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가능세계에 관해서 글을 써볼게요~
지원한 공채가 있었는데 또 떨어졌다.
매해 하반기에 열리는 공채인데 떨어졌다.
매년 나는 전년도의 나보다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하는데,
왜 여기를 또 떨어진걸까.
애초에 지원자격 요견 미충족이라서?
차라리 그게 이유의 전부라면 위안이라도 될 것 같다.
떨어질 때 이유라도 알고 떨어지면 이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지킬 수 있을 것 아닌가.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고, 주변에서는 결혼 소식, 취업 소식 등이 들려온다.
그렇다보니 아주 정체된 건 아니어도, 상대적으로는 상당히 정체되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불행이 시작된다고 하지만 비교도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거 아니련지...
하고 싶지 않아도, 머릿속에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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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포괄임금제인 기업 2곳에서만 일해본 자로서, 내 인생이 포괄로 시작해 포괄로 끝날까 슬슬 두렵다.
조금은 밤의 휴식시간을 허락해주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그런 곳들은 나를 뽑아주지 않을 것 같다.
가진 것은 토익 900 조금 넘는 성적, 유럽권 국가 교환학생 경험, 그리고 상경계열 대학원 수료예정 정도.
이번학기까지만 끝나면 나는 대학원 수료 자격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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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글쎄...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대학원에서의 경험으로 내가 어필할 수 있는 곳은 그나마 리서치 업계, 공기업/공공기관 사무직 직렬들일텐데, 그쪽으로는 나보다 날고 기는 존재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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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공기업/공공기관 쪽으로 갈거면 한능검/컴활 준비를 해야할텐데...
한능검 같은 경우는 희한하게 계속 본능적 거부감이 들고(약간 공기업/공공기관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드나보다) 컴활은... 응, 해야지. 하지만 내가 광고/게임 회사 다니면서 배운 걸로 충분히 내 전산업무는 입증되지 않을까... 싶다... 피벗테이블을 숱하게 만들고 각종 협업툴 다 사용해봤다,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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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개인적으로 취득함에 있어 억울함이 드는 자격증이 바로 한능검/컴활이다.
이미 취득하신 분들께 이 글이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하지만 여기는 내 감정 배수구와 같은 공간이므로 그냥 좋아요만 눌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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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뭔가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취업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았다.
마치 대학만 붙고나면 행복해질거라는 입시생들의 안일한 생각거리처럼... 나도 단순했다.
그런데 막상 취업한 곳들에서는 또 다른 문제들이 나를 기다렸고,
노동착취적 구조에 나를 욱여넣지 않으면 업무핏에 안 맞는 사람으로 규정되고,
이미 노동착취적 구조에 길들여진 사회에 나 또한 그들처럼 정형하지 않으면 MZ가 되어버리니 삶의 희망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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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0대 중후반... 이놈의 빌어먹을 사춘기라는 것은 매년 그 나이에 맞춰 새롭게 정의된다.
노잼시기, 권태기, 사춘기라는 그 무기력한 상태들을 정의하는 수많은 명칭들이 매해 내게 꾸준히 닥쳐온다.
추가로 빌어먹을 자기성찰과 자기반성도 나를 괴리에 빠뜨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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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작성한 ㅈ소기업 탈출기도 그렇다.
애증의 공간이었다. 솔직히, 어떤 가능세계도 존재했을 법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내 나름대로 적응해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수습기간 버티고, 정규직으로 전환돼서 이제는 조금은 더 살가워진 팀원들과 함께 하하호호 웃고 때로는 혼나고, 그런대로 딱 신입이 겪을만한 일들을 겪으며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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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내게 수많은 갈림길이 있었고, 이 지금은 내가 선택한 현실태다. 가능세계에서 불의의 사고로 장님이 되었으나 무용수가 되었던 에블린, 현실에서는 이민자로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에블린, 그녀에게 있었을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세계들처럼, 내게도 수많은 가능세계들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본 나의 가능세계, 아래에 기술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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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
1. 현재 내 본가가 되어버린 그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고, 서울에 남는다.(관사가 제공됨에도 주말부부를 하면 되는데도 꾸역꾸역 우리를 데리고 또 이사를 갔던 아버지...) 그렇게 나는 진학하고 싶었던 수영장이 학교 내부에 있는 중학교로 예정대로 진학해 알고지내던 편한 언굴들과 편하게 학교를 다닌다. 사교육이야 하루에 3개 학원 다니는 건 일상이었고 제법 다닐만 했기에 상관없다. 끔찍한 것은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인한 기회의 박탈이었다.
