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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Apr 08. 2024

그가 내민 손

그의 부고를 접한건  국립중앙도서관에 e북 납본을 막 마친 시점이었다. 그전에 밤새 전자책 제작을하느라 잠을 못자 늦은 잠이라도 자볼까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것이다. 이따금 함께 술자리를 갖던 작가  a의 전화였다. 현승이 갔다는 얘기였다.

"어쩌다..."

"원래 자주 그런말 했어요 .이제는 그만  떠나고 싶다고"

"그럼..."

 a는 자세히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현승이 스스로 갔음을 암시했다.

이 조문을 가야하나마나를 좋고 지수는 한참 고민을 하였다.


현승과는 어느 소도시에서 열린 출판인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그지역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셀럽이었지만 중앙문단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의책을 두어권 낸 b출판사 대표를 따라 그 모임이 나온것이었다. 첫눈에도 깐깐하고 고집이 셀거 같은 강한 인상에 지수는 좀 거리를 두기로 하였다. 그런 사람들한테 여러번 덴적이 있기 땨문이다. 연애든 일에서든...



그런데 그렇게 만난지 한달이 지날무렵, 지수에게 현승이 전화를 해왔다.

"저, 기억하실지.."

지수는 단박에 그의 냉냉한 목소리를 기억해냈지만 잘 모르겠다는 투로 "누구신지.."하고 운을 뗐다.

"그때...거기 북까페에서 출판인 모임 할때"

그제야 지수는 기억이 난다는 투로 대답을 하였다.

"제가 쓴 소설이 있는데요"라는 말에 지수는 어떻게든 그를 피하고 싶었다.

"죄송해요...안그래도 그때 뵙고 작가님 책을 좀 읽었는데 저희랑은 칼라나 방향이"

"메일 보셔요. 보내놨습니다"하고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래서 강하고 찬 인상의 사람을 내가 싫어하는데...하며 지수는 마지못해 메일을 열었다. 그리고는 현승이 보낸 원고지 환산 1000매쯤되는 장편소설을 보게 되었다. 

요즘 누가 이런 긴걸 읽는다고. 게다가 역사소설이라니 . 하며 그녀는 그렇게 현승의 <그 섬에서>를 제쳐두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보름후, 이번엔 메일로 현승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출판 가부를 알려달라고. 

그말에 아직 읽지도 않았다는 답은 차마 할수가 없어 그날부터 연 사흘을 꼬박 <그 섬에서>를 읽고 그녀는 예상한대로 출판이 어려울거 같다는 답을 메일로 보냈다.

그러나 현승은 기어코 지수의 출판사에서 내겠다는 의도였는지 아니면 다른 데서는 죄다 거절을 당했는지 끈질기게 그녀를 설득했고 결국 지수는 <그 섬에서>의 출간계약을 하게 되었다.



현승은 돈이 급하니 선인세를 많이 주든 아니면 매절 계약을 하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제법 큰돈을 요구했고 지수는 이런식으로  '팔리지도 않을 '이 작품을 내야 하나 회의가 들었지만 얼마전 낸 힐링에세이가 효자 노릇을 해주고 있고 어디나 팔리는 한두권이 나머지를 먹여살리는 상황이어서 좀 묻힌다 싶어도 현승의 책을 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그에게 수천의 선인세를 주고나니 헛웃음이 나왔고 왠지 눈깜짝할 사이 '털린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이책이 선방할지 모른다는 작은 기대도 걸어봤다.



책 출간을 빌미로 현승은 수정을 한다면서 일정부분 고쳐서는 지수에게 보내왔고 지수는 작가가 알아서 하라고 했음에도 만나서 작품 얘기를 하자며 지수에게 본격적으로 다가왔다.

지수는 내키지 않는 그와의 만남을 어떻게든 피하려했으나 그게 되질 않았고 해서 어느날 광화문 네거리 작은 까페에서 현승과 마주 앉았다.


"그래서 수정은 다 돼 가시나요"

"오늘 영화 한편 봅시다"라며 그가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그와는 뜻하지 않게 연애모드에 돌입했고 지수는 '이게 맞는건가'하면서도 그와 일박 여행을 다녀왔고 펜션에서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새벽에 나와 바라본 달이 파리하게 빛다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예견대로 <그 섬에서>는 팔리질 않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수가 떠안아야했다. 하지만 이미 그 즈음엔 작가가 아닌 남자로서의 현승과 연결돼있어 내놓고 자기 속내를 드러낼수도 없었다. 현승은 '이번엔 대박조짐이 보인다'며 이른바 '운동권 이론서'를 쓰고 있노라 했다.

지수는 차라리 글이  매개가 아닌 평범한 연애가 낫다 싶어 그리 말하면 현승은 발끈해서 '너 나를 뭘로 보는거야'라며 화를 내서 그 이야기도 계속 할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그가 두번째 책 <새벽>을 내밀었을때 또 적지 않은 돈을 선인세로 지급해야 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여자문제를 비롯한 이런저런 소문아닌 소문이 들려왔고 지수는 이제 이 관계를 종결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건너간 고료가 너무나 아까웠고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보험들듯 붙잡고 계속 돈을 가져가는 그에게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세번째 작품 이야기를 그가 꺼냈을때 그녀는 이별을 고했다. 물론 그것이 고스란히 빠르게 받아들여진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의 전화며 메일을 차단함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것도 연애였다고 지수는 꽤 오래 힘들어했다. 그리고는 그의 부고를 들은 것이다. 자연사도 아닌 자살이라는 이야기를...

