을 질렀다. "와우!" 코가 막히고 귀가 막혔다. 괴물이 한가득 미끄럼들을 줄지어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계단에도 줄지어 기다리는 장면이었다.
“우민아, 괴물 캐릭터는 안 된다고 했잖아.”
“선생님, 이거 괴물 아니에요. 캐릭터 탈을 쓴 친구들이에요.”
“어디? 어디? 다 괴물이잖아.”
“여기 보세요. 모두 탈이라고요.”
자세히 보니 얼굴 주변에 얇은 테두리가 하나 더 있었다. 진짜 탈을 쓴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아이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한쪽은 선생님 입에서 떨어진 말은 어린이 세상의 법으로 작용하여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비록 모두가 모범생은 아니나 할 것은 한다. 또 한쪽은 선생님 말씀을 똥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양쪽 귀가 연결이 되어 있어 반대쪽으로 흘려보낸다. 선생님은 반대쪽 귀를 막아주면서 듣게 해야 한다. 우민이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거역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줏대는 굽히지 않는다. 머리가 좋다고 해야 할까.
나는 우민이를 불러 물어보았다.
"우민아, 너는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저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 캐릭터 만들어서 인기 얻으면 완전 부자 되는데."
우민이는 내 이야기에 작은 눈은 크게 뜨면 신나 했다.
"우민아, 앞으로 캐릭터 그리면 선생님도 보여줄래?"
"네!"
우민이는 한껏 신난 표정으로 씩씩하게 걸어 자리로 들어갔다. 다음 날부터 우민이는 캐릭터 그린 것을 가지고 왔다. 괴물이었다. 나는 3초 안에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하며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서 박장대소해야 하는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 칭찬할 때는 '우와. 잘했네.'라는 성의 없는 칭찬은 좋지 않다고 했다. '잘했다. 멋지다. 훌륭하다.'라고 꼭 하지 않아도 된다. 꽃을 그렸다면 "보라색으로 칠했구나."라고 말하며 관심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칭찬의 효과가 있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다. 그래서 나는 우민이에게 활짝 웃으면 말했다.
"우와. 파란 괴물이구나. 우와."
더 이상 뭘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잘했다거나 멋지다거나 그런 말은 안 해주고 싶었다. 괴물이라서. '우와.'는 잘할 수 있다. 그다음에 그려온 캐릭터도 괴물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의 큰 반응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민이의 꿈은 계속 응원해 주었다. 나는 토이 스토리의 제작자 애드 캣멀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 주며 애니메이션 제작자라는 직업도 소개해 주었다. 우민이는 표정이 더 밝아져 보였다.
우민이는 1학년 남자아이들 사이에 끼어 뛰어다니며 놀지는 않았고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엎드려 있었다. 친한 친구가 놀자고 장난치면 싫다고 반응한다. 계속 짓궂게 우민이에게 장난을 치면 우민이는 씩씩거리며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수차례 교차하며 빠르게 펀치를 날린다. 그 친구에게 다일랑 말랑, 참다못해 폭발하는 방법이다. 얼마나 짜증이 났으면 저런 반응을 하나 싶다. 처음엔 우민이의 주먹 펀치도 염려가 되었다. 어머님께 다툼으로 번질까 염려된다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우민이가 나쁜 의도로 그랬기보다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친구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아이들은 우민이를 좋아했다. 쉬는 시간 우민이 주위에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안 봐도 비디오이다. 괴물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 '선생님, 우민이 진짜 잘 그려요.'라고 몇 번 말했지만, 괴물을 싫어하는 선생님은 별 반응이 없으니, 그 이후에는 별말이 없었다. 우민이도 '선생님, 쉬는 시간이니 괜찮죠?' 하며 정당 권리를 주장하였다. 정말 괴물 캐릭터의 끈질긴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되었다.
1학년 담임의 책무, 기본 생활 습관은 몸에 장착시켜줘야 한다. 웬만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1학년 시기를 잘 보낸다. 의욕도 충만하고 부모의 관심도 최고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민이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5학년인데도 시계를 못 읽는 누나처럼 될까 봐 걱정되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우민이 맞춤형 지도 계획을 세웠다. 학습 부분에서는 수학 기본 연산 연습을 구체물로 따로 시켰다. 3~6세 몬테소리 국제 자격증이 있는 나는 '색 구슬'이라는 교구를 주고 계산하게 하였다. 우민이는 구체물을 주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계산한다. 교구를 이용하니 무난하게 계산해 나갔다. 우민이에게만큼은 잔소리쟁이 엄마가 되기로 했다. 아침에 오면 취침 시간, 게임 시간 확인, 점심 후 양치 검사, 개인 수학 지도를 따로 해 주었다. 양치도 얼마나 안 했으면 이가 다 썩어서 시커멓다. '우민아'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부른다. 우민이는 항상 귀찮아하듯이 대답하고 느릿느릿 걸어왔다. 그래도 선생님의 관심이 싫지 않은가 보다. 하라는 건 꼭 했다.
담임의 끈질긴 잔소리로 우민이는 좀 1학년다워졌다. 수업 시간에 딴짓하지 않고 집중해서 과제를 완료한다. 가끔 국어 시간에 이야기를 듣고 내용에 대한 질문이나 깊이 생각해 볼 질문을 던지면 나름의 참신한 대답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우민이를 지금처럼 엄마처럼 보듬고 궁둥이를 팍팍 때려주면서 칭찬 한 방씩을 세게 날려준다면 하나씩 엇나가고 있던 단추들을 바로 채워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단추를 부모와 함께 채운다면 그 효과는 몇 배가 되겠지만 나 혼자 해줘야 하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1학년 가을쯤, 학예회 준비로 분주했다. 국악공연을 준비 하는데 악기들을 강당에서 연습실로 이동시켜야 했다. 장구, 징, 북을 옮겨야 하는데 1학년이 들기에는 많이 무거웠다. 강당 무대 뒤에서 나는 우민이가 옆에 있길래 부탁했다.
