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특별했던 맥주들 : 베스트블레터렌 8
나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덕후’라는 존재다. 그리고 그 관심은 애니메이션 같은 특정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무엇이든 한 번 빠지게 되면, 나는 그 안에서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덕질 포인트’를 찾아내고야 만다.
게임에 빠졌을 땐, ‘역대 최고의 게임은 무엇일까?’ 를 고민하며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하나 직접 플레이해보는 게 낙이었고, 영화에 흥미가 생기고 나선 주말마다 IMDb TOP 250 영화를 한 편씩 정복하듯 봤다. 그림을 좋아하게 된 이후에는 가장 매료되었던 빈센트 반 고흐의 모든 해바라기 작품을 직접 보러 다니는 꿈을 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스컬핀을 통해 맥주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이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도 비슷했다. ‘또 다른 맛있는 맥주는 뭐가 있을까?’ 를 고민하며 찾아다녔고, 그 여정에서 내게 가장 큰 길잡이가 되어준 건 RateBeer라는 맥주 평가 사이트였다.
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 사이트는, 서구권 맥주 마니아들이 각자 마신 맥주에 대한 평가와 리뷰를 공유하던 공간이었다. 한때는 가장 공신력 있는 맥주 평가 플랫폼으로 자리잡았지만, 이후 Untappd와 같은 경쟁 플랫폼에 밀리며 결국 재작년 문을 닫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내 맥주 인생의 절반이 사라진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만큼 RateBeer는 내게 많은 정보를 주었고, 수많은 기억을 담고 있던 곳이었다.
RateBeer는 매년 ‘RateBeer Best’라는 이름으로 최고의 맥주들을 발표하곤 했고, 연중 최고 평점을 받은 맥주들을 모아둔 전용 페이지도 존재했다. 나는 그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이름조차 생소한 전설적인 맥주들의 이름을 하나씩 외우듯 기억했고, 그중 가장 깊게 마음을 빼앗겼던 맥주는 바로 벨기에의 한 작은 수도원에서 만들어진 전설의 맥주, 베스트블레터렌(Westvleteren)이라는 맥주였다.
베스트블레터렌 맥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트라피스트(Trappist) 에일에 대한 설명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트라피스트 에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와 종교적 배경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과거 유럽은 가톨릭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삶의 중심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톨릭을 삶의 기준점으로 삼아 살았지만, 일부는 더욱 깊고 엄격하게 신에게 헌신하고자 했다.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수도회'라는 조직을 형성했고, 세속을 벗어나 수도원에 들어가 신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노동을 병행하는 생활을 하였다.
가톨릭 수도회 중 가장 오래된 형태는 6세기 성 베네딕토가 설립한 '베네딕토회(Benedictine Order)'이다. 베네딕토회는 "기도하며 노동하라(Ora et Labora)"라는 가치를 중요시하며 기도와 노동을 균형 있게 실천하는 수도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수도 생활이 느슨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에 11세기 프랑스 시토(Citeaux) 수도원을 중심으로 좀 더 엄격하고 검소한 생활을 추구하는 '시토회(Cistercian Order)'가 등장하였다. 이후 17세기 프랑스의 '라 트라프(La Trappe)' 수도원에서 더욱 엄격한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수도사들이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트라피스트 수도회'이다.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삼았다. 기도 이외의 시간에는 농사, 필사, 공부 등의 노동을 했으며, 맥주 양조 역시 중요한 노동 중 하나였다. 수도사들이 맥주를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사순절 기간 동안 고기를 포함한 모든 고형 음식이 금지되었기에, 수도사들은 영양을 보충하기 위한 고영양의 맥주를 양조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원래 수도승들의 맥주는 수도원 내부 소비를 목적으로 했지만, 맥주의 품질이 뛰어나 입소문이 퍼지면서 생산량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양조장을 유지하고 운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에게도 맥주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수도승들이 만든 맥주에 대한 명성이 높아지자, 일반 상업 양조장들이 수도원의 이름과 이미지를 무단으로 도용하여 맥주를 팔기 시작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이는 수도원 맥주에 대한 인식 악화로 이어졌고, 진짜 수도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20세기 중반, 벨기에의 베스트말레(Westmalle) 수도원을 중심으로 다른 수도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트라피스트"라는 이름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트라피스트' 명칭 사용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기준을 반드시 만족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1. 맥주는 반드시 수도원 안에서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의 감독 아래 제조되어야 한다.
2. 양조 활동의 목적은 수도원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부수적 수입이어야 하며, 영리 추구가 주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맥주 판매로 얻은 수익은 수도원 유지와 운영에 우선 사용되며, 남은 이익은 자선 활동에 기부되어야 한다.
이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여 공식적인 "트라피스트" 인증을 받은 수도원은 많지 않았다. 2025년 현재에도 전 세계에서 공식 트라피스트 인증을 받은 수도원은 단 10곳뿐이며, 그 중 하나가 바로 베스트블레터렌 맥주를 양조하는 성 식스투스(Saint Sixtus) 수도원이다.
