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빨리 들어와라"

by 박순영

어제는 친구와 다른 일로 통화를 하다 "엄마한테좀 데려다 줄래?"했더니 그러마라고 해서 다 늦게 이천으로 출발, 엄마를 뵙고 왔다.

돌아가신 직후에는 자주 가서 뵈었는데 언젠가부터 1년에 한번 가는것도 버거워하는 내 자신이 야속하고 죄송하였다.

이천 호궁원/naver


파주 가서 차를 사면 좀더 자주 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덕을 내려오는데 비가 서럽게 뿌려댔다.

엄마 가시던 날, 나는 임종의 순간을 보지 못했다.

"엄마 내일 또 내려올게"라고 의식없는 엄마귀에 속삭이고 병원을 나와 고속버스에 올라 조치원을 빠져나올즈음 언니로부터 "돌아와라"라는 전화를 받았고 다시 병원으로 갔을땐 임종하신 후였다. 그러니 임종은 언니 혼자 지킨 셈이었다...


어제는 물론 이사전 마지막 인사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이렇게 유산인 집을 헐값에 매각해버린 데 대한 사죄의 의미가 더 컸다.

"엄마, 다음엔 더 큰 집으로 돌려줄게"라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난 니가 얼른 시집 가는게 소원이다"라고 하시면서도 내가 밖에서 늦게까지 있으면 전화를 걸어와 동석한 친구들의 놀림을 받게 하신 우리 엄마.

처음엔 그런 엄마를 나무라고 원망하였지만 어느순간부터는 "얼마나 외로우면 저러실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인제 들어갈거야"라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아픔을 알아갔는데...

치매가 끼어들며 또다시 틈이 벌어지고 엄마를 때리며 "차라리 죽어!"라고 고함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한여름에도 창을 열지 못하게 하시고, 문밖에 '나쁜놈'들이 와있다며 나가지 못하게 하시던 엄마...


이제는, 그런 고통없이 석실에 고요하고 평온하게 잠들어계시니 다행이다.. 어제 나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유산을 말아먹은 작은딸의 침울한 얼굴이며 돌아서는 축 처진 어깨를 다독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는 엄마에게 서운한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내려오는 비오는 호국원 빗길은 내게 깊이 오랫동안 각인될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다보니 엄마는 어느새 먼 추억이 되어버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