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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미장원 가는날

by 박순영

버티고 버티다 조금전 집앞 미용실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겨울이고 해서 짧게 자르면 추울것도 같고 염색까지 하면 돈이 많이 들어서

이번 겨울은 그냥 버티려고 하였는데

앞머리가 계속 신경을 긁어서 가기로 하였다.



그러고보니,20대때 명동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다짜고짜

자기 단골 헤어샵이라면서 나를 끌고 간적이 있다.

난 정말 1,2년에 한번이나 갈까 말까 한 미용실을,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한 그런곳에 들어가니 주눅이 들어버렸다.

'친구가 이런거 잘 모르니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친구가 입방정을 떨었고

나는 '너 두고 봐'라고 했는데,


그 디자이너는 정말 내 의향은 묻지 않고 가위질을 시작하였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분의 가위질 끝에 치렁치렁한 내 머리에 세련된 층이 생겨났고

내가봐도 이뻐보였다.

물론 그 대가는 참혹하리만치 컸다. 5분도 안되는 커트질에 7만을 썼으니.

당시, 동네 미용실은 정말 1/10의 가격을 받고 있었으니..


그렇게 집에와서 거울을 '요리보고 조리보고'하다가 나는 씩 웃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돈 7만을 쓸만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명동머리를 휘날리며 거리를 활보했고 일을 했고 사람들을 만났다.

비록 내 머리가 쑥쑥 자라는 바람에 그 호사스러움을 길게 누리진 못하였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디자이너의 능숙한 가위놀림이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언제나 그 '지경'에 이르러 글이 술술 나오고 삶의 페습에 '의연히' 맞설까, 궁금하다.


이따 4시로 예약이 잡혔으니 오늘 운동은 아무래도 생략해야겠다.

시간이 어중간한다.


이즈음 되면 동네 어디선가 캐럴이 들려와야 하는데 그런것도 없는 적막한 성탄시즌인게

조금은 쓸쓸하다


google, 영화 <가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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