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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Mar 16. 2024

3류의 사랑

"제가 강연주 맞는데요. 누구신가요?"

연주는 막 유통사 등록창에 e북을 올리고 한숨을 돌리다 그의 전화를 받았다.

"나야..바보. 이 강수"

그말에 연주는 이강수?하면서 아득한 기억의 저편을 더듬어야 했다..아,  그 이 강수.


10여년전 연주가 야간대학원 문창과를 다닐때 한두번 말을 나누었던 학과 선배였다. 결과적으로는 선배라고 할것도 없는게 연주가 그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타대학 대학원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강수. 그는 몇 안되는 학과내 기혼자였고 술이 불콰하게 오르면 품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은근 자랑을 해대곤 하였다. 아내가 약사라며 으스대기까지 하였다.


"아, 강수 선배"

선배라는 말이 마뜩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강수씨라고 부르는것도 어색해 연주는 그리 불렀다.

한번 보자는 강수의 말에 연주는 '우리가 다시 볼 사인가?' 의아했지만 그래도 굵직한 소설을 여러권 낸 작가이고 해서 알아둬서 나쁠 건 없다 싶어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와이프 갔다"라는 강수의 말에 연주는 마시던 생맥주를 뿜을뻔 했다. 간신히 위기를 면하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왜? 라는 표정을 짓자, "그냥  뭐. 좀 아팠지"라며 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의 사생활이어서 연주는 그냥 책 얘기로 돌리는게 낫다 싶다.

"선배, 나 출판사 하잖아"

"그래. 들었다"

"어디서 들었어?"

"그냥 뭐.,."

그의 이런 말끝 흐리기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은 의뭉스런 느낌?. 연주는  아주 가까운 이들 외에는 출판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정말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 걸까'싶다...




1년전 연주는 10년 넘게 다닌 외국계회사에서 사전통보도 없이 하루 아침에 해고되었다.. 구조조정 중이라는 이야기는 돌았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  될줄은 몰랐기에 그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동종업계 여러군데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답이 없거나 에둘러 거절의 뜻을 밝혀왔다. 다들 세계적 불경기에 인원 보강할 여력이 없다는 대답들이었다.

그렇게 실업자 생활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불안감은 증폭되었고 때마침 난데없는 여동생의 혼전임신과 그에 따른 다급한 결혼, 그 자금을 자신이 떠맡게 돼서  퇴직금의 상당액을 거기에 쏟고나니 경제적 위기까지 밀려왔다. 이걸 어떡하나...하고는 웹을 뒤지고 1인창업을 검색하다, 그래도 대학때 대학신문을 만든 경험이 있어 1인출판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3년까지 승부가 안나면 접겠다는 마음으로...



주위에서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책장사를 하냐고 했지만 배운 도둑질이 이거라 다른건 엄두가 나지 않았고 지금은 접었지만 한때 작가를 꿈꾸기도 했던 자신에게 그나마 큰 거부감 없는 분야라 생각되었다. 그렇게 알음알음 작가 지인들로부터 선인세 명목으로 약간의 돈을 주고 원고를 받아 내기 시작한게 벌써 여러달째다. 수익은 보잘것 없었지만 일에 슬슬 재미가 붙었고 그러다보니 속도도 붙어서 벌써 10종 넘게 출간을 하였다. 하지만 언제 접을지 모르는 일이라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 외에는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강수가 알게 된 경위가 자못 궁금했다.


"너, 내 책좀 내라"

강수는 술이 불콰하겍 올라 벌건 얼굴로 말했다.

"나 그냥 선인세 쪼끔 주고 신인들 것만"

"언제까지 구멍가게 하려고? 될걸 내야지"라며 강수는 은근 연주를 걱정하는 눈치다. 하기사, 강수 정도 작가의 작품이라면 그래도 매니아층을 상대로 제법 장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연주는 어딘가 찜찜한 느낌은 지울수가 없어서 "다음에. 내가 좀 크면"이라고 했지만 강수는 막무가내였다.

"초고는 다 써놨어. 총 1000장 되는 장편인데"

"..."

이제 어쩔수 없이 계약 이야기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 돈이 별로 없어"라는 연주의 말에

"많이 안줘도 돼. 세번에 나눠서 200씩만 주면 된다. 내가 초고 넘길때, 수정고때, 완성고때. 이렇게 세번"이라는 말에 연주는 총 600이나 되는 선인세를 줘야 한다는게 부담이 되었지만 설마 그 돈을 회수  못하랴 싶어 마지못해 그러기로 동의다.


그리고는 며칠후 강수는 초고라며 정말 원고지 1000매 분량의  소설원고를 연주의 이메일로 보내왔다. 스토리가 선명하게 드러나 일단 대중성은 확보하였고 잔인하고 비열한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도 인간의 본질을 잘 말해주는거 같아 작품성도 이 정도면 됐다는 판단이 섰다. 이제 이걸 잘 다듬어 완성고를 받으면 된다는 마음에 그녀는 약속대로 중간수정고가 건너왔을 때 200을 추가 입금했다.


"야, 나머지 200좀 당겨주라"라는 강수의 전화를 받고 연주는 "그건 완성고"라고 하는데 ""짜샤. 내가 그거 안줄까봐?"라며 그가 압력을 넣었다. .마침, 얼마전 출간한 지인의 에세이집이 그나름 선방중이어서 돈 200이 없지는 않았고 나중에 몇배는 벌겠지,하는 마음에 연주는 그 다음날 200을 마저 입금하였다.



