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은 요즘 부쩍 잦아진 선균의 전화며 문자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해주가 간 지 벌써 2주기다. 얼마전 은영이 해주의 납골묘를 찾았을때 그곳에 선균이 서 있었다. 둘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심전심 일찍 떠나간 해주를 그리워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은 선균의 차를 빌어타고 오게 되었고 집앞에 내릴때 선균이 가만 등을 두드리며 '잘 자'라는 말을 할때는 뭉클하기까지 하였다.
선균과 해주는 대학 3학년때 교내에서 만나서 연애를 시작해 7년을 끌다 결혼날짜를 잡은 터였다. 신부 부케는 은영이 받는걸로 결정났고 그렇게 결혼이 카운트 다운에 들억간 어느날 갑자기 한밤중에 선균으로부터 해주가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잠도 덜깬 채로 택시를 잡아타고 해주가 있는 s대학 병원 응급실에 들어선 은영의 눈에는 이미 고인이 된 해주의 위로 시트를 끌어올리는 간호사의 모습이 선명히 들어왔다. 갑작스런 심장발작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약혼녀를 졸지에 잃어버린 선균은 페인이 돼다시피 방황하였고 회사라도 다니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명줄을 놓아버릴 정도로 피폐해갔다.
"난 이제 다른 여자 못만난다"
대학때 해주와 붙어다닌 은영이어서 선균은 은영과도 스스럼 없는 사이였다... 그런 그녀 앞에서 선균은 엉엉 소리 내어 울기까지 하였다.
"둘이 붓던 적금 오늘 깼다"며 그가 젖은 눈으로 호프집의 허공을 멀뚱하니 바라본다.
그런 그의 손을 은영이 가만히 잡아준다.
"정신줄 놓지 마. 마음 단단하게 먹어"라고 해보지만 선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은영에게 연락을 해오고 있다 처음 몇번은 최대한 선균의 입장이 돼서 이해해주려 노력하고 부르면 나가기도 하였지만 이미 가버린 해주를 자기가 되돌려놓을 수도 없고 하다보니 그런 선균이 점점 피곤하게 여겨졌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은영은 그의 연락을 아예 받지 않기로 하였다. 차단까지는 못해도 문자 답문을 한다거나 전화나 콜백을 한다든가 하는 건 피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그녀가 냉담하게 반응하자 선균도 연락을 자제하는 눈치더니 급기야 끊어져버렸다.
그리고는 1년이 흘렀다...
"나 결혼한다"라는 선균의 문자를 받은건 은영이 편집을 마무리 할 때쯤이었다. 그날따라 레이아웃이 잘 되질 않아 애를 먹는데 띠링, 하고 문자 알람이 온것이다.
겷혼? 1년전까지 그토록 죽은 해주를 못잊어 애면글면하더니 결혼? 하자 왠지 은영 자신이 배신을 당한거 같아 기분이 개운치가 않다. .하지만 이제 나이 서른에 혼자 살라고 할수도 없는거고 해서, 애써 "잘 생각했어. 축하해"라고 답문을 보낸다. 그러자 "지금 니 집 앞이야.. 좀 나올래?"라는 문자가 이어진다.
"나보다 한참 어려..근데 해주를 많이 닮았어"라는 그의 말에 은영은 걱정이 된다.
"해주 닮아서 결심한거면 그 결혼 다시 생각해봐"라고 그녀가 말하자 "뭐면 어때. 해주라 생각하고 살면 되는거지"라며 선균이 남은 술을 다 마셔버린다.
"그래서 니가 행복할까? 아니, 와이프는 행복할까?"라고 하자
"모르겠다 나도"라고 하더니 그가 "간다"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선균의 뒤를 이어 은영도 호프집을 나서고보니 눈이 내리고 있다.
"난 겨울이 싫다"라며 선균이 비틀거리린다...
아마도 해주가 간 계절이 겨울이어서겠지,하며 은영이 그를 부축한다.
둘이 잠을 깼을때는 창밖 눈은 이미 다 그친 상태였다.
처음엔 술 취한 선균을 혼자 보낼수가 없어 근처 모텔로 향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취한 선균을 침대에 눕히고 돌아서는 은영의 팔을 선균이 강하게 끌어당긴것이다. 그리고 둘은 몸을 섞었다...
마치 예정된 양, 그렇게 운명지어진 사람들인 양 그렇게 서로를 탐했고 파고 들었고 그렇게 해주를 배반해버렸다.
"나 먼저 갈게. 좀 있다 나와"라며 은영이 주섬주섬 먼저 모텔방을 나가려 하자 "미안"이라며 선균이 작게 속삭이듯 말한다. 그말에 은영이 발끈한다.
"미안? 같이 자놓고 미안?"이라고..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화를 내는지, 무엇때문에 그렇게 선균이 미운지 알수가 없다. 그리고는 은영은 울며 그 방을 뛰쳐나온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바람이 불 즈음, 선균은 파혼을 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런 그의 짤막하지만 충격적인 문자를 보며 은영은 레이아웃하던 손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는 밖을 보자 꽃가루가 흩날리고 있다.
겨울은 갔어...
그날 그렇게 겨울은 끝난거야...
그리고는 서둘러 편집을 마치고 송고를 한 뒤 그녀는 선균에게 전화를 한다. 선균은 한참을 기다리게 하다 전화를 받는다. 왜?
"봄 왔는데 어디 안갈래? 어디 바다라도 안 갈래? 운전, 번갈아 하자"라는 그녀의 말에 선균은 한참 침묵하더니 "동해면 될까?"라고 대답한다.
분명 창은 완전히 닫혀있는데도 어느틈인가를 비집고 꽃가루가 은영의 방을 날아다닌다. 은영은 그것을 잡겠다고 허공에 휘휘 손을 내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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