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초여름 날씨가 꽤나 더웠다. 날씨가 더우니 가족들의 외식메뉴는 자연스럽게 시원한 동치미 막국수로 정해졌다. 시내와 외곽지 곳곳에 늘어선 것이 막국수 집이다. 좀 괜찮다고 소문난 집은 가는 곳마다 줄을 서서 한참 기다릴 것이 뻔했다. 음식맛에 진심인 편은 아니라서 땡볕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외곽에 새로 개업을 한 식당이 붐비지 않을 것 같아 바람도 쐴 겸 찾아갔다.
신축 건물이라서 그런지 규모도 크고 쾌적했다. 식탁에 앉아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잠시 후 "길을 비켜 주세요"하는 기계음과 함께 로봇이 음식을 싣고 우리 테이블 옆에 와서 섰다. 서빙까지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서 그런지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서 좋았다. 아이들은 로봇이 귀엽게 생겼다며 신기하다고했지만,서빙은 로봇, 물과 반찬은 셀프, 현관 앞인사는 마네킹, 왠지 편리함 보다는 좀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도 AI(인공지능)와 키오스크가 많이 보인다. 업종을 막론하고서비스 분야에는 셀프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다. 셀프서비스의 시작은 영업용 버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춘기 학창 시절은 젊은 여성을 찾아볼 수 없는 시골에서 보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모두 도시로 돈 벌러 떠났기 때문이다. 어쩌다 타 지역으로 여행을 하기 위해 직행버스(요즘의 무정차, 직통)를 타면 젊은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예쁜 유니폼을 입고 상냥하게 서비스하는 안내양을. 안전벨트를 점검하기 위해 옆으로 다가올 때 은은하게 풍겨오는 화장품 냄새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수줍은 사춘기 소년은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예쁜 안내양을 훔쳐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시내버스를 시작으로 점차 안내양이 없어졌다. 이제는 모바일로 버스표를 예매하고, 셀프로 검표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가는 곳마다 셀프서비스로 변화하고 있다. 어느 순간 대형마트 계산대의 캐셔(계산원)자리는셀프계산대가 대신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마트 식당은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셀프로 음식을 받아 간다.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의 민원서류 발급, 병원의 치료비 수납, 지하철과 터미널의 승차권 구입 등 가는 곳마다 키오스크를 만난다. 그야말로 셀프서비스의 전성시대라고할 수 있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노안이 왔지만, 업무시간에만 돋보기를 사용하면 되고 일상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키오스크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으니,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려니 어쩔 수 없이 고가의 다초점 안경을 쓰고 외출을 한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령층이 급증하는 현실이다. 젊은 층에 맞춰진 셀프서비스의 증가는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도 우려된다. 노령층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시스템 고장 등 예외적인 상황이 닥치면 관리자를 찾기 힘들어 불편할 수 있다.
아무리 자동화 시스템과 AI가 발전한다고 해도 맛집 주인장의 정감 어린 인사, 버스안내양의 상냥한 미소, 사춘기 시절의 아련한 추억 등 사람들과 부대끼며느끼는 감성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전의 추억이 그립다면 나이 들었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