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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교윤 Sep 02. 2024

작은 나의 보디가드

"선생님, 5학년 잘 부탁합니다. 좀 아이들이 활발해서 일부러 차분하고 경력 있는 선생님께 맡기려고요." 교장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활발하다는 말은 '좀 힘든 반이다'라는 직업적 반어법이 들어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아주 좋게 표현한 말임을 바로 알았다. 더 구체적으로는 학폭 발생 확률 100%, 학력 격차가 크며, 관심군이 4명 이상이고, 학부모도 장난 아니다는 뜻이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경력이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신규 같아요'라고 목구멍 위로 0.1mm 올라왔지만 아주 힘 있게 눌러 내었다.


 나는 인정욕구가 강하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맡겨도 '저만 믿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두 눈을 반짝반짝 뜨고 입술에 힘을 주며 의지를 표현한다. 나는 누구에게나 예쁜 돌보다는 울퉁불퉁하고 모가 나 있고 상처가 좀 있는 돌에 더 마음이 간다. 예쁜 돌은 어디를 가나 사랑받고 예쁨 받지만 못난 돌은 어디에서나 타박받는다. 못난 돌에게 파도와 바람만 있다면 스스로 부딪히고 닦여 동글동글 예쁜 돌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못난 돌에게서 가능성을 찾는 일이 교사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아이의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아이로부터 '우리 선생님이 제일 좋아.', 부모로부터 '선생님 덕분입니다.'라는 최고의 인정을 받고 나서 내 스스로를 인정해 주면, 나의 인정 욕구는 충족된다. 내 인정 욕구를 가장 강하게 충족시켜주었던 못난 돌 하나가 5학년 교실에 있었다.


새 학년 새 학기 첫날의 소나기가 지나간 후 맑게 갠 오후, 교사 연구실에서 담임들이 모여 하루의 회포를 짧게 풀었다. 나를 보자마자 선생님들은 '정현이 어때?'라고 물어보았다. 나의 촉으로 '정현이가 못난 돌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왜요? 어떤데요?"라고 물으니, 선생님들이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시리즈별로 풀어 주었다. 학교 이동 후 맡은 첫 반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누가 어떤지 백지였던 시기였다.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부탁한 그 활발한 반은 정현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매번 새 학년 첫날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작년 선생님에게 여러분이 어떤 학생인지 물어보지 않았어요.'라는 거짓부렁으로 시작한다. 지금까지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학생이 되어 시작해 보라는 의미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들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뭐라도 해보겠다는 표정으로 입술에 힘을 주었다. 지금은 평화롭다.


우리 못난 돌은 하루 딱 참고, 새 학년 두 번째 날부터 '활발한 반'의 주인공이 되었다. 수업 종이 울리기 전, 교과서와 배움 노트, 연필과 지우개는 필수다. 필통은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서랍 안에 넣는다. 내 수업에서 너희가 할 첫 번째 관문이다. 웬만하면 처음 만난 선생님이고 좀 단호하고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 한 말은 공부가 안드로메다로 간 아이라도 따른다. 두 번째는 자세를 본다. 목과 허리를 얼마나 세웠느냐가 중요하다. 허리가 굽어있는 각도와 수업 시간 집중도와 참여율은 반비례한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려면 허리를 굽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른 자세로 선생님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습관이다. 수업 첫 시간부터 아이들의 학업에 임하는 자세와 의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때 흐물흐물 미끄덩 납작하고 기다란 미역이 하나 보였다. 교실에 미역이라니,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다.


수심 낮은 바닷가 돌에 붙어 흐느적거리는 미역이 왜 여기 있지. 겨우 세운 미역은 바닥으로 스르륵 흘러 내려갔다. 그리고 바닥에 누웠다. 나의 못난 돌 정현이었다. 이때가 중요하다. 이 순간 아이들은 정현이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아이들이 선생님을 시험할 시간이다. 나도 너희를 첫 시간부터 관문을 두며 관찰하였으니 너희에게 지금이 첫 관문이겠구나. 이 아이들이 나를 얼마나 믿고 따를 수 있느냐. 1년을 내가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너희와 함께 찬란한 5학년의 꽃길을 즐겁게 걸어갈 수 있겠느냐가 달려 있음은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나만의 비기를 내보일 때 가 되었다. 나는 표정 변화 없이 차분히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3분만 기다려줘."