“우민이 이 열쇠로 연습실 문 좀 열어 놓을래?”
“네.”
우민이는 힘차게 대답하고는 오른손에 장구, 왼손에 북을 들고 뒤뚱뒤뚱 뛰어갔다. 나는 문만 열어 놓으라는 건데, 우민이는 악기까지 옮기려 했다.
“우민아, 무거울 텐데”
“괜찮아요!”
작고 마른 우민에게는 보통 무게가 아니었기에 나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민이의 표정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모습이다. 국악 연습도 지겨웠을 텐데, 이 무거운 악기들을 옮기는 것도 귀찮을 텐데. 내가 입으로는 ‘우민아, 파이팅!’을 외치며 눈으로는 ‘똑바로 안 하냐’의 의미로 레이저광선을 쏴야 하는 시점인데 말이다. 우민이는 먼저 갔고 나머지 아이들과 함께 악기를 하나씩 들고 줄을 지어 교실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도 우민이 생각을 했다. 이따 우민이를 보면 폭풍 칭찬을 모두가 있는 데서 해줘야지 하는 생각과 ‘이거 무슨 일이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혹시나 장난을 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아니면, 가다가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지는 않을까 염려도 되었다. 오만가지의 생각으로 교실에 다다랐을 때, 교실 문 앞에 나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선생님, 문 열어 놨어요. ”
“머야. 머야. 우리 우민이가?”
나는 우민이를 보자마자 장난이나 다른 의도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미소로 보냈다. 자기가 낑낑거리며 들고 간 악기 두 개를 교실 뒤에 잘 정도 해 두고 나와 반 아이들을 기다린 것이었다. 우민이가 자진해서 선생님과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 우민아, 너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구나. 선생님은 우민이 덕분에 정말 수월하게 악기를 옮겼어. 고맙다.”
우민이의 작은 눈이 웃으면 초승달이 되는 것은 이날 처음 알았다. 우민이는 썩은 이빨을 훤히 드어내 보이면서 뿌듯함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점심시간에 우민이를 불러 물어 보았다. 오전에 했던 우민이의 행동은 교사로서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을 친구들과 우민이 부모님께도 알려 길이길이 기억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가속도가 붙어 스스로 뿌듯한 경험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말이다.
“우민아, 아까 선생님은 악기 한 개 드는 것도 무겁던데, 너는 두 개나 들고 교실 문까지 열어줘서 깜짝 놀랐어. 우민이의 이런 멋진 행동은 처음이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러고 싶어서요.”
나는 팔이 서늘해지고 머리털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우민이의 행동을 봤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시키는 과제와 잔소리는 듣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 것 같았고 자발적인 행동은 괴물 그림뿐이었다. 그런 우민이기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학 문제를 따로 주면 내 앞에서 두 발을 동동거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양치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양치 컵을 가기고 오라고 하면 “아, 왜요?”라며 짜증을 냈었다. 책상 서랍 정리를 시키면 우민이만 하지 않아서 내가 물건을 다 빼버린다. 우민이는 울상을 지으며 “선생님, 하지 마세요.”했었다. 미니 빗자루로 교실 전체를 함께 쓰는 시간을 매일 가지는데 우민이는 딱 1개 쓸어 온다. “가득 채워 와.”하면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괴로워했다. 우민이는 이러면서 모두 했었다. 우민이는 선생님이 시키는 이런 모든 행동을 해보지 않았고 칭찬도 받아보지 못했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무도 우민이에게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나 보다. 우민이의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용기의 벽을 넘기 위한 자신만의 표현이었다. 선생님에게 ‘아, 왜요.’하며 짜증을 내는 행동을 처음부터 내가 받아주지 않고 예의 없다며 혼을 냈었더라면 오늘 같은 자발적인 옳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다음 학년 선생님에게 '우민이는요, 엄마처럼 한결같이 잔소리해야 해요. 수학 보충 지도도 꼭 해야 하고요. 양치 검사도 매일 해주세요. 우민이가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잘 안 하고 싫어해도 오구오구 힘들어? 하며 다독여 주시고요. 우민이가 친구들에게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두 주먹펀치를 빠르게 날려도 그려려니 해주세요. 친구들이 장난치고 괴롭혔을 때 참다 참다 안 돼서 그러는 거니까요. 심부름도 종종 시켜주시고 선생님 바로 앞자리에 앉히고 늘 관심을 보여주세요.'라고 엽기적인 그녀에 나오는 차태현의 빙의가 되어 이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대신 "우민이는 좀 챙겨 줘야 해요."라고 짧게 전했다. 24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부담을 안겨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정말 잘 알고 있다. 내 앞에 있는 어른이 자기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우민이도 그걸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대하면 아이들은 자석처럼 내게 온다. 선생님의 가르침과 조언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아이들을 대할 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관찰해 보고 대화도 해보자. 아이들은 자세히 설명은 하지 못한다. 뚝 내뱉는 짧은 그 대답을 믿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 아닌 아이들이 들려주는 그 이야기를 어른들은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나를 인정해 주는 어른이라면 믿고 따르며 아이가 살아가는 일생의 길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이들은 단 한 명이라도 자기를 믿어 주는 어른이 있다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그 어른이 부모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