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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용산에서

by 박순영

어릴적 용산에 살았는데 용산 남부교회,라고 있었다. 지금도있는지는 모르지만 교회에 오르는 계단즈음에 다가구가 모여사는 집에 살았다.

어느날은 도둑이 들어 신발을 훔쳐가기도 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닥 큰일이나 화낼일도 아니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신발을 다 가져갔을까, 정도였다.

밤이면 친구들과 교회마당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놀곤 했는데

허물어진 담벼락 너머로 한강이며 서울의 밤이 아름답게 빛을 뿜어내던 기억이 난다.

그때 어린 감성에도 야, 세상은 참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며 감탄하였다.


가끔은 언니가 대장으로 앞장서서 친구들과 한강에 나가 모래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하였다.

그러다 물귀신을 만난적도 있어 길을 잃고 헤매는데 동네주민이 우릴 발견해 무사히 귀가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용산은 내게는 동화같은 추억을 남긴 곳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몇년전 차로 이동하다 힐끔 본 고층건물 사이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직업여성들을 보면서 기겁을 했던적이 있다.

순간 내 안의 어린날의 동화로 남아있던 용산의 이미지는 퇴색했고 그후로는 그곳을 지날때면 일부러 그 쪽을 안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도 가끔은 그립고 가보고 싶고 그렇다. 아직도 교회는 여전히 있는지, 숨차하면서도 하루에 수십번을 오르내리던 그 허름한 돌계단은 아직 있는지, 그리고 거기서 서울밤의 찬란한 불빛을 감상할수 있는지...



아무리 퇴색하고 변질돼도 우리안엔 소멸되지 않는 어린날의 동화가 한둘쯤은 있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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