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 일 하기 싫은 김에 짧글 쓰러 옴 ~
필자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세대는 아니지만, 그 세대의 자녀로서 신일숙 작가님의 작품을 참 좋아한다ㅋ
작가님의 작품을 알게 된 건... 필자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만화방을 다니던 시절,
중학교 때 다른 만화책을 보면 마지막 장 쯤에 '파라오의 연인' 만화책을 홍보하는 페이지가 있었고,
그걸 몇 번 노출되다보니 이 고혹적인 미인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것이 정말로 좋다.
전형적인 아름다움도 좋고, 비전형적인 아름다움도 좋아한다.
대체로 인간 개개인에겐 저마다의 외적 미, 내적 미 모두 다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간혹 둘 다 존재하지 않는 이를 만나면 엄청난 안타까움을 느낀다.
속으로 어떤 측은지심까지 일어난다고 해야 하나.
웬만하면 모든 인간에게서 장점을 발굴해내는 나로선, 슬프기 그지없는 일이 따로 없다.
생물학적 성별과 일반적인 미의 기준이 합치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즘이 있는가 하면,
생물학적 성별과 기대되는 성별 역할이 불일치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즘이 있다.
대표적으로, 내게는 베르사이유의 장미-오스칼이 그러한 인물이다.
그 시대의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표방하면서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부분이 특히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입도 잘 되고, 한 켠으로는 소위 여성스럽다고 일컫어지는 성격적 특성까지 지니고 있어서, 그 모든 게 오스칼이라는 인물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여성의 몸으로 남성의 역할을 구가하면서 작중 여성 인물들과 빚어내는 묘한 기류는 소녀팬들을 열광하게 한다고 해야 하나. 내가 마리였으면 오스칼 손 잡고 그냥 도망갔다.
지금 아름답다고 생각나는 인물들을 정리없이 기술하고 있는데, 그냥 내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은 일반적인 생물학적 성별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 같다. 그런데 단순히 치마를 입고 제 생물학적 성별을 부인하는 인물이 아니라, 납득할만한 이유로, 정당한 근거로 생물학적 성별과는 거리가 먼 소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캐릭터들. 오스칼은 여자의 몸으로 기사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나기히코는 남자의 몸으로 여성을 연기하며 무용을 췄다. 당대 사회에서는 용인하기 어려운 상황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나름 저항하는 인물들이 좋다. 외부환경에서 비롯된 시련이 그들을 가련하게, 근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는 인물 또한 좋아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식해보일 정도로 우직하더라도, 신념에 목숨을 바치는 이들이 좋다.
뭐 현대식으로 속되게 표현하면 '꼰대같으며, 융통성이 없는' 인물들일텐데,
줏대없이 이 풍조, 저 풍조에 휩쓸려가며 흔들리는 이들보다는 실속은 없고 미련해보일지라도,
이런 꼰대형 캐릭터들이 좋다고 해야 하나.
신념과 긍지가 그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이건 요즘 현실을 살아가면서 특히 더 느끼는 중.
무언가에 몰입한 인간은 반짝반짝 빛나서 곁에 두고, 가까이 하고 싶더라.
나도 한때는 몰입형 인간이었는데... 쩝.
요즘은 그럭저럭 적당히 살아가는듯.
해가 갈수록,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직장 동료라던가, 함께 일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참 어렵다...
증오하게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속없이 사랑하고 속없이 좋아할 수 있는 것도 20대초반까지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이의 기점을 넘어가면, 그건 추태가 되고 오버하는 것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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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자처럼 굴지만 이래봬도 박애주의자라 이 인간, 저 인간을 수집하는 인간으로서 느낀건데,
이상하게 친구나 동생들은 사랑하기 쉬운데, 연인은 사랑하기가 참 어렵다.
어떤 이성적 감정 측면에서 불구적 기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연애를 쉰지 n년...
아마 혈육의 감정을 감당하고 집안 식구들의 멘탈을 케어하는 데에서 온 이성적 감정의 불구가 아닐까, 싶다.
연인이 아니면 괜찮은데, 연인이라는 아주 사적인 공간까지 넘어온 이가 한없이 징징대고, 대책 없어 보이면 남들이 보기에는 아까운 상대여도, 만남을 못 이어가겠다. 게다가 누군가가 이성적 관심을 내게 보이면 '네가 뭘 아는데'라는 생각도 들고, 징그럽다는 생각도 드니... 이것 참 문제다.
뭐, 본질적으로는 내가 상대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겠지.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늘 누구나 원할 그런 괜찮은 사람들이었어서,
내게 기회가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괜찮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나도 제법 대외적으로는 의젓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지만...(사회적 자아를 제법 잘 꾸몄다) 내가 한없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안다.
이런 내게도 인생의 동반자라는 것이 생길지 의문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만남의 축복이 있으면 좋겠네.
역시 교회를 가서 배우자 기도를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