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김밥 장사라도 할까? 배달 내가 할게"
형준이 정색을 하고 말을 꺼낸다.
1년만에 재회해서 꺼낸 이 첫마디에 아영은 어이가 없어 픽 웃고 만다.
"갑자기 웬 김밥?"
"뭐라도 해야 먹고 살지"
이말이 뭘까..청혼하는 걸까? 1년전 서로 악다구니를 써가면서 헤어지고 나서 나만 힘든게 아니었나보다,아영은 그리 생각한다
"아님 , 너 우아한거 좋아하니까 북까페 어때? 책도 좋아하고"
"돈있어?"
아영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형준의 얼굴이 굳어진다.
"할래 안할래?"
"정확히 얘기해. 결혼하자는 거야?"
"일단 생계가 해결돼야 결혼하든 뭘 하든 하는거지"라며 형준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그렇게 선문답같은 대화를 나누고 둘은 어정쩡히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왜 콕집어 결혼하자고 하지 않는걸까, 아영은 머리가 무거워진다. 서랍을 열어 두통약을 꺼내 물도 없이 넘기고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눕는다.
1년전까지만 해도 형준과 함께 뒹굴고 잠을 자던 그 침대에서 그녀는 홀로 자야 했고 이제는 누가 곁에 있으면 오히려 불편해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게 복잡하고 귀찮게만 여겨진다. 하지만 그 상대가 형준이라면 재고해볼만도 하다는 생각에 , 청혼하면 승낙하자,라고 그녀는 마음먹는다. 둘다 나이도 있고 알아온시간도 짧지 않으니 새삼 밀당을 할 필요도 없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라며 형준이 매운탕을 끓여내온다.
1년만에 와보는 형준의방은 그다지 변한게 없다. .그말은 그동안 다른 여자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가 끓였어?"하며 아영이 매운탕 맛을 본다.
형준은 아영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눈치다.
"맛있어. 매콤해. 자기도 먹어"라며 그녀가 국물을 떠서 그에게 건네자 그가 주춤하며 몸을 뒤로 뺀다.
형준의 이런 부분이 늘마음에 걸렸다. 막상 침대에선 열정적으로 아영을 탐하면서도 보통땐 손조차 잡길 꺼려했다. 언젠가도 이렇게 음식을 떠서 주자 당황해하던 기억이 난다.
"생각은 해봤니?"마지못해 아영이 떠준 국물을 받아 먹고 그가 말한다.
"뭐? 김밥? 그거 농담 아니었어?"
"넌 돈 걱정 안해서 좋겠다"며 그가 비아냥댄다.
둘 사이엔 늘 '돈'이 끼어있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한뒤 형준은 이런저런 잡입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지만 씀씀이는 여전해서 늘 돈부족에 시달렸고 그걸 아영이 대주는 방식이었다. 아영도 웹툰만으로 돈이 되지 않아 결국 미술학원 일을 하면서 수입을 나누었다. 그러자 형준은 하던 일도 그만두고 아기새가 먹이를 받아먹듯 아에 아영의 돈으로만 살려했고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급하다며 가져간 돈을 하룻밤 유흥비로 다 써버렸고 그걸 알아버린 아영쪽에서 헤어지자고 하였다. 하지만 형준의 입장에서는 헤어질 이유가 없어 둘은 있는대로 감정이 상한채로 끝나야했다.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왜, 니 웹툰 이번에 드라마로 만든다든데?"라며 그가 아는척을 한다.
무명웹툰작가로 10년이상을 버텨낸 끝에 이번에 겨우 하나가 떴고 그게 이번에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pd는 직접 극본에 참여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했고 아영도 그리되면 수입이 늘어날거라는 생각에 그러마 동의했지만 막상 작업에 들어가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pd 쪽에선 아무 연락도 해오지 않았다
"별로 못받았어. 내가 무명이잖아"
"이제 유명해지는거잖아.."
"내가 돈좀 받았으면 그걸로 김밥집 하자구?
그말에 형준이 입을 꼭 다문다. 심기가 불편허가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잘 짓는 표정이다.
"갈게 오늘은"하고 그녀가 그만 일어나려 하자 형준이 덥석 그녀의 손을 잡는다."자고 가"
아영은 새벽에야 형준의 원룸을 나온다.
"바래다 줘야돼?"
"자 그냥""하고 나왔지만 그래도 버스정류장까지는 바래다 줘야 하는게 아닌가 해서 그녀는 기분이 상했다.
"나 다음달에 이 방 계약 만료다. 근데 이 돈으로는 움직일 데가 없어. 그냥 있으면 올려달라고 할거고"라고 말한 뒤 그는 '알아들었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참에 살림을 합치자는 얘기인건 알지만 왜 이렇게 미덥지가 못한걸까...
그러는동안 그녀가 탈 버스가 텅텅 비어 온다. 종점이 가깝고 이른시각이라 그렇겠지 하며 그녀는 버스에 오른다.
집까지 가는 동안 그녀는 좀더 큰방이나 아니면 방 두칸짜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형준과 합치고 둘다 자리가 잡히면 아니면 최소한 자기만이라도 돈을 좀 벌게 되면 그때 결혼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다.
"북 까페 어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영이 형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
"역시 너야. 고급스런거 누가 못 따라가"라며 형준이 좋아라 한다.
그를 웃게 한다면,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게만 해준다면 못할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은행에서 대출을 좀 받고 원작료 받은걸 합하고 친구들에게서 조금씩 융통하면 외곽에나마 조그맣게 북까페를 열수 있다는 결론이 나와 그녀는 북까페를 하고 있는 선배 s를 만나 조언을 구하기까지 했다.
이제 가게 계약만이 남은 상태다 그전에 일단 살림을 합치자는 이야기를 해야겠어서 그에게 전화를 건다.
"나, 강아지 한마리 있음 좋겠다. 불안할때 강아지 안고 있으면 좀 나을거 같아"
전화너머 들려오는 그의 이 말이 그녀를 세게 후려치고 간다. 자신이 아닌 강아지를 안고 싶어하는 강형준이라는 남자를 어떻게 이히해야 하나...
형준은 뒤늦게 "전화 왜 했어?"라고 묻지만 그녀는 '가게 계약'건은 말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궁금해서 전화했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마침 오는 버스에 오른다.
1년동안 자신과 떨어져있는 동안 형준은 모르긴 해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을테고 그래서 돌아왔으리라.
그러나 그의 마음은 오지 않았다.
"널 안고 있으면 내가 편해져"라는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잠자리를 제외하고는 손만 스쳐도 움찔하는 그의 평소의 모습들이 오버랩되면서 아영은 내릴곳을 지나쳐버리고 만다. 역시 그거였어...날 사랑한게 아니었어...
그녀는 지나쳐온 정거장들을 거꾸로 되돌아오면서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골목에서 과속으로 달려나오는 suv에 그대로 치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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