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크리스마스 이별>

내년 크리스마스엔 결혼하자

by 박순영


종구는 지난밤 밤새워 번역을 했다며 미영의 전화에 짧게 대답한다. 미영은 달력을 본다.내일이 크리스마슨데...

지난번 종구가 새벽에 낚시도구를 챙겨와 불쑥 낚시가자고 해서 얼결에 나섰던 목포행 이후로 한달 넘게 미영은 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웹에 연재중이던 소설이 구독자가 점점 준다고 중단당하고 종구는 한동안 넋이 나간채로 지내더니 어느날 부턴가 번역이라도 해야겠다는 난데없는 이야기를 문자에 쏟아냈다.

종구는 경영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2년제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딱히 외국어, 그러니까 영어와는 맥이 닿지 않는 삶인데도 그는 불쑥 그쪽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것이었다. 경영학과 2학년 말에 난데없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는 바람에 자의반 타의반 작가의 길을 갈줄 알았던 그였지만, 그게 다였다. 신춘문예 당선이 곧 문단 활동과 이어진다는, 수입이 보장된다는 것도 아니었고 해서, 그는 출판사에서 윤문거릴 가져다 남의 글을 다듬는 일을 하다 지인 하나가 귀뜸해준 웹소설에 응모, 가작으로 입선했다.

나이에 비해 젊은 감각을 가진 그였기에 남보다 조금은 빠르게 적응해나가는게 미영은 대견하고 안심이 됐지만 유료구독자 수가 줄면서 그 일마저 놓게 된것이다.


그렇게 지금 종구는 영어권 실용서, 그중에서도 자기개발 서를 번역하는 일을 간간이 하고 있다. 전문대학 선배가하는 도서 기획 출판 번역 회사인 H에서 일거릴 받아다 하고 있다.

“학교때 나 영어라면 지긋지긋했거든?”

그가 처음 번역거릴 받아와서 하던 이야기가 생각나 미영은 적잖이 걱정했으나 의외로 종구는 큰 어려움없이 번역일을 해나갔다.

“ 나 이게 천직인가봐..”

어느날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가 웃기도 하였다. 처음 번역한 책이 중박 정도의 성과를 낸 것이 동력이 된듯했다 .그러나 그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H에서도 은근 눈치를 주고 그래선지 종구도 적잖이 주눅들어했다. 그리고는 “다 귀찮다”며 낚시나 가자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2박 3일, 목포를 돌고 온 뒤 그는 두문불출 지내고 있다. 여행 경비는 물론 미영이 다 지불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분담’이란 개념자체가 그에겐 없는듯해서 미영은 ,과연 날 사랑하기는 하는걸까, 의심할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목포 펜션을 잡을때도 그랬다. 종구는 문자로 펜션 몇 개를 보내왔고 그중에서 골라 예약을 하라는 식이었다. 미영은 안그래도 세 만기가 되면서 보증금이며 월세 둘다 올라가 경리 월급으로는 벅찬 상황에 종구의 그런 요구가 원망스러웠지만 , 돈벌이가 거의 없다시피 한 그의 상황을 모르는게 아니어서 딱잘라 거절하거나 분담하자는 말조차 꺼내기가 힘들어 울며 겨자먹기로 숙소를 자기 카드로 분할 납후 했다. 그러고 나자, 종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 신용카드 지참”이라는 문구를 보내왔다. 아, 어쩜 이럴수가 있을까...

그렇게 올 100% 여행비며 낚시 경비를 물게 된 미영은, 갯바위 저만치서 낚시에 몰두해있는 종구를 보면서 서울 올라가는대로 헤어지겠노라 다짐했다. 그런 그의 미영의 심기를 눈치라도 챘는지 종구는 올라오는 길에 차 안에서 힐끔힐끔 조수석의 미영을 훔쳐봤다...그러더니 하는 말이 “이번에 대박치면 니 돈 다 갚아”하며 툴툴댔다. 한 일이없는데 무슨 대박을...그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번역은 좀 쉬려고 해. 내 글을 써야지, 하면서 오랜만에 자기 소설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아닌게아니라 그가 지난번 번역한책은 독자의 시선조차 끌지 못했고 종구의 원룸 월세는 석달째 밀리게 되었다.

어느날밤, 종구는 불쑥 전화를 해서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가 사는 부암동 언덕을 올라갈라치면 미영은 숨이 헉헉 턱 끝에 닿을듯했다. 그래도 미영은 퇴근하자마자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택시로 부암동으로 향했다.


“너 돈좀 있어?”

미영이 끓여내온 내장탕을 한모금 맛보더니 종구가 턱 내뱉은 말이 이랬다.

그럼 그렇지, 돈 얘기가 아니면 뭣 때문에 날 불렀을까,싶어 미영은 화가 났다.

“방을 빼달라네. 월세좀 밀렸다고”

처음 이 방을 계약한건 보증금 100이라는 마력의 금액때문이기도 했다. 거의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인 보증금이 , 벌이가 시원찮은 종구에겐 메리트가 아닐수 없었다. 그렇게 들어온 집이건만, 몇푼 안되는 월세마저 밀리자 주인은 있는대로 짜증섞인 목소리로 당장 방을 빼라고 통보한것이다.

순간 미명은 암산에 들어간다 . 석달치면 150이고, 그걸 못낸거라면 생계비마저 없다는 뜻이리라...