아이들은 '선생님이 어떻게 하나 우리는 두 눈뜨고 지켜본 후 앞으로의 저희들의 행동을 결정할게요.'라는 대답을  눈빛으로 보냈다. 내가 행동을 개시하기 전 그 짧은 순간은 학교 밖 저 멀리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만 들릴 뿐이다. 교실 바닥에 누워 반쯤 눈을 감고 있던 정현이에게 다가가 말없이 뒤에서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내가 겨드라이 쪽에 손을 넣으며 일으키니 정현이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교과서를 펴주고 필통을 찾아 연필과 지우개를 꺼내 가지런히 올려 주었다. 이 간단한 행동이 바로 아이들이 관문을 통과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수업은 시작되었다. 정현이의 허리는 반쯤 굽어 있었지만, 자리는 지켜 주었다. 이후 2주간은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나는 똑같이 일으켜 세워주고 책을 펴주었다. 어느 날부터 정현이는 바닥으로 눕는 행동을 중단했다. 나는 정현이를 처음으로 불렀다. 정현이는 싫지 않은 듯 내 책상 옆으로 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정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정현아, 고마워."

나는 왜 미역이 되었었냐고 묻지도 않고 앞으로 잘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네."

 정현이의 짧은 대답에서 미안함이 느껴졌다. 정현이는 조금만 다듬어 주면 예쁜 돌이 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5년 내내 바람과 파도가 되어 줄 누군가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들도 정현이를 마지막까지 보듬어 주시다가 정현이의 멈추지 않은 반항적인 태도 때문에 중단하신 듯했다.


정현이는 이 외에도 기막힌 행동들을 했다. 수업 중에 일어나 갑자기 춤을 춘다거나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어 시키면 엉뚱한 소리나 듣기 민망한 말들을 내뱉었다. 수업이  중단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하여 나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라는 지적은 숨기고 정현이에게 더 질문하여 주제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만들거나 웃고 넘겼다. 쉬는 시간이 되면 자주 여자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한 번은 교실에서 페트병에 있는 물을 친구들 보란 듯이 자기 머리에 쏟아부었다. 바닥에 흥건한 물과 젖은 정현이의 옷은 아이들을 단번에 주목시키고 반응을 일으키기에 효과는 만점이었다. 1학기 학급 회장 선거에 정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연설문도 만들어 왔단다. 그래, 이번 기회에 회장이 되어 선생님 옆에 붙어서 칭찬받으며 다시 마음 잡고 새로운 정현이로 탄생할 수도 있다. 정현이는 부끄럼 없는 당당한 걸음으로 나와 자세를 잡았다. 이때까지는 완벽했다. 정현이는 일명 저질 댄스를 추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또 한마디 거들었다. "제가 회장이 된다면, 흥분될 것 같아요."라는 마무리 인사까지 알차게 하고 들어 갔다. 나는 '흥분'이라는 단어가 다른 아이에게서 나왔다면 신난다는 의미였겠지만 정현이가 그런 소리를 하니 굉장히 이상하게 들렸다. 아무튼, 회장은 당연히 떨어졌고 새 사람으로 태어날 기회는 사라졌다.


교실에서 수업 방해, 엉뚱한 소리, 춤추기 등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교과 전담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온다.

 "선생님, 정현이 때문에 수업이 너무 힘들어요."

 "정말 힘드셨죠? 제가 잘 이야기해 볼게요."

전담 선생님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나마 담임인 나에게는 조절을 좀 하는 것 같았다. 정현이와 내가 라포를 형성하는 동안 나는 기분 상하지 않게 행동을 조절시켰기에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과전담 시간에는 정말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 정현이 엄마와는 처음에는 거의 매일,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기본으로 통화를 하였다.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안 좋고 엄마도 바빠서 정현이를 돌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정현이는 가정에서 방치 상태였고 가정에서 받아야 할 사랑과 훈육도 전혀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정현이 엄마는 매번 나에게 죄송함을 표현했고 나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집에서 할 수 있는 공부들은 추천해 주었다.


바닥에 드러눕기, 쉬는 시간 자기 몸에 물 뿌리기, 회장 선거 나가 저질 댄스, 수업 시간 춤추기 등은 이 모든 행동의 이유는 관심이었다. 정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정현이는 친구들과도 놀고 싶다. 정현이 나름의 방법으로 친구들에게 다가갔지만 그 방법이 거칠고 이미 문제아라는 낙인이 있어 아이들은 함께 놀지 않았다. 아무도 자기를 좋아해 주지 않고 방법도 모르겠고. 나는 정현이에게 이 모든 것은 알려주고 설명해 주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만난 정현이 담임 선생님들의 노력이 허탕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 정현이를 내 옆에 끼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자기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면 하고 있던 진상 행동은 바로 멈추고 나에게 달려왔다.

"정현아, 이거 6학년 선생님께 갖다 주고 올래? 똑똑똑 하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 본다음 들어가야 하는 거 알지?"

"네!"

상사의 지시를 받은 군인이 따로 없다. 이 때는 세상 뽀얗고 귀티 나게 보이는 범생이 스타일로 변한다.


집에서 정현이는 뭐 하고 시간을 보내는지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요즘은 매일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뭔지는 모르겠어요."

다음날 정현이에게 관심의 표현으로 지금까지 왜 말을 하지 않았냐는, 너에게 그런 재주가 있었다니, 하는 표정으로 능구렁이가 되어 물어보았다.

