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남은 정릉순례를 하고 들어오면서 편의점에서 콘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자주 행사를 해서 혹시나 했지만 행사 상품이 아니어서 제값 다주고 산게 조금은 억울했지만
금방 잊어먹고 그거 먹으면서 후문 비탈을 올라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거울을 보니 입가에 고양이가 지나간...
이제 이 작은 행복도 정릉에서는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하니 잠깐 슬펐다.
이사가서도 이집 저집 오지랖을 부리고 다닐지는 잘 모르겠다.
미장원, 병원, 마트, 편의점....
참, 지인하나가 파주에서는 성당 다니면서 고약한 성정을 고치라고 하였다.
나의 본성을 잘 아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그런 말이지 싶다.
안그래도 너무 오래 냉담생활을 해서 찝찝하고
누가 아는가, 거기서 성당 공동체 활동이라도 할지.
묵주랑 미사보랑 다 새로 사야할것이다. 한 20년 다니지 않았으므로.
사실 나는 격식따위를 매우 싫어하는데 의식으로 가득한 카톨릭을 선택했다는게 아이러닉하다.
종교 얘기는 사실 조심스러운데, 그래도 신교에 비해 조용하고 개인적인 거 같아 선택한거 같다.
대학 4학년때 붙어다니던 친구가 영세받을 거라고 해서 따라갔는데 막상 그 친구는 영세를 안 받고 나만 받았다. 도미니까, 내 영세명이다.
이런 신심.
작으나마 신이 의미하는 지고의 선과 호혜의 마음이 있고 없고가 사람간의 큰 차이를 만드는거 같아. 그래서 손해보는 일도 있지만 죽어서 천국 간다는데야 뭐...ㅎ
이제 샤워물기, 땀도 거의 다 말랐고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마저 쓰려 한다.
이렇게나마 군불을 지피라고 누군가 귀띔을 했다.
소록도 다녀온 지인이 줄 장편은 예비수녀의 사랑과 고통을 그려낸 (대강) <검은사랑노래 (가제)>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보고 있는데 전시장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던 공기들이 갑자기 거센 진동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였다.
피아노 건반을 느리고 여리게 누르던 여자의 손가락들이 미친 듯이 널을 뛰고 있었다. 해머가 현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우울한 서정은 ‘격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자진모리로 칠 것이라는 가오리 가게 여자의 예고는 맞아떨어졌다.
음들은 라르고와 프레스토를 오가면서 안정과 격조를 유지했다. 그러다 조용해졌다. 윤슬을 튕겨내던 여자의 손이 건반 위에 조용히 멈춰 섰다.
< 박혜란의 클래식
쇼팽, 금오도를 연주하다
인간의 보편적 감성, 자연 그대로의 원초적인 것, 삶의 근원을 사진작가는 ‘섬’에서 찾아냅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흑백 작품들은 말합니다. 근원적인 것 들은 시대와 장소와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십구 세기 폴란드에서 태어난 쇼팽과 공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삶에 투영되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20년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그의 곡을 연주해온 제 삶이 느껴지시는지요. 사진 속 인물들과 쇼팽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 모두를 위로하기를 바랍니다. >
나는 피아노의 여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여자는 통유리 너머 여수항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