그의 영정에 국화한송이를 놓고 조문실을 나오다 자신에게 부고를 알린 작가 a와 마주쳤다.

"현승이 그 친구 빚이 많았어요. 나한테서도 가져갔고"

돈이라면 탈탈 털린 지수만 하랴 싶었지만 이미 고인이 되었고 한때나마 좋아한 남자를 험담하기 싫어 지수는 아무말도하지 않았다.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지.."라는 a의 말에 지수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하마터면 놓아버릴뻔 했다.

"애요? 애가 있나요? "

"몰랐어요? 지수씨랑 헤어지고...이 얘기 이 바닥은 다 압니다. 두분이 사귄거...지수씨랑 헤어지고 잠깐 동거를 했나봐요. 그 사이에서..."


더이상 현승의 이야기를 듣다가는 시쳇말로 '돌아버릴거 같다'는 느낌에 지수는 서둘러 까페를 나섰다. 여름이 묻어나는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차라리 소나기라도 내려줬음 하는 바람이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감지되었다.

자기와 헤어진 뒤 아이를 낳고 산 여자까지 있었다...어쩌면, 이미 그 여자가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접근해 돈을 가져갔을지 모른다는 혼란 속에 그녀는 광화문을 지나 이미 종로 5가 가까이까지 걸어왔다. 그러다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연극이나 한편 보고 들어가자는 마음에 지수는 발길을 혜화동으로 옮겼다.



그런데 소극장 c를 지나치다 그녀는 기겁을 하였다. 현승의 소설 <그 섬에서>가 연극으로 각색돼 상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경우 최소한 출판사에 고지정도는 하기로 돼있었음에도 현승은 그마저 지키지 않은것이다.그녀는 연극보기를 포기하고 그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1인출판만으로는 아무래도 손이 부족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기가 어려워 지수는 고심끝에 외곽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세를 얻었고 잡무를 처리할 직원을 하나 두었다.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는데 어느날 d  영화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현승의 두번째 책 <새벽>을 영화화 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지금 누가 운동권 얘기에 관심을 가질까 , 그래서 전혀 내고 싶지 않던 이야기였는데 그걸 또 영화로 만들겠다는 이갸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들어온 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지수는 오랜만에 작가 a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하였다.

그가 가져간 돈이 있으니 이 정도 금액은 지수가 가져도 상관없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한 이의 목숨값 같았다.

"정 그렇다면 그 여자분..."하며 a가 조심스레 그의 동거녀를 언급했다.

"그분도 넉넉치 않겠네요. 대신 좀"하며 지수가 그 돈을 a에게 내밀자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제가 전해줄게요"라며 그 돈을 받았다.



"고맙습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그녀는 지수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전혀 애를 낳은 여자라고는 보이지 않아보이는 여리여리한 여자였다.

"현승씨, 많이 사랑했나봐요?"라고 지수가 말하자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네?"

자신의 감정도 잘 모르고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현승이 자신에게 했던것처럼 상대의 감정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만의 욕구로 밀어부친 관계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사진 한번 보여줄수 있나요?"라는 지수의 말에 상대방은 빠르게 자기 폰에서 아이 사진을 내밀었다.

"지수예요. 황지수"라며 사진속 아이의 이름을 말할때 지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을때 그냥 "출판삽디"라고만 했기에 그녀가 지수의 이름을 알지는 못했으리라...

그러고보니 지수라는 아이의 눈매가 어딘가 자신과 닮아보이기도 했다.

"이쁘네요.."하고는 폰을 다시 건네주고 그녀는 황급히 까페를 나섰다.



그가 보고싶었다.

자신에게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히고 매사를 자기위주로 처리해 상처를 주었던 ,이제는 지상에 없는 현승이 너무나 그리워 지수는 울면서 걸었다. 성인여자가 눈물을 흘려가며 대낮에  도심을 걸어가는 것에 평소엔 무심하던 대중도 이땀금 시선을 주곤 하였다. 그렇게 다시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선 지수는 언젠가 그자리에 현승과 나란히 섰던 기억이 났다.

"차 한대 사는게 내 꿈이야. 그럼 이런 뚜벅이 생활 할 필요가 없잖아"라며 투덜대던.

그때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 직전이라 지수는 차 한대쯤 뽑아줄 여력이 있음에도 침묵했던 생각이 났다.

현승씨...

그때 신호가 바뀌고 땀내를 풍기며 사람들이 그녀를 지나쳐 빠르게 길을 건넜다...

하지만 그녀는 한걸음도 움직일수가 없었고 마치 뒤에서 죽은 현승의 혼이 자신을 붙잡고 있는것만 같았다.


현승의 자살로 인해 그동안 묻혀있던 <그섬에서>와<새벽>은 뒤늦게 회자되었고 빠르게 팔려나갔다.

현승에게 준 선인세가 있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지수는 인세를 매달 꼬박꼬박 '그의 여자'에게 입금했다.


붐비는 점심시간 혼자 콩국수를 먹는 한 여자의 훌쩍거림을 식당 안 누구도 이해하거나 알지 못했다..

현승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먹던 진한 콩국수였다.

식당을 나온 그녀는 대형서점 매대를 돌며 현승의 유작 두권의 진열 현황을 살펴보기로 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달리는 차창밖은 이미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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