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예술계 중학을 나왔다. 빠듯한 살림에도 엄마는 어릴때부터 언니와 내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언니는 중간에 그만두는 용기를 발휘했지만 그저 순둥순둥했던 나는 하라는대로 초등6학년때까지 계속 배웠고 어느날 나를 가르치던 당시 대학 4학년이던 선생님은 p중학을 언급하며 거기 가보는건 어떻냐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예술계진학은 돈이 들거 같아 난 부모님께 함구했다. 그런데 며칠후 선생님은 직접 우리 집을 찾아와서 말을 꺼냈다. 단번에 엄마는거절하고 우리사는 꼴을 봐라, 가당키나 하냐,며 버력 화를 냈다. 속으로 난 쾌재를 불렀고 이유는 더이상 나와는 맞지도 않고 아무 감흥도 없는 피아노를 그만 둘 수 있다는 기쁨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사나흘 후, 엄마는 어디선가 듣고 와서는, 니가 원하면 p학교 시험을 보라는 것이었다. 난 어릴적 공부도 시원찮았고 피아노를 계속 하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던 터라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시험보래요, 하자 렛슨 선생은 자기 담당 교수를 소개해줬고 일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이후로 한주에 한번, 그 교수님께 별도의 렛슨을 받으며 비로소 나는 피아노 의자에 재대로 앉는법부터 다시 배웠다. 키가 작은터라 짧은 다리로 페달을 내리누르는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는데 그 교수님은 의자끝에 걸터 앉으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방법을 알려주셨고 그렇게해서 난 안정적으로 페달을 밟게됐다. 그리고 결과는, 참으로 민망하게도 높은 경쟁을 뚫고 p중학에 덜커덕 합격하고 만것이다.
엄마는 입학식날 입으라고 남대문 시장에서 새 점퍼를 사다줬고 학교 담임선생님은 전교에서 유일하게 너 혼자 그 학교에 붙었다고 여간 대견해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난 전혀 원치 않는 진로였고 그저 다 그만두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서두가 길었는데 그 학교는 이른바 '귀족학교'였고 그당시 행사때면 검은 세단이 정문부터 한 킬로쯤 죽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난 단연 기가 있는대로 죽어서 다녔고 성적도 좋을리 없었다. 그러다 실기 선생을 배정받는 시간이 와서 나는 다른반이었던 h와 함께 g교수의 문하생이 됐다. 우린 매주 목요일이면 수업이 끝나는대로 함께 반포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가는동안 서로 연습을 얼마나 했다 안했다 조잘대며...h는 해맑은 성품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똑부러지게 해내는 영리한 아이였다. 중학을 졸업하고 나는 인문계로 그 친구는 예술고로 진학해 서로의 길은 갈라졌지만 둘의 우정은 길게 이어졌다.
문제는, 어릴적엔 서로 무마되고 공유되던 감정이며 정서들이 성인이 되고 서로가 다른 가치관과 다른 환경에 놓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난 일찍 결혼생활을 접고 엄마와 살고 있었고 나보다 늦게 결혼한 h는 아이를 셋이나 연달아 출산하고 어엿한 판사 사모가 돼있었고 어쩌다 만나면 온통 고지식하면서도 무한대의 능력을 가진 자기 남편 자랑뿐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너 우리 아저씨 믿지?"라는 뜬금없는 말을 전화로 해대는것이 아닌가. 난 무슨 일인가싶어 그냥'당연 믿지'라고 대답했다.'고지식하고 성당밖에 모르는 그 남편'이 이번에 변호사 개업을 하는데 소득 관리 차원에서 차명계좌가 필요하고 그 대상자로 내가 '뽑힌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그 일이 있기 한 일주일전 h가 갑자기 '너네집에 가두 되지?하고는 막내딸을 데리고 찾아왔던게 기억났다. 케익 한상자를 사들고. 어릴때 지지리도 못살았던 내 환경이 걸렸던것이다. 이른바 사전답사같은 성격이었달까...
지금도 이해 못하는건, 왜 혼자 살면 그런 덤탱이를 뒤집어써야 하는지...
난 하루만 생각하고 답을 주겠다 하고는 h의 전번을 주소록에서 지웠다. 그렇게 한 10여년을 잊고 지냈는데 뜬금없이 h가 전화를 해왔다. 그러고는 만나자고 하며 지금 내 집에서 가까운 대학로로 자기가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연을 안은채 대학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재회했고 예민한 부분은 쏙 빼놓고 두런두런 살아온 이야기만 했다. h는 여전히 해맑았고 성당일에 열심이었고 '밑져야 본전'이라며 '신앙생활에 올인해보겠노라' 다짐하는걸 보면서 역시 영리하구나 싶었다. 그렇게 회포를 풀다보니 서너시간이 금방 갔고 우린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난 차단당했다.
h 는 그날 5만원도 넘게 나온 밥값을 혼자 다내고 나를 버린것이다. 아니 10년전 그일을 자기 방식으로 복수한것이고 그것이 '귀족의 방식'임을 난 배웠다. 연을 끊더라도, 까더라도, 행위의 주체는 자기여야 한다는 그 확고한 신념, 믿음, 자존감, 그런게 노블레스 계층엔 있나보다,했다.
가끔은 목련이 너무나 예쁘던 자그마한 그 교정이 떠오르고 그럼 당연히 h가 기억나고 같이 팔짱끼고 사진찍던 일들이 아련하게 이어진다. 내 어릴적 단짝....
라일락 향기를 머금은 5월비는 또 얼마나 감미로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