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탈리안 피자>

민규가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by 박순영


주문을 마치고나자 오랜만에 피자를 먹어본다는 기대감이 앞선다. 수경은 이제 반정도 진행된 소설 번역을 잠깐 쉬기로 하고 창을 열어본다. 그야말로 구름한점 없는 하늘이다..그와 여행을 떠나던 그날 아침처럼....

분명 피자가 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초인종은 울리지 않는다. 왜 이러지? 하며 수경은 다시 배달앱을 켜본다 . 아차...주소를 바꾸지 않은채 시켰구나..순간 그녀의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5분후, 인천 그의 집으로 피자가 도착한다고 배송상황이 떠있다.

민규는 유난히 이탈리안 피자를 좋아했다. 아들 천이와 먹으려면 최소 두판은 시켜야 했다. 잊지마. 대자 콜라, 하던 그의 전화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너 가끔 이렇게 피자시켜준다고 유세떨면 혼난다?” 하던 그의 농섞인 목소리가 떠올라 수경은 울컥한다. 그나저나 그에게 뭐라고 변병을 하나....6개월전 남도로 함께 여행을 다녀온 뒤 그는 작정한 듯 이별을 통보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몰라 나도... 암튼 지금 내 상황이 여자 만날 그럴게 못돼. 천이도 아직 어려서 내 손이

필요하고 집세도 올려줘야 하고”

그 집세라는게 보증금 500을 올려달라는거였다. 그정도쯤은 수경에게 있으려니 했던 민규는 융통해달라고 했지만 수경역시 빠듯한 살림이고 소설 한권을 번역해봐야 한달생활비 정도였다.

“좀 기다려줘. 내가 시나리오 보내놓은게 있는데 채택되면 줄게”라고 하자 민규는 처음엔 응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수경이 보낸 시나리오는 두세달이 가도 채택되었다는 연락이 오지 않고 그러자 민규는 ‘서로 도움이 못되는 사이는 헤어지는게 낫다’라는 이별 통보를 해왔다. 수경은 어떻게든 그런 민규를 잡으려 했고 그렇게 둘은 서너번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다 결국은 헤어졌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고 서로간에 한두번씩의 짧은 안부문자 정도를 나눈게 다였다. 그나저나 이놈의 피자가 이제 1분있음 도착한다는 배송상황에 수경은 숨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진다.. 그러고 있는데 드디어 배송완료로 상황은 종료되고 민규는 어리둥절해하며 피자를 받으리라....수경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러나 민규로부턴 아무 연락이 없다. 분명 수경이 보낸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묵묵부답인 것이다. 그 피자를 그냥 버린건 아닐까, 수경은 그런 생각까지 든다.

올려달라는 집세 500은 융통을 했을까, 그게 또 궁금해진다. 둘의 결정적 이별원인이었던 단돈 500이 그녀는 야속했다.


민규는 지독히도 안팔리는 지식인 소설을 고집하는 작가였다. 수경이 번역일로 편집부에 들어설 때 민규는 편집장과 실랑이중이었다.

“ 강작가 우리도 장사좀 하자”

“어차피 난 돈같은거 포기했으니 이래라저래라 하지마슈”

하고는 민규는 원고뭉치를 다시 집어들며 몸을 돌렸다. 그때 수경과 둘은 눈이 마주쳤고 잠시후 둘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민규가 어느날 불쑥 수경의 번역소설을 읽고 감상평을 그녀의 이메일로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민규는 아들을 자기가 맡기로 하고 아내와 헤어진 이혼남이었고 그 아들이 아직 어리다고 했다. 고작 일곱 살이라고.


둘이 그렇게 메일이며 문자를 주고받던 어느날, 수경은 한밤에 울리는 초인종소리에 잠시 긴장했다. 그리고는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하곤 다시한번 놀란다. 민규가 문밖에 서있는 것이다. 빗속을 뚫고 그가 왔다는 생각에 그녀는 곧바로 문을 열어준다. 늦은 시각이라 체인이 걸린것도 모른채...

“뭐야 체인을 풀어야지”

웃으며 민규가 들어서던 그밤이 아직도 그녀의 뇌리에 생생하다.


그날밤, 민규는 그녀를 안으며 속삭였다. 천이 자는 사이 몰래 나와서 금방 가야한다고...

그렇게 민규는 비그친 새벽을 가르며 다시 그녀로부터 멀어져갔다. 다 찌그러진 경차 한 대가 인천을 향해 최대한의 속도로 달렸으리라...

이후 민규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번, 불쑥불쑥 그렇게 그녀를 찾았고 둘은 당연하단 듯이 한몸이 되었다.


“나 이번에 공모에 장편 냈거든?”

그가 정사가 끝난뒤 말을 꺼냈다.

“장편? ”

“그거 1등이 5000이야. 그거 되면 우리 살림 합치자”

그는 마치 다 된 듯이 으스대며 그녀에게 같이 살자고 제의했다.

“자신있어?”

“그럼...”


