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인사

by 박순영

컴퓨터 툴이라는게 해미에게 그리 낯선건 아니지만 이번엔 창업지원금이 걸려있는 문제여서 어느정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게 스트레스로 와닿는다. 홈페이지는 필수라고 지원금 여부를 결정하는 담당자의 말에 그녀는 부랴부랴 노트북을 부팅시켰다. 마침 a 포털에서 무료로 홈페이지를 만들수 있는 툴을 제공해서 일단은 그걸로라도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밤을 새워 겨우 하나를 만들고나서는 그녀는 그대로 뻗어버린다.


프랑스 작가 b의 이름 앞두자리를 따와서 만든 그녀의 '1인 콘텐츠 기획사'의 심적 지분은 다분히 영준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 b의 이름조차 몰랐던 그녀에게 b의 작품들이며 그의 존재가치를 알려준 이가 바로 영준이었다.그로부터 b의 작품들을 소개받고 읽었던 내용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녀가 서로 오해를 해서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다든가, 하는....


그날밤 해미는 b가 그토록 사랑했던 페루의 바다위를 둥둥 떠다니는 꿈을 꿨다...그러다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깬다. 그러나 그녀가 눈을 뜨면서 전화벨소리도 끊겼다. 액정을 보지만 어떤 부재전화도 찍혀있지 않다. 아마도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이미 헤어져버린 영준을 생각한 탓이리라 생각된다.

그리고는 다시 잠을 청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대신 심한 허기가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어제 점심이후로 물한컵 먹은적이 없다는게 떠오른다. 그깟 홈페이지가 뭐라고...


그렇게 해미는 침대에서 내려와 냉장고에서 인스턴트 호박죽을 하나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타이머를 돌린다. 영준이 좋아하던 호박죽이었다. 그와는 헤어졌어도 여태 그의 체취,그의 습관, 식성까지 그녀는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덥혀진 호박죽을 침대로 가져와서 후루룩 흡입하듯 먹는데 띠링,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또 잘못들었겠지,하고 그녀는 이젠 폰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 두번째 알림이 울린다. 그제야 그녀는 폰을 본다. 헤어진 지 석달만에 영준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녀는 먹다만 호박죽을 내려놓고 그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간다.

영준은 둘이 헤어졌다는 사실따위는 잊은듯 깨알같이 자신의 일상을 적어보냈다.. 이제 막 소설을 끝냈다며 니가 한번 읽어봐줄수 있냐는 대목에서 그녀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어쩌면 둘이 다시 이어질지 모른다는...


원고지로 700,800장은 족히 돼보이는 영준의 소설을 다 읽고나니 이미 자정이 넘은 뒤였다. 해미는 자신의 감상을 솔직하고 조금은 길게 써내려갔다...

그러자 금방 영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지금 오겠다고 한다.

그리고 영준은 정말 금방 그녀의 현관 도어락 비번을 누른다. 문이 열리자 방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그가 내뱉은 말은 '비번 안 바꿨네?'였다.

도어락 비번은 둘이 처음 만난그 날짜로 설정해놨었는데 둘이 헤어진 뒤에도 해미는 여전히 그 번호를 고수하고 있었다.



"먹을것좀 줘"라며 그가 털퍼덕 침대에 걸터앉는다.

"호박죽 사다놓은게 있는데"

"좋지...두개쯤 덥혀봐"라며 그가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둘은 헤어진게 아니다. 잠시 안보고 지낸거 뿐이라는 생각이 해미를 스쳐간다.

그렇게 호박죽 두개를 거뜬히 해치운뒤 영준은 그제서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온다. 너 니 회사 차린다고 했잖아...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그가 해미는 고맙기까지 하다. 이렇게 되면 분명 둘 사이에 파란등이 들어온것이라고 여긴다.

"안그래도 창업금 지원 받으려고 어제 밤새 홈페이지 만들었어"라며 그녀는 곧이곧대로 이야기를 한다.

"그럼 나한테 부탁하지"라며 "검색 뭘로 해?"라고 묻는다.

회사명을 알려주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아마도 자신이 알려준 작가 b에서 이름을 빌어왔기 때문이리라..

