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오는 사람

by 박순영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어쩐지 불길하다. 혜성은 졸린눈을 비벼가며 손을 뻗어 전화기를 집는다.

액정에 뜬 발신자를 보고 그녀는 당황한다 . 형식이었다. 무슨일일까...지난 여름 헤어진 그가, 그동안 단한번도 연락을 해오지 않았던 그가...

"응"

"머리아프다"

그는 혼잣말처럼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뭐라구?"

"아냐...나중에...머리 아프다"하고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늘 신경쇠약과 불안에 시달렸고 공황발작도 자주 와서 혜성을 걱정시키곤 하였다. 그런 그가 이 시각에 저런 전화를 할정도면..

그녀는 더 자기는 그른거 같아 그만 일어나기로 한다. 그리고는 바깥을 보니 아직 깜깜하다.


지난 여름 둘은 돈이 빌미가 돼서 헤어졌다. 아니 오래전부터 누적돼온 돈과 관련된 잡다한 문제가 불거졌다고 하는게 맞을것이다.

그는 친구와 작게 it관련 벤처를 하겠다고 하였고 혜성은 적은 월급이나마 꼬박꼬박 나오는 기존 회사를 계속 다니라고 하면서 둘은 부딪혔다. 기어코 회사를 그만둔그는 변두리에 작은 사무실을 임대해 친구와 둘이 사업을 시작했고 창업금 지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연히 되리라 생각했던 창업금지원이 물거품이 되면서 그는 돈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하였다.

맨처음 손을 내민 형제들에게서는 단 1원도 얻어내지 못하였고 가까운 친구들은 그래도 십시일반 갹출해서 돈 1000을 주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모자라 혜성에게 돈을 달라고 하였고 펜데믹 여파로 네일샵도 불황인지라 그녀는 줄수가 없었다.

그러면 권리금이라도 받아서 그녀를 채근하였지만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렇게 계속되는 다툼끝에 둘은 헤어졌다.



그런 그가 반년만에 불쑥 새벽에 전화를 걸어 혼잣말을 하고는 끊어버렸다.

그는 자주 두통을 호소하였다. 그러면서 '난 죽는다. 오래 못산다'는 말을 곧잘 하고는 하였다.

그에게 그 지독한 '두통'이라도 왔다는 얘긴가...

혜성은 가게에 나가면서도 마음이 뒤숭숭하기만 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형식에게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택시로 만원 거리면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갈 수가 있다. 그럼에도 둘다 서로를 한번도 찾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택시를 잡으려다 포기하고 돌아선다. 이미 끝난 사랑인데...



그러다 그날밤 그녀는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어 그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무슨 일이 있냐고. 어디가 많이 아프냐고...

그러자 그가 곧바로 열어본다. 그러나 답은 없다...


이제는 성탄이 다가와도 불황과 펜데믹 때문인지 거리는 스산하기만 하다. 어디서도 캐럴은 들려오지 않는다.

작년 성탄을 혜성은 형식없이 홀로 보냈다. 그녀는 성탄 이브에 일찍 가게 문을 닫고 그에게 전화해서 저녁에 집으로 오라고 하였지만 형식은 그때 한참 퇴사를 생각할때라 그만 두기 전에 처리할 업무가 많다며 그녀의 청을 거절했다.

"너 속도 편하다. 성탄이면 보너스가 나오냐 집이 나오냐. 니가 몇살인데 크리스마스 운운해?"라고.

그말에 혜성은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연인사이면 당연히 만나자고 할수 있는 날이고 또 만나야 하는 날 아닌가..그럼에도...



이번 성탄도 혼자 보내게 생겼구나, 하는데 띵동하고 폰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형식이 보낸것이다.

"섬에 간다...가고싶다..."라고만 쓰여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던 그가 이제는 난데 없이 섬에 간다고 한다. 섬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그가 남도 태생인건 알지만 그는 지극히 그곳을 싫어해서 혜성이 휴가때 남도에 가자고 했을때 발끈 화를 냈었다. 가봐야 안좋은 기억만 되살아난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사생아였다. 술집에서 일하던 모친을 어느 초로의 남자가 뒤따라와 덮쳤다고. 해서 그렇게 생긴 아이를 지우려고 모친은 몇번이나 시도하였지만 끝내는 하지 못하고 결국 낳고 말았다고 했다. 그게 자기라고...강간으로 세상에 나온 자신을 정말 좋아할수 있겠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일 때문일까...그는 그녀를 데리고 한번도 남도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불쑥 '섬에 간다'니....갑자기 고향이 그리워진걸까..



성탄이브를 그의 생각에 꼬박 새우고 당일 아침 늦게야 잠이 몰려왔다. 그녀는 잠결에 도어락 비번 눌리는 소리를 들은거 같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그녀가 "자기야?"하면서 현관으로 달려갔지만 열린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급히 그가 몸을 숨긴 흔적도 없다...잘못 들었나...그녀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하지만 끝내 잠은 오지 않는다. 혹시나 형식이 올까 싶어 어제 사온 성탄 케익이 생각난다. 해서 그녀는 냉장고에 넣어둔 케익을 꺼내서 포크로 한점 집어먹는데 울컥 설음이 복받친다. 왜 그도 없는데 케익은 사왔을까...이 무슨 청승이란 말인가.

다시 케익을 냉장고에 넣은 뒤 혜성은 물끄머리 자신의 전화기를 바라본다. 그래, 아무리 헤어졌어도 성탄인사 정도는 할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형식에게 성탄카드를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는 여러 이미지 중에서 마음에 드는걸로 골라 메모를 한다. "잘 보내 성탄"이라고 쓰고는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굳이 그의 답장을 기다린 것은 아니지만 역시 그에게선 그날 저녁이 되도록 답이 없다..

그녀는 오래전에 읽은, 소설을 쓰는 친구가 추천한 로맹가리의 <벽>을 다시 읽기로 한다. 벽을 사이에 둔 두 남녀의 오해와 처절한 비극을 그린 작품이었다.

그녀도 어릴적에는 소설가가 꿈이었는데 이제는 네일샵을 하고 있다. 인생이란 이토록 부조리하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안 봐도 형식이라는 걸 그녀는 알수 있다.

"와. 지금 와"라고 그녀가 다급하게 이야기하자 저쪽은 아무말이 없다...

그제서야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한다. 국제전화번호가 찍혀있다. 형식이 아니었다. 스펨이다. 그녀가 서둘러 전화를 끊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어딨을까...무슨 일일까...설령 돈때문에 연락을 했더라도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밥은 굶지 않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서로에게는 허물수 없는 '벽'이 생겨버렸다.



이번에는 비번에 이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날 새벽 간신히 잠이 든 그녀는 분명 그 소리를 들었다.

형식씨? 하고 그녀가 눈을 떴을때는 이미 성탄이 다 지난버린 몹시 추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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