“야, 니가 뭐가 모잘라 그런 놈팽이한테 끌려다녀. 당장 끊어”

여고 동창 선주가 미영으로부터 종구의 이야기를 듣고는 단박에 쏟아낸 말이었다. 널 좋아하기나 하는거야? 라는 선주의 물음에 미영은 딱히 대답을 찾지 못해 레몬차만 마셔댔다...

날 좋아하긴 하는건가...





그렇게 석달치 밀린 월세를 미영이 대신 내주고 생계비 일부까지 보조하면서 둘의 사이는 애매해지기까지 했다. 이후로 종구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생필품이며 때론 옷가지 신발, 차 기름값까지 미영에게 요구하곤 했다. 그의 방식은 늘 같았다. 문자화면에 원하는 물품을 띄우면 되는것이었다.

아, 이렇게 편리한 삶이 다 있구나, 미영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결국엔 그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꼴이 됐고 언제부턴가 종구는 미영이 보낸 택배를 받았다는 당연한 문자까지 씹기시작해 미영이 전화로 일일이 물어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면 종구는 “귀찮아서”라며 정말 귀찮아했다.

왜 이 남자는 나한테 결혼하자는 얘기를 안할까, 미영은 그게 내심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날인가, 둘이 불콰하게 술이 올라 섹스를 한뒤, 미영은 조심스레 결혼이야기를 꺼냈지만 종구는 냅다 화부터 냈다. 지금 내 형편을 알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그말에 미영은 내심 이별을 결심했다.


둘이 사귄지 3년이 돼가도록 한번도 종구 입에서 결혼이야기나 미래를 기약하는 그 어떤 류의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날 미영은 문자에, 서로 다른 삶의 방식에 지쳐 더 이상 이 관계를 끌어나갈수 없다,는 내용을 써보냈다. 그러자 득달같이 종구의 답문이 왔다. 그럼 헤어져!

그렇게 둘은 헤어졌지만 어느날밤, 종구가 불쑥 미영이 사는 다가구 2층앞에 나타나면서 둘의 헤어짐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이후로도 종구의 물질적 요구는 계속되었고 결국 미영은 카드 리볼빙까지 들어가야했다. 참다못해 그런 이야기를 해도 종구는 나몰라라하는 식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확답을 들으리라, 미영은 다짐하고 첫눈이 내리던 12월 초부터 날짜 카운팅에 들어갔다. 어렵게 새로 얻은 번역거리에 몰두한다는 핑계로 미영이 전액을 지불한 목포여행 이후 한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종구를 원망하고 그리워하며 미영은 그렇게 한해의 마지막 달을 뒤숭숭하게 보냈다.

그리고는 성탄 이브에 종구에게 전화를 건 미영은 단박에 만남을 거절당한 것이다. 밤새워 번역을 했다며 피곤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그에게 미영도 더 이상은 참을수가 없어, “내일이 무슨 날인줄 알어?”하고 쏘아붙인다. 그러자 종구는 “야, 내 조상 제사도 못지내는데 서양귀신 생일 챙길 일 있냐”며 버럭 화를 냈다. 아, 이 남자, 해도해도 너무 하는구나....


크리스마스면 쌀이 나오냐 집이 나오냐, 기초생활자라고 동사무소에서 케익이라도 갖다주길 하냐면서 종구는 안해도 될 말까지 연신 쏟아냈다. 차마 그의 이야기를 더 들을수 없던 미영은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사람이 아니다. 이건 연애도 무엇도 아닌 그저 착취에 불과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그간 자기가 종구에게 들인 돈의 액수를 가늠해본다. 밀린 월세며 다달이 들어간 생활비, 그리고 수시로 조공처럼 받치게 했던 물품금액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정신적 피해보상이었다. 그 모든걸 청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녀는 한다.


그리고는 다음날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그녀는 부암동행 버스에 올라탄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보고 말리라. 자기가 청구하는 금액을 안주면 고소하리라, 그녀는 다짐한다. 그러다 내릴 정거장을 지나치기까지 했다. 그렇게 종구의 집이 있는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저만치서 미끄러질세라 종구가 조심조심 결빙된 경사면을 내려오는게 보였다.

“어?”

올라오는 미영을 본 종구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내가 가려고 했는데?”

그말에 미영은 온몸이 굳어온다.

“차는...”

그말에 종구는 씩 웃으며 “짜부러졌지 길에서”라며 그가 머리를 긁적인다. 처음부터 폐차나 다름없는걸 산 탓이리라. 목포를 가면서도 몇 번씩 말썽을 일으켰던, 여기저기 찌그러진 그 차가 드디어 도심 한복판에서 서버렸다는 것이다.

“나한테 오는거였어?”

“니가 지난밤 앙탈 부렸잖아 . 성탄이라고”

“성탄에 밥이 나와 집이 나오냐고 당신이..”하는데 종구가 와락 미영을 안는다. 그의 품이 새벽 한기에 매우 차다고 미영은 느낀다.

“유치하게. 나이가 몇인데 크리스마스 어쩌구 그래” 하며 종구가 자기 품에 안긴 미영의 흐트러진 앞머릴 가지런히 해준다. 이남자한테 청구할게 총 얼마드라...생각하는데 갑자기 뭉클해온다.

“왜?”

종구가 궁금한 얼굴로 물어온다. 아무 대답도 없는 미영의 얼굴을 한참보다 그가 내뱉는다. 내년 크리스마스엔 결혼하자. 형편 안되면 니가 다 내는거다?

그말에 미영은 그의 가슴팍을 툭 치며 마침내 울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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