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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인 Mar 28. 2023

피아노를 떠나보내고, 이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피아노>(1993) 간단 리뷰

[영화 피아노 정보]


 말을 할 수 없는 사람과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만나 만들어낸 육체적이고 야만적인 사랑.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장면들에서 불편함보다는 서로 간의 욕망이 먼저 보였다. 쉽게 꺼지지 않는 욕망. 그 욕망은 사랑으로 번져 갔다. 물론, 그 사랑 사이에 장애물은 있었지만 사랑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피아노>(1993) 스틸 컷


 이야기는 단순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인 에이다가 딸 플로라를 데리고 어쩔 수 없이 스튜어트라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 했다. 그런 순간에도 자신의 소통 도구인 피아노를 지켜야 했고, 그걸 베인스라는 남자의 집에 두게 된다.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는 베인스의 집에 가야 했고, 베인스는 피아노를 치는 대신에 에이다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그로 인해 그 둘은 가까워졌으며, 격렬한 사랑을 하고 만다. 그걸 알아차린 스튜어트는 그 둘을 갈라놓지만 결국 본인이 포기해 그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처음엔 이 정도로 격렬한 사랑을 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피아노라는 악기와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소재로 서정적으로나 잔잔한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뜻밖의 흐름으로 흘러가니 보다 흥미롭게 다가왔다.



 에이다 중심으로 흘러간 서사가 눈에 띈다. 철저히 에이다라는 여성의 시각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이 영화가 다른 사랑 관련 영화와는 차별점이 있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남편이 없고 딸이 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황에서 시대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이들을 거둬 준 남자가 있다면 다른 걸 볼 필요도 없이 앞으로 이 남자와 어떻게 살면 좋을지를 생각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남편과 살기로 마음먹은 에이다는 자신의 피아노 때문에 만난 베인스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전까진 냉랭했고 어두웠던 분위기가 베인스를 만나면서 처음엔 불편함만 있었지만 갈수록 불편함은 사라지고 뜨거움이 가득해졌다.



 에이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베인스는 글을 읽지 못한다. 어디 하나 결함이 있는 이들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있고 욕망이라는 게 있다. 그걸 표출하는 장면들은 끈적하고 후끈 달아오르면서도 보다 넘치는 사랑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만큼 서로가 사랑이 고팠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에이다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딸, 자신이 처한 상황, 새로 맞이한 남편보다 베인스가 중요했고 사랑이 중요했다.



 결국, 그 행각을 스튜어트에게 들켜 손가락이 잘리는 불행한 상황까지 놓이지만 에이다는 끝까지 베인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후, 베인스와 함께 떠나면서 에이다의 말로 소중했던 피아노를 버리게 된다. 여기서 처음엔 자신의 유일한 소통 도구였던 피아노를 버린 다는 건 더 이상 자신이 이 세상에 살 이유가 없다고 여긴 건지 자신도 피아노와 함께 바다에 버려진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건 마치 오히려 소통 도구였던 피아노가 자신을 가두는 족쇄라고 여긴 듯했다. 어떠한 말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고, 내 안의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던 에이다. 그걸 다 받아 준 베인스가 있기에 더 이상 이 피아노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파워 오브 도그>(2021), <여인의 초상>(1997) 이전에 봤던 이 두 작품에서도 잔잔하게 흘러가다 확 사로잡는 상황을 만들어 흥미를 느끼게 했었는데, 이번 <피아노>(1993)에서도 그런 부분 덕분에 계속 흥미를 느끼며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차기작이 기대가 된다.






별점 : ★★★★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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