그가 해미의 홈페이지를 보면서 슬쩍 묻는다. "이번 소설 좀 팔릴거 같냐? 당최 살기가 힘들어서.."라고 한다.


퇴고를 해야 한다며 한시간쯤 해미의 방에 머물다 그가 일어난다.

"창업금 나오면 한턱 쏴라"라며 해미의 머리카락을 헝큰다. 그러면 해미는 '뭐야'라면서도 좋아했다 예전에.

지금도 그런 그의 행동이 싫지 않아 해미는 생긋 웃는다.

그렇게 가볍지만 긍정적인 그와의 재회를 마무리하고나자 갑자기 나른함이 몰려들며 그녀는 잠에 빠진다.


실사를 나온 담당 직원은 해미보다 두세살쯤 어려보이는 깔끔한 차림새의 젊은 남자였다. 해미가 예상한대로 그는 제일먼저 '홈페이지는 만드셨나요'라고 물어본다. 해미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보여주자 그가 유심히 보는게 느껴진다. 그후 그는 사업계획서를 달라고 하였다. 그것도 이미 전화로 전달받은 사항이어서 해미는 출력해놓은 계획서를 제시한다. 그외에 한두가지 더 체크하더니 창업금 지원 가부는 오늘 내일중으로 연락이 갈거라며 그는 갔다. 오피스텔 건물 앞까지 배웅을 하려던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건 좀 오버라는 느낌이 든것이다.

그리고는 그날저녁 메시지로 창업금 지원이 확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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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축하한다.밥 사라""

영준은 창업금이 입금되었다는 해미의 전화를 받고는 마치 자기 일인양 좋아하였다.

그 다음날 둘이 자주 가던 대학로에서 보기로 하고 해미는 홀가분하게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을 자고 나자 벌써 한낮이 돼있다.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헤어진 뒤 처음 박에서 보는 건데 늦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그녀는 택시를 타기로 한다.

택시는 총알같이 달려 대학로에 도착한다.


"돈 탔으니까 비싼거 먹는다?"라며 그가 해미의 반응을 살핀다.

"맘대로.."라면서 해미가 메뉴판을 그의 앞으로 민다.

"근데, 겨우 그거밖에 안 나왔어?"그가 메뉴를 훑어보며 말을 한다.

"우리...이어진거지?"그녀는 확인하듯 물어본다.

"바보야..이렇게 만났잖아. 뭘 더 물어"라며 영준이 또다시 그녀의 머리를 헝큰다.

"하지마!"라면서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가지런히 한다.

"나도 너처럼 1인 창업 한번 해봐?" 라며 그가 물어온다.

"자긴 1인 출판 이런거 하면 좋겠네. 자기 글 마음대로 낼수도 있고"라며 그녀가 맞받자

"내가 좀 훑어봤는데..그거, 신용도가 높아야 하더라구"라며 그가 풀이 죽는다.

"응 신용도좀 보더라구. 자긴...안되잖아 신불이라서"라고 하자

"니거 주면 되겠네"라고 한다.

그녀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러자 영준은 메뉴판에서 눈을 떼며 다시 말한다.

"니 창업금 나 줘. 그거라도 있어야 편집이라도 맡기지"라며 너무도 당연하다는듯이 그가 말한다. "좀 모자라는건 니가 대출좀 받든가"라며 그녀에게 대출까지 운운한다.

그말에 해미의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온다. 둘이 사귈때 해미는 광고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무명작가인 영준에게 돈이 있을리 없어 데이트 비용은 햬미가 다 냈고 여행비, 가끔은 그의 월세까지 내주었다.

"갚는다 갚아. 이번 책 팔릴거 같아"라며 그는 메뉴에서 제일 비싼 풀코스를 선택한다.


그날밤은 해미의 오피스텔에서 자고 간다는걸 해미가 다음에 오라며 간신히 그와 떨어져 혼자 버스에 오른다. 그와 나눈 이야기들이 이제는 꿈결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버스가 출발해서 멀어져갈때까지 영준은 계속 해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물끄러미 보던 해미도 마음을 굳히고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마지막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별인사.jpg all pics from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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