그러고나자 강수가 술을 사겠다고 했고 연주는 극구 사양했다. 왠지 깊이 읽히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 거리낌같은 것이엇다. 그러나 강수는 어느날 연주의 동네까지 왔노라며 빨리 나오라고 닦달을 하였다. 연애하는 남녀간도 아니고 이게 뭘까,하는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었지만 맥주 한잔 쯤이야,라는 마음으로 연주는 동네 근맥줏집으로 나갔고 결국 그날밤 술이 올라 강수와 동침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날이후 강수로부터는 연락이 끊어지고 연주는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젠 단순히 작가로만 대할수도, 한번 같이 잤다고 단번에  연인이라 할수도 없는 강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의 무소식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일도 제대로 되지 않아 여러번 해본 납본에서조차 세번씩이나 퇴짜를 맞아 다시 해야 했다.  


그렇게 무소식이던 강수로부터 연락이 온건 2주는 너끈히 지난 다음이었다.

"선배 어떻게 된거야"라는 연주의 말에 그는 짜증스레 대답했다

"궁금하면 니가 연락하면 되지"

그말에 연주는 앞이 캄캄해진다. 순간, 이 남자의 의도는 뭘까 궁금했지만 책을 준다고 해서 시작된 만남이니 책이 넘어오면 끝내자 하고 질척거리지 않기로 했다.

"야, 나  지방 강연 가야 하는데"라는 그의 말에 연주의 머리엔 돈?이라는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잘 갔다와요"라며 모른척을 했지만,

"임마.. 그게 아니고...기름값은 있어야 가지"라고 그가 너무나 태연하게, 마치 수십년 살 비비고 살아온 마누라한테나 할법한 톤으로 돈을 요구했다.

연주는 뭔가 꼬여도 잔뜩 꼬였다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돈 600을 포기하고 이 관계를 정리하는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날 밝으면 고속도로 막혀.  빨리좀 보내라"라며 돈 100을 요구했다.

그의 이런 강압적인 태도데 연주는 발끈했지만 "빨리 넣어라"라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데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이후로도 그는 돈을 자주 요구했고 연주 쪽에서  화를 내거나 내켜하지 않아도 마치 '맡긴 돈 가져가듯' 그렇게 연주의 돈을 가져다 쓰곤 했다.

연주는 이 관계의 근원을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술먹고 한번 같아 잔 거 외에는 아무 연결고리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연락을, 그의 문자와 이메일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배, 이젠 완성고 줘야지"라고 어느날 그녀가 요구를 하자 "다듬고 있어"라며 그는 일주일만 말미를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일주일후에도 원고가 오지 않아 애가 탄 연주가 그의 동네로 찾아가 전화를 걸었지만 중간에 음성사서함으로 돌아가버렸다. 자신의 전화를 피한다는 사실에 연주는 그와 함께 한 지난 몇달이 섬광처럼 스쳐갔다. 그런데 그 다음을 이은 건 그에 대한 분노도 원망도 아닌 그리움이었다. 어서 그를 보고싶다는. 한번만, 한번만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그녀는 언젠가 그가 가르쳐준 그의 원룸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의 방에서 한 여자가 슬립 차림으로 폰을 하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원고 받으러 왔어"

눈물을 그렁이며 연주가 손을 내밀자

"너, 이거 광고 제대로 할수 있어?"라는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 돈 600 다 건너갔고 , 그래, 나머지 돈은 내가 안받는다 쳐도 원고는 줘야지"라고 했다.

"안 준다는게 아니라...이거, 그냥,  아마추어가 막 내고 그래도 되는 원고 아니거든?"

그말에 연주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너도 알다시피 나 사는꼴이 이렇잖아. 이거 팔아서 돈좀 벌어야 돼. 너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아직 인맥도..이거 일간지도 타야 하고 그래야 광고되는거야"라며 그가 꽤나 연주를 걱정하는척 한다.

"나쁜자식"

"그래.. 나 나쁜자식이야. 고소해라. 위약했다고"

고소? 연주는 자기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어이가 없다. 이럴 생각이었던거야 처음부터...다 계획된. 어디 원고 팔 데가 없으니 자기한테 들러붙어 피를 빨아먹었다는 생각이 그녀의 속을 후벼팠다.

부들부들 떨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넌 3류도 못돼. 쓰레기야 쓰레기"하고  돌아서는데 "저기요"하고  자기를 부르는 여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연주가 고개를 돌리자 "오빠 빚, 제가 다 갚을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이라며 그의 여자가 애원을 하였다. 자세히 보니 연주보다 두어살 어려보이는 여자는 눈물이 그렁해있었다. 그리고나서 여자는 강수를 다독이며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둘을 멀뚱히 쳐다 보던 연주는 더이상 이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고 발길을 돌린다.

그때 자신의 컬러링이 울렸다. 강수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고그녀가  아무말도 안하자 강수가 조금은 갈급하게 입을 뗐다.

"나는 주려고 했어 분명. 니가 아직 상황이 안돼서 못받은 거지"

"..."

"빨리 커라. 그럼 내가 다른거 잘 써서 줄게"하고 그는 전화를 끊는다.


그녀가 골목을 다 나올때까지 되뇌인 '개자식'이 한 100번은 되는거 같다. 버스며 지하철을 갈아탈 기력이 없어 그녀는 마침 오는 빈 택시를 불러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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