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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Jan 11. 2023

영화리뷰, 변영주<화차>그리운 타인

한 번 올라탄 자는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다

       

독일 현대  철학자 헤르만 슈미츠에 의하면 사랑은 ‘감정’이며 ‘상황’으로 나뉜다. 이 두가지는 늘 충돌 가능성을 갖는데, 사랑의 감정은 내밀한 것이어서 당사자는 그 감정에 매달리고 매몰되지만  동시에 대상에게 공동의 상황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감정적 사랑에만 빠져들 때 사랑 자체에서 벗어나 표류할 수 있고 반대로 상황적 사랑만 앞세우면 사랑이 마모될수 있다며, 이것 ‘사랑의 딜레마’라 부르고 있다.


영화 <화차>는 이런 도식에 거의 들어맞는 류의 영화라 할수 있다. 결혼이 임박한 두 남녀, 서로 사랑하는데 어느날 불쑥 약혼녀가 사라져버린다.즉, 사랑이라는 둘 사이 감정적 사랑은 존재하지만 둘을 둘러싼 서로의 상황이 그들을 분리시킨 것이다.     

 

이야기는 매우 정교하고 흥미롭게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며 전개돼 러닝타인 117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평가해본다.    

 

사라진 약혼녀 선영의 이름부터 신상 모든 것이 가짜였음을 알게 되는 약혼자 문호. 그는 이 사실앞에 속수무책으로  좌절하지만 사라진 그녀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전직 형사였지만 뇌물을받아 퇴사한 사촌형 종근의 도움으로 점점 그녀에 대한 단서들을 알아가다 어쩌면 그녀가 살인에 연루돼있을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문호의 마음은 광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여기서 우리는 가까이있는 ‘타인’에 대한  인식을 다시한번 되짚어보게 된다. ‘타인은지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존재들은 저마다의 내적 심연을 지니고 웬만해선, 상대가 배우자든 그에 상당하는 상대라 해도 그 '속'을 꺼내 보이지 않는다. 만약, 내 배우자감이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고 향후에 같은 짓을 반복할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그를 선택할지 헤어질지를 고민하지 않을수 없으리라.


결론은 사랑은 한심할 정도로 유치해서,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내릴수 없을것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살인을 저지른건 불가피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하리라,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으리라. 그 이유는 당장 상대를 포기할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짓누른 이성에 기인하고 그 사랑에 바친 자기 시간과 물질적 요소들이 뒤범벅돼 그를 내지 못하는 방어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어찌어찌 끌어간다 한들, 그렇게 해서 설혹 결합,결혼에 이른다한들, 그 결혼생활이 원만하고 행복할까, 하는 질문엔 대다수가 물음표를 던지리라 .그만큼 사랑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이자 자기 모순적이어서 곧잘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는 다름아닌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물론 미스터리 형식을 띄고  있어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들에 주목하면서도 과연 내가 ‘흠결있는 타인’을 어느정도까지 품고 용서하고 받아들일수  있을,  하는 문제를 던지고 있다고 본다.  

   

영화는, 진실을 다 알고 나서도 선영을 택하려는 문호의 마지막 의지를 보여주지만 선영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매몰차게 말하면서 그 사랑을 거부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지점이 바로 슈미츠가 말한 ‘사랑의 딜레마’라고 본다 서로 사랑하지만, 둘의 상황이 다르기에 어쩔수없이 충돌하고 깨져버리는.

그렇게 문호는 선영을 잃고 선영은 그렇게 문호를 버리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러티브라 할수 있다.           

솔직히 유럽 영화식 내러티브에 길들여진 나는 좀처럼 한국영화를 보는 일이 없다. 그런데 얼마전  어떤 계기가 있어 이 영화를 보게 되었고 감독이 여성이어서 이토록 디테일하게 사랑을 다각적으로 그려내는게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익히 알려진대로 일본 여성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우리 정서에 맞게 새로이 칼라를 입힌 그 센스가 돋보이며 ‘한여자의 실종쯤은’ 별거 아닌걸로 치부되는 현대 거대 사회의 무관심에 매스를 들이대는 치밀함도 보이고 있다.     



변영주감독 1966-


끝으로 제목 ‘화차(火車)’의 정확한 의미는 과연 무얼까, 하는 의문점이 남는다. 그것은 '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일본 전설 속의 불수레로 한 번 올라탄 자는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자아를 상실한 선영이 계속 타인의 목숨을 해하면서까지 새로운 존재로 생존을 계속할 수밖에 없음을, 또 한편 그런 선영임을 알면서도 사랑의 감정으로 계속 품고 뒤쫓는 문호의 심리를 표현했다 볼수 있으리라.     


1960년생 원작자 미야베 미유키는 이런 사회의 병폐를 파헤치면서도 인간의 모습을 최대한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내 작품성, 대중성 두가지 모두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라 한다. 필자가 아직 원작 <화차>를 읽지 않았으므로 소설과 영화의 유사점, 변별점을 딱 짚어 이야기할순 없지만, 거대 사회, 물질만능 사회가 낳는 병폐로서의 상처받은 자아들의 서글픈 이야기라는 데선 궤를 같이 하리라 본다.  


        

Helpless, 火車, 2012

러닝타임 117분

감독 변영주

원작 미야베 미유키     

https://blog.naver.com/guide_p/222973657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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