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다!"
"내가 왜 할아버지니? 아저씨지"
아내가 이웃집 아이를 집에 데려와 몇 시간 돌봐주던 날. 현관을 들어서던 아이가 나를 보더니 할아버지라고 한다. 갑자기 늙어버린 기분이다. 장난 삼아 할아버지가 아니라고 하다가, 이내 겸연쩍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할아버지가 아닐 수 없지 않나. 아이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두 나보다 젊은 50대라고 한다. 동기들 카톡 프사에 손주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얼추 10년이다. 올해에는 여동생까지 손자를 봤다.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는 틀림없는 할아버지다. 결혼한 자녀가 없어서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
이렇게 현실인식이 떨어지는 것도 남들보다는 때가 늦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동기들이 대부분 27~28세에 결혼을 하는 시절이었다. 어쩌다 보니 남들보다 결혼이 늦어졌다. 서른 살을 넘어가자 농담조로 노총각이라고 부르는 선배들도 있었다. 요즘에는 결혼 적령기로 보지만, 30대가 되니 때가 늦었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20대와 달리 주변에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젊은 여성은 모두 6~7살 어린 사람들뿐이다. 섣불리 말을 붙였다간 무안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연애를 하기에도 이미 때를 놓친 것이었다. 결혼이 2~3년 늦어지니 아빠가 되는 것도, 학부형이 되는 것도, 할아버지가 되는 것도 모두 순차적으로 늦어진 것이다. 더불어 나의 현실인식도.
최근 각종 미디어에서 많이 흘러나오는 말이 있다. '100세 시대'. 세상사람 누구나 100살이 넘게 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이 들어 보니 이보다 더 허울 좋은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의술의 도움으로 남성, 여성의 가임연령과 평균수명이 높아졌을 뿐이다. 생활방식과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 조금 젊어졌을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곳저곳 몸이 아파오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다. 50대 중반을 넘어서니 아무리 젊어 보이는 사람도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긴다고 한다. 내 몸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평균초혼연령이 남성은 33.7세, 여성은 31.3세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취업이 늦어지고 경제적 기반을 고려하다 보니 점점 초혼 연령도 높아지는 것 같다. 젊을 때는 나이 들어도 늙지 않을 것 같고, 노인들 병원 다니는 모습을 보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나는 늙어도 절대 저렇게는 안 살 거야. 멋있게 늙어갈 거야"라고 자신한다. 비혼주의, 딩크족, 얼마나 멋있고 행복한 말인가? 그런데 모르는 것이다. 인생에서 절대라는 건 없다.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순간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 딩크부부였다가 마음이 바뀌어 난임부부가 된 사람들도 있다. 자신들의 마음이 변할지 상상이나 했을까. 요즘은 초등학생 학부모 중 40~50대도 많다고 한다. 아이들 돌보고 놀아 주는 것도 20~30대의 청춘이나 가능한 것이다. 나이 들면 힘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때를 놓치면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세상을 살다 보면 다~ 때가 있는 법이다."라고 하시던 어른들 말씀을 안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은 타이밍(timing)이다. 축구경기 할 때 "타이밍에 맞춘 패스", "주식투자의 수익률은 결국 타이밍이다", "이성의 마음을 얻는 것도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예전 어른들이 많이 하시던 '때'라는 단어가 영어 타이밍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때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불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