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어제 다 늦게까지 규완과 술을 마신거까지만 생각이 난다. 그후는 '필름이 끊어져버렸고' 어쩌다 지금 자신이 규완의 오피스텔 침대에 누워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않는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다, 혹시 규완과 섹스라도 했단 말인가? 싶어 이불을 들춰보자 알몸이었다.
미쳤어 미쳤어...하며 지우는 서둘러 옷을 입고 외투를 집어들고 급히 나가려는데 그때마침 규완이 약봉지를 한손에 들고 들어선다.
"머리 아픈건 좀 괜찮아?"라는 그의 말에 그녀는 그제야 취기가 몰고온 두통을 느낀다
"이거 먹고 가"라며 규완이 약봉지를 내민다.
"어떻게 된거야 우리?"라고 그녀가 약을 털어 넣으며 묻자,
"기억 안 나?"라며 그가 씩 웃는다.
저 웃음의 의미는 뭘까?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혹시, 지우 자신이 원해서 이러자고 한건 아닐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약을 털어놓고 물 한모금을 삼키고 그녀는 황급히 그의 오피스텔에서 나온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운전을 할수 없을거 같아 그녀는 택시를 잡기로 한다. 그리고는 택시에 올라 회사가 있는 강남으로 가자고 한 뒤에야 자기차를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쳤구나 내가...
그렇게 점심 무렵까지 그녀는 카피 한줄도 써내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는데 문자 알림이 울린다. 지우네 회사 주차장에 지우차를 갖다놨다는 규완의 문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sns에서 자기를 찾아낸 규완과는 대학시절 꽤나 막역하게 지낸 사이였다. 당시 둘은 문학동아리에 적을 두고 찰스 부코스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음담패설과 욕설로 점철된 그의 소설을 두고 그것에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위상을 부여할수 있느냐 뭐 이런 시시콜콜한 내용이었던거 같다. 단순히 팬덤이 있다고 해서 그가 과연 추앙받는 작가의 자리에 오를수 있느냐까지 따지고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찬란하기 그지 없지만 그때는 꽤나 심각한 테제였다. 어린날이란...
그러던 문학 동아리 친구들도 졸업 무렵에는 다들 제 살길을 찾느라 모임에 안나오기 시작했고 그 흐름을 타서 지우와 규완도 서로 소원해진채로 졸업을 했다.
규원은 이 광고회사에 규완은 유명 it회사에 취직했고 졸업후 시내에서 한번인가 점심을 먹은게 다였다. 그리고는 10년만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하나...
그런데 이런 경우 여자가 먼저 '내가 취해서 그랬어'라고 하는건 어느 드라마에서도 본적이 없는거 같다. 그렇다고 규완쪽에서 그런말을 해온것도 아니다... 앞으로 안보면 된다고 하기에는 둘의 어릴적이 너무 밀착돼있었기에 마치 나쁜짓을 해놓고 배반하는 꼴이 돼버렸다. 어떻게든 이 매듭을 풀어야 하는데...
그렇게 무거운 마음은 하루종일 갔고 퇴근무렵 지우는서로 낯뜨거워도 풀건 풀고가야 한다는 생각에 규완에게 모처에서 지금좀 볼수 있냐고 하였다. 그러자 규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보자고 응답을 해왔다.
그리고는 둘은 클래식이 낮게 은은히 흐르고 있는 까페에서 마주한다.
"몸은 괜찮아?"규완은 정말 걱정하는 눈치다..
"뭐..좀 그렇지. 아무래도 속이...우리, 많이 마셨나봐?"
"너, 예전엔 술 안 셌잖아"
그리고는 둘사이에는 침묵이 오간다.
"우리 어제"라고 지우가 힘겹게 입을 떼자
"취해서 그런건데 뭐...잊어버려. 미안했다. 내가 조심했어야 하는데"라고 한다.
그말을 듣고 있자니 , 취한 자신을 오피스텔로 데려간건 규완이었다는 엄연한 사실이 뒤늦게야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런 거북한 상황을 연출판것도 다 규완이지 지우 자신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왜 그랬어?"라고 그녀가 반색을 하고 따지려 하자 규완이 움찔한다...
"난 그냥..미안...미안했다."라며 그가 머리를 긁적이는데 그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 네...지금 친구랑 있어서요..네, 연락드릴게요"라며 그가 절절 매듯 전화를 끊는다.
"너, 누구 있구나?"
'응...정확히 말하면 정혼자. 집에서 정해준"
규완의 집이 이른바 '명문가'임은 동아리 모임에서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대대로 의사 집안에 친가 외가까지 합하면 법조계 정계 인사도 꽤나 포진해있었다. 그래선가 그와 다른 동아리 친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도 있었던 생각이 난다.
"우리 다신 보지 말자"라며 지우가 냉정히 말한다.
"내가 잘못했으니까...밥 살게"
"너 그런식으로 살지 마?"라며 그녀가 싸늘한 눈길을 던지다 밖으로 홱 나가버린다.
다음날 퇴근길 지우는 접촉 사고를 냈고 현장에서 합의처리를 하였다. 그리고는 '운수더러운날'이라며 중얼거리며 자신의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는데 저만치 규완이 먼저 와있는게 보인다. 자기 일제차에 비스듬히 기대서.
내 집은 어떻게 알았을까? 하며 그녀가 머뭇거리는데 규완이 다가온다.
"저녁 산다니까"
"너 여기 어떻게 알았어?"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가서 밥 먹자"라며 그는 그녀의 한팔을 슬쩍 끈다.
"너 또 그럼 죽는다."
"알았어 미안해..."
"언제 결혼해?"
"해야지..서로 만난건 좀 되는데...이게.. 끌리질 않네"
"드라마구나. 다른건 다 좋은데 끌림이 없다는거"
"그냥...너하군 하구 싶었어"
그말에 고기를 썯ㄹ던 지우의 포크가 딱 멈춘다.
"나랑? "하는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우리, 계속 보자"라며 그가 슬쩍 그녀의 반응을 살핀다.
"너 장가..."하다가 지우의 얼굴이 굳어진다.
"너 결혼하고도 계속 보자는 거야?"
"요즘 세상에 뭐 어때"라고 그가 말한다.
"실은 학교때도 너 좋아했었어. 나는 여러번 대시했는데 니가 모르더라구. 바보"하면서 그가 고기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나는 시집 안가구 니 숨겨진 여자나 하라구?"
"너두 시집가. 우리 한 2,3년에 한번씩 만나서,"라고 하는 그의 뺨을 지우가 냅다 후려친다. 그바람에 옆테이블 커플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본다.
"나쁜자식"하며 그녀가 자기몫의 음식값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레스토랑을 나가버린다.
눈이 내린다..
내일은 차를 두고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자기 아파트 단지 가까이 왔을때헉헉 달려오는 숨가쁜 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규완이었다.
"그럼 결혼할래 우리?"
그말에 지우가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너, 나 사랑하니?"
그말에 그가 다급한 얼굴이 된다.
"우리 잘 맞잖아. "
"뭐가 맞는다는거야?"
그말에 규완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따라오지 마. 니 차는 내가 내일까지 니 오피스텔에 갖다줄게. 됐지?"라며 지우는 그를 단지에 못들어오게 한다.
그렇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에서는 비싼 규완의 외제차가 하염없이 눈을 맞고 있다.
저걸 지하로 옮겨야 할텐데,하면서 자기 손에 들린 규완의 스마트키를 한참 들여다보는데 눈발은 더더욱 굵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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