그러나 민규는 그 공모에서 탈락하고 돈 5000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예민해지고 아들 천이에게 이번에 상금타면 넓은 평수로 이사간다고 약속을 했는데 거짓말 한 셈이 돼버리고 말았다고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자학은 결국 수경에게 화살이 돼서 날아와 꽂히고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500을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고 나서는 거의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장 돈을 구할길이없는 수경은 친구 몇에게 전화를 돌려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한 냉대와 무시뿐이었다. 그중엔 예전에 수경에게 급전을 빌린 친구도 있어서 믿거니 하고 돈이야기를 꺼냈다 호된 질책만 받았다. 남자친구가 급해서,라고 말한게 빌미가 돼서, 너 그나이에 혼자 살면 돈부터 잘 간수해야돼,라는 듣지않아도 될 훈계까지 들은 것이다...

결국 돈 500을 구하지 못한 그녀는 하루이틀 기다려보라했고 수세에 몰린 민규는 결국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대출받으면 될걸, 그걸 안해주네, 라고 했든가. 프리랜서들이 얼마나 은행에서 홀대받는지 그는 알지 못하는듯했다. 하긴, 그는 출판사가 부도나서 세금을 못내게 되자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이후 은행을 들낙거릴 일이 없었으니 ‘겨우 그깟 500’이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남도 여행을 먼저 제안한건 민규였다. 이미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둘이 여행을 간다는 자체가 수경은 내키지 않았고 가서도 돈 때문에 싸울것이 예상돼 미루자고 했지만 민규는 지금이 가을낚시철이라며 굳이 우겨댔다. 결국 둘은 최저가 펜션을 잡아 남도로 향했다. 서너번씩이나 휴게소에 들러야 하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가는 동안도 민규는 누이에게 맡겨놓은 천이가 걱정되는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아이와 통화했다.

펜션은 다섯평 남짓의 아담한 컨네이너를 연상시키는 조금은 쇠락한,그래서 또 아늑한 느낌을 주는 그런 공간이었다. 수경이 가능한한 식비를 줄이기 위해 싸온 식재료들을 꺼내놓자 민규는 못마땅한 듯이 타박을 했다. 너 살림하러 왔냐, 이사왔냐...하면서.

첫날밤 둘은 긴 여정에 지쳐 이내 곯아떨어지고 새벽녘, 그녀의 어깨를 흔드는 민규의 손길에 수경은 눈을 떴고 둘은 오랜만에 한몸이 되었다. 그리고는 민규가 TV뉴스를 보는 동안 수경은 압력밥솥에 쌀을 안치고 가져온 식자재로 아침을 준비했다. 그렇게 앉은뱅이 식탁에 마주앉자 민규가 쑥스러운 듯 내뱉었다. 우리 꼭 신혼같다.. 그지?





그말에 수경도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여행의 설레임도 잠시, 2박 3일 내내 민규는 돈 500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고 수경은 대출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하다고 해도 상환능력이 없다며 맞섰다. 그렇게 둘은 멀고먼 남도 여행지에서 돈 때문에 옥신각신하다 결국 펜션을 나와 새벽길을 가르며 상경길에 올랐다.

“내가 나쁜놈이지?”

“자기야. 우리 돈 얘기 그만하자”

“사내자식이 얼마나 못났음 돈 500이 없어서 여자한테...”라며 그가 잠시 차를 세운 휴게소에서 줄담배를 태워댔다.

그때 수경은 느꼈다. 결국 이남자와는 이렇게 헤어지게 될거라고...

그리고는 둘은 나머지 길을 서로 말한마디 없이 내처 달리기만 했다.


수경은 뒤늦게 배달앱 수령지를 자신의 주소로 바꾼다. 시간은 자정을 넘겼고 그때까지 민규에게선 그 어떤 연락도 없다. 우린 정말 끊어진걸까...이대로 끝난걸까....

그녀가 가수면 상태에서 끝도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꿈을 꾸고 있을 때 전화벨이 비현실적으로 들려온다. 그녀는 눈도 뜨지 않은채 기계적으로 통화버튼을 누른다.

“내일좀 볼까?”

민규의 짧고 조금은 저돌적인 첫마디에 수경은 움찔한다.

보증금은 해결했냐는 수경의 조심스런 질문에 그는 "친구 한테서 융통 했어”라고 대답하며 라테 한모금을 마신다.6개월을 못본 사이 그가 조금은 수척해졌다고 수경은 느낀다.

“어떻게 지냈어?”

그가 조금은 업된 톤으로 수경에게 물어온다. 뜬금없이 받은 피자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곧장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진 않았다는 생각에 수경은 다행이란 생각을한다.

“그냥 엉망으루...천이는 잘있어?”

그러자 민규가 손깍지를 끼며 피식 웃는다.

저 웃음의 의미는 뭘까, 수경은 마음이 복잡해진다.

“정말 해주고 싶었어 그돈. 근데"

”이제 그 얘긴 그만하자. 오늘 보자고 한건 그래도 한번은 더 봐야 할거 같아서..“라고 그가 말끝을 흐린다.

이 남자와는 또 헤어져야 하는건가, 수경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시 이어질 방법은 정녕 없는걸까....수경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미 냉랭하게 멀어진 그를 붙잡을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젠 그런짓 하지마. “

”응?“

”배달시키는거...“

수경은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실수로 그랬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민규가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깟 500 때문에....수경의 혼잣말에 민규가 뭐? 하고 되물어온다. 하지만 수경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잘살아,라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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