"정현아, 너 노래 잘 부른다며?"

"아니요. 저는 랩을 해요."

공감력 100퍼센트 표현력 200퍼센트의 느낌으로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현이는 우물쭈물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어떤 랩을 하는데?"

내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너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제가 직접 만들어서 해요."

"와! 정말이야? 대단하다. 내일 선생님에게 보여 줄 수 있니?"

정현이는 심부름시킬 때만 나오는 목소리보다 더 힘 있게 대답하고 들어갔다.

다음날 나는 핸드폰에 어떤 앱으로 만든 반주와 함께 가사를 직접 적은 랩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세계적인 래퍼를 학교에서 만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별로였다.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서 한다는 생각은 정말 기특했다. 잠시 나는 생각했다. 나중에 정현이가 커서 유명한 래퍼가 되어 나를 찾아올 수도 있겠다. 그러면 나는 정현이에게서 '선생님이 저의 랩을 인정해 준 그날부터 제 인생은 바뀌었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도. 나는 종종 정현이의 랩 연습에 관심을 가졌고 친구들 앞에서도 랩 실력을 뽐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정현이는 달라졌다.


수업에 집중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지는 못했지만 내가 하지 말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치기에는 벌써 5학년에 이미 굳어버린 정현이의 이미지를 씻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불편해하는 친구들에게서 정현이를 떼어 놓아야 했다. 그때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현이는 친구들에게 진상 짓을 하는 행동 대신 내 옆에 꼭 붙어 심부름 로봇처럼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정현이를 혼내거나 꾸중하지 않았고  정현이를 인정하고 칭찬해 주었다. 아이를 꾸짖거나 혼내기보다는 공감하고 인정해 주고 믿어 주라는 누구나 다 아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문제 행동만 일으키는 아이에게 그러기는 쉽지 않다. 나는 그 방법을 무지 잘 쓴다. 쉬는 시간에도 옆에 붙어 있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사실 좋았다. 너무 편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현이는 진장 짓을 중단하였고, 실수를 하더라도 나에게 그 마음을 솔직히 털어내주었다. 나는 정현이를 더 보듬어 주었다.


늦은 나이에 첫 아이를 임신했고 8주 정도 되었을 때 일이다. 수업 중에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는데 하혈했다. 나는 너무 놀라고 걱정스러워 눈물이 났다. 잠시 뒤 우리 반을 대신 맡아 줄 교감선생님께 바통 터치를 하고 바로 교실에서 가방만 챙겨 들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정현이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정신없이 가방을 챙기는 나에게 무슨 일 있냐며 물었고 나는 정현이에게 "선생님 급히 병원 가야 해. 정현아 우리 반 잘 부탁해."라는 찐 믿음의 메시지를 전했다. 정현이는 종종걸음으로 차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가방을 들고 뒤따라왔다. 내 차가 학교 밖을 벗어날 때까지 정현이는 내 차만 바라보았다. 병원에서 유산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병가와 산전 휴직에 들어갔고 그날 이후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아쉬웠다. 예쁜 돌 만들 수 있었는데, 나의 작은 보디가드와 한 해를 아주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모난 돌이 아예 깨질까 봐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가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짧지만 강력한 매 순간들을 지켜보고 참아야 했다. 학부모 민원이 많은 반이었다면 '반에 누가 수업을 방해한다는데 애들 관리 좀 잘하세요.'라고 한 소리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고객님의 만족도 100퍼센트를 이루는 교사라, 예쁜 돌을 넘어 날카로운 칼로 봉황을 만들기 위해 기를 썼을 것이다. 정현의 행동을 지적하고 당장 멈춤을 목에 핏대 세우며 이야기하거나 부모님을 불러 행동에 문제가 많으니, 병원이나 상담의 도움을 받으시라 적극 권유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렇게 되었다면 정현이는 6학년이 되어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을 수도 있다. 정현이 병의 치료 약은 관심이었으니까.


정현이와의 일은 그 이후, 나의 교직 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어떤 아이라도 품에 안을 자신감이 생겼고, 아이들의 바람과 파도가 되어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더 깊어졌다. 사실 두렵기도 하다. 이 간절한 마음을 허락하는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과 아이를 함께 변화시켜 보자고 손을 내밀 때 '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인생을 바꾸실 분이에요. 적극 따를게요.'라는 말로 이 순수한 교사를 오롯이 믿고 노력할 학부모가 과연 있을까. 오히려 우리 아이를 예쁘게 봐주지 않는다며, 우리 아이만 미워한다며, 민원을 제기할 것 같은 분위기가 더 강해지고 있다. 내 성격상, 그냥 적당히 좋은 말로 포장해서 한 해 무난히만 넘기진 않을 것인데, 그러면 나는 힘을 잃고 교실 바닥에 쓰러지고도 남을 위인인데, 앞으로 만날 정현이 들에게 내가 파도와 바람이 되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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