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순정만화를 중심으로 한 미(美)에 대한 담론

~ 할 일 하기 싫은 김에 짧글 쓰러 옴 ~

by 대한민국 노예


1453959463394_edit_edit.jpg 작가님~ 어찌 이런명언을 쓰셨는지~!

필자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세대는 아니지만, 그 세대의 자녀로서 신일숙 작가님의 작품을 참 좋아한다ㅋ

작가님의 작품을 알게 된 건... 필자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만화방을 다니던 시절,

중학교 때 다른 만화책을 보면 마지막 장 쯤에 '파라오의 연인' 만화책을 홍보하는 페이지가 있었고,

그걸 몇 번 노출되다보니 이 고혹적인 미인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384 실로 아름답지 아니한가.

나는 아름다운 것이 정말로 좋다.

전형적인 아름다움도 좋고, 비전형적인 아름다움도 좋아한다.

대체로 인간 개개인에겐 저마다의 외적 미, 내적 미 모두 다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간혹 둘 다 존재하지 않는 이를 만나면 엄청난 안타까움을 느낀다.

속으로 어떤 측은지심까지 일어난다고 해야 하나.

웬만하면 모든 인간에게서 장점을 발굴해내는 나로선, 슬프기 그지없는 일이 따로 없다.

CaLq7mnHTxdqgCda3JnYjjjKWdnyOjmLkoMa1xGo3zqI0bdUuLTXuuOsbuhk654xeSxUpRIMkZsnjG0suVmNxA.webp 베르사이유의 장미-오스칼.

생물학적 성별과 일반적인 미의 기준이 합치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즘이 있는가 하면,

생물학적 성별과 기대되는 성별 역할이 불일치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즘이 있다.

대표적으로, 내게는 베르사이유의 장미-오스칼이 그러한 인물이다.

그 시대의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표방하면서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부분이 특히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입도 잘 되고, 한 켠으로는 소위 여성스럽다고 일컫어지는 성격적 특성까지 지니고 있어서, 그 모든 게 오스칼이라는 인물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여성의 몸으로 남성의 역할을 구가하면서 작중 여성 인물들과 빚어내는 묘한 기류는 소녀팬들을 열광하게 한다고 해야 하나. 내가 마리였으면 오스칼 손 잡고 그냥 도망갔다.

images?q=tbn:ANd9GcRjojoXyFgwHFD3i-W-RTya0xGNpx3ddYeo4g&s 캐릭캐릭체인지-후지사키 나기히코

지금 아름답다고 생각나는 인물들을 정리없이 기술하고 있는데, 그냥 내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은 일반적인 생물학적 성별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 같다. 그런데 단순히 치마를 입고 제 생물학적 성별을 부인하는 인물이 아니라, 납득할만한 이유로, 정당한 근거로 생물학적 성별과는 거리가 먼 소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캐릭터들. 오스칼은 여자의 몸으로 기사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나기히코는 남자의 몸으로 여성을 연기하며 무용을 췄다. 당대 사회에서는 용인하기 어려운 상황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나름 저항하는 인물들이 좋다. 외부환경에서 비롯된 시련이 그들을 가련하게, 근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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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는 인물 또한 좋아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식해보일 정도로 우직하더라도, 신념에 목숨을 바치는 이들이 좋다.

뭐 현대식으로 속되게 표현하면 '꼰대같으며, 융통성이 없는' 인물들일텐데,

줏대없이 이 풍조, 저 풍조에 휩쓸려가며 흔들리는 이들보다는 실속은 없고 미련해보일지라도,

이런 꼰대형 캐릭터들이 좋다고 해야 하나.

신념과 긍지가 그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이건 요즘 현실을 살아가면서 특히 더 느끼는 중.

무언가에 몰입한 인간은 반짝반짝 빛나서 곁에 두고, 가까이 하고 싶더라.

나도 한때는 몰입형 인간이었는데... 쩝.

요즘은 그럭저럭 적당히 살아가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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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갈수록,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직장 동료라던가, 함께 일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참 어렵다...

증오하게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속없이 사랑하고 속없이 좋아할 수 있는 것도 20대초반까지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이의 기점을 넘어가면, 그건 추태가 되고 오버하는 것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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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자처럼 굴지만 이래봬도 박애주의자라 이 인간, 저 인간을 수집하는 인간으로서 느낀건데,

이상하게 친구나 동생들은 사랑하기 쉬운데, 연인은 사랑하기가 참 어렵다.

어떤 이성적 감정 측면에서 불구적 기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연애를 쉰지 n년...

아마 혈육의 감정을 감당하고 집안 식구들의 멘탈을 케어하는 데에서 온 이성적 감정의 불구가 아닐까, 싶다.

연인이 아니면 괜찮은데, 연인이라는 아주 사적인 공간까지 넘어온 이가 한없이 징징대고, 대책 없어 보이면 남들이 보기에는 아까운 상대여도, 만남을 못 이어가겠다. 게다가 누군가가 이성적 관심을 내게 보이면 '네가 뭘 아는데'라는 생각도 들고, 징그럽다는 생각도 드니... 이것 참 문제다.


뭐, 본질적으로는 내가 상대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겠지.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늘 누구나 원할 그런 괜찮은 사람들이었어서,

내게 기회가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괜찮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나도 제법 대외적으로는 의젓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지만...(사회적 자아를 제법 잘 꾸몄다) 내가 한없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안다.

이런 내게도 인생의 동반자라는 것이 생길지 의문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만남의 축복이 있으면 좋겠네.

역시 교회를 가서 배우자 기도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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