베스트블레터렌 양조장은 단 세 가지 맥주만을 생산한다. 일반적인 소규모 양조장이 다양한 맥주 라인업을 갖추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단출하지만, 수도승들에게 양조는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수도 생활의 일환이기에 다양한 맥주를 만들기 보다는 오직 도수로만 제품을 구분하여 맥주를 양조한다. 도수가 가장 낮고 밝은 금색을 띠는 '블론드(Blond)', 높은 도수와 깊고 묵직한 맛을 가진 '8', 그리고 극도로 높은 도수와 풍부하고 화려한 풍미를 자랑하는 '12'가 그것인데 이 중 '12'는 당시 레이트비어(RateBeer)에서 세계 최고의 맥주 1위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었고, 자연스레 내 '맥켓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맥주라는 타이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베스트블레터렌의 명성은 단지 뛰어난 품질 때문만은 아니었고, 극도의 희귀성 역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른 트라피스트 맥주 일부는 국내에도 수입되었지만, 베스트블레터렌은 높은 수요와 제한된 생산량으로 인해 벨기에 외부로 거의 수출되지 않았다. 심지어 벨기에 내에서도 공식적인 유통이 없어 브뤼셀의 바틀샵들은 개인적으로 수도원을 방문해 구입한 뒤 비싼 값에 되팔곤 했다. 결국 이 맥주를 맛 보려면 벨기에까지 직접 가야 했으며, 당시 학생이었던 내게는 이루기 어려운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방학, 나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났다. 어릴 적부터 나와 어머니는 방학 때마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여행을 떠나곤 하였는데, 이번 여행은 이전에 가보지 않은 홋카이도의 후라노에서 넓게 펼쳐진 라벤더 밭을 보기 위해서였다.
5일간의 휴가 동안 다양한 관광지를 다니며 눈이 즐거웠지만, 이번 여행은 그 이상의 특별함이 있었다. 맥주에 빠져 있던 나는 각 도시마다 펍과 양조장을 찾아다녔고, 국내에서는 볼 수 없던 다양한 맥주를 마주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삿포로에 도착한 날, 어머니와 함께 양갈비 전문점에서 저녁을 마친 후 미리 찾아둔 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어 인 뮤기슈테이(Beer Inn Mugishutei)'라는 이름의 이 펍은 비록 삿포로에서 가장 유명한 펍은 아니었지만, 내가 활동하던 맥주 커뮤니티에서 강력하게 추천받은 곳이라 한 번 들르게 되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멀리서부터 펍의 외벽에 크게 걸린 사장님의 맥주를 든 사진을 보고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정말 맥주에 진심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병뚜껑으로 가득 장식된 벽이 나타났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자, 그곳엔 바깥과 단절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클래식한 원목 인테리어, 높은 천장과 수많은 빈 병으로 장식된 벽면, 길게 늘어선 냉장고들. 안내를 받은 뒤 자리를 잡자마자 나는 냉장고 앞으로 달려가 맥주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는 크래프트 맥주 붐 초기로 수입되는 맥주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더 먼저 크래프트 맥주 문화가 시작되어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맥주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다행히 미리 예습을 해간 나는 마치 갓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어린 아이가 보이는 간판마다 소리내어 읽듯이, 맥주 하나하나 라벨을 읽으며 '와, 이 맥주도 여기 있잖아!' 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로그(Rogue),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헤어 오브 더 독(Hair of the Dog) 등 전설적인 양조장의 맥주들을 보며 감탄하던 중, 문득 어떤 라벨도 없는 맥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면 라벨이 없었기에 그 맥주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전설 속의 맥주, 베스트블레터렌이었다.
베스트블레터렌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라벨도 붙이지 않고 오직 병뚜껑으로만 제품을 구분한다는 점이었고 그 때문에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농담삼아 '참기름병'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제는 수출이 늘어 법적인 문제 때문에 라벨을 부착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으나 과거 심플함 그 자체의 모습은 오히려 위엄을 느끼게 했다.
매장에서 판매 중이던 제품은 아쉽게도 기대했던 '12'는 아니였지만, 그 아랫급인 '8'로 도수만 조금 낮을 뿐 퀄리티는 여전히 훌륭한 맥주로 유명했으며 심지어 레이트비어에서 '100/100점(전체 맥주 중에서도 최상위, 해당 스타일에서도 최상위)'이라는 어마어마한 점수를 받고 있는 맥주였다. 하지만 발목을 잡던 것은 바로 가격. 원래 비싼 맥주로 알고는 있었지만 맥주 한 병에 2,000엔이라는 가격은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던 나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고, 쉽사리 집을 수 없게 하였다.
우선 자리에 돌아와 생맥주 샘플러를 마시며 어머니와 담소를 나누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냉장고 앞에서 망설였다. 조금 더 고민하였지만 맥주 한 병에 치킨 한 마리 이상의 돈을 내는 것은 너무나도 부담스러웠고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내 표정을 본 어머니가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나는 사정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시더니, 내게 맥주를 꺼내오라고 하셨다. 맥주 한 병에 2만원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고 만류했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만원으로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엄마는 이 돈이 아깝지 않단다."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맥주를 샀고, 한국으로 돌아와 맥주 친구들과 함께 즐기며 그 가치를 충분히 누렸다. 맥주는 당연히도 깊고 맛있었지만, 내가 이 맥주를 잊을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맛 보다도 이 맥주를 구매하던 그 순간 어머니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할 때 마다 마지막에 내게 행복한지 묻는다. 베스트블레터렌 8을 집은 뒤 먼 길을 걸어왔지만,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네, 정말 매일 매일이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