2. 목표하던대로 대학교 때 전과에 성공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학점으로 그런대로 전공 수업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기업연계 학회 활동도 해보고, 각종 전문지식들을 습득한다. 현장실습도 해보고, 문과 치고는 쓸데있는 전공과 학회/현장실습 경험으로 체험형 인턴을 몇 개 해본 뒤,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되는 직무를 정해 관련하여 곧바로 취준을 진행한다. 대학원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설계.
3. 소설을 투고한 출판사로부터 합격 이메일을 받는다. 마침내 바코드 닉네임을 탈주하고 필명을 만들어본다.
4. 일찍이 가족의 문제는 내가 책임질 것이 아님을 깨닫고 정서적 독립을 강행한다. 마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단단하게 가족을 마음에서 끊어낸다. 내게서 끊임없이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가족 구성원들을 마침내 마음 속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주고, 알아서 청년주택도 신청하고 조교일도 하면서 내 선택에 내가 책임을 지는, 그런대로 정상적인 행보를 걸어본다.
[절망편]
1. 논술 떨어지고 재수학원에 들어가지만 수학이 발목을 잡아 목표로 하던 대학에 끝내 가지 못하고 N수생 진입해서 우울감 토로하다가 해골 엔딩
2. 고등학교 자퇴를 말리는 선생님이 없어 자퇴를 또 단행해 부모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고 내 눈에도 피눈물 흘리게 하는 나락행 열차 탑승
3. 꾸역꾸역 전에 있던 회사 다니다가 도로에 뛰어들어서 인생 종결(1달 넘어갈때쯤 야근이 갈수록 더 심해지면서 당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4. 말로 사람을 여러번 죽인 분조장 형제에게 진짜로 인생 끝맺음 당하기(리터럴리, 분조장. 기분좋을땐 잘해줌, 그러나 자꾸 본인이 저지른 만행을 잊어버림. 내게 손을 댄 적이 없다고 생각해서 좀 신기하다.)
5. 그나마 상대적 유일한 정상인인 엄마의 가정 내에서의 부재
6. 정말로 부모님의 이혼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내가 아빠에게, 형제는 엄마에게 가게 되었을 경우(당시 부자관계 악화정도가 정점을 찍었었고 엄마는 내게 아빠에게 갈 것을 말했었다. 너는 예뻐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이혼서류도 떼왔었다. 아빠가 찢어버렸지만. 근데, 글쎄. 내가 예쁨을 받을 수 있던 건 그나마 아버지의 높은 기대치에 발끝만큼이라도 부응할 수 있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제법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 나도 살아남기 위해 공부한건데; 이게 예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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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하니 절망편 가능세계들만 한가득 나오네.
근데 요즘 희망을 좀 많이 잃었다.
몇번의 경험들로 결국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라는 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요즘 많이 울적해서 내가 해야할 일들에 집중이 안 된다.
연구는 진척이 없고, 끊임없이 갈아엎어지고, 벌어진 문제들은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하반기를 또 버텨낸다면 난 또 다른 한계돌파를 해내는 거겠지.
하지만 너무 버겁고, 고독하다.
허세가득 방구석에서 뭐가 될 거라 생각하며 글을 연신 써대던 20대 초중반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때는 즐거웠지만, 결국 남은 것이 없다. 취업시장 어디에도 어필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나름 알바도, 과외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새벽까지 불태우면서 쓰던 것들인데 그때의 나는 뭣 때문에 그렇게 눈을 반짝이면서 글을 썼을까? 내 한계를 알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점에서, 그것도 참 대단한 집념이다.
나는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는데, 내 행보는 삶의 노예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외국에 살던 시절. 영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던 내 눈에 박힌 글자는 'pioneer'라는 글자였다.
그때는 pineapple과 닮은 저 단어를, 왜 그렇게 담임쌤이 침 튀기며 연설을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뇌리에 박힌 그 단어가 '개척자'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의 일.
하지만 인생은 내가 개간하려던 대로 개간되지도 않았고, 땅을 고르려고 하면 끊임없이 잔가지와 바위들이 땅에 굴러들어와 언제쯤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난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에 가게 됐을 때 마침내 내가 뿌렸던 씨앗이 싹을 틔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싹을 틔운 건 내가 뿌린 씨앗이 아니라, 봄이면 스멀스멀 땅밑에서 기어올라오는 잡초였던 것 같다.
내가 뿌린 씨앗들은 아직도 싹을 틔우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싹이 움트고 썩고 죽기를 수십번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언제쯤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뿌리 없이 사는 삶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