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세이스트중에 무레요코라는 작가가 있다. <카모메식당>으로 우리에게도 널리알려진 작간데 소설은 많이들 읽었어도 그녀의 본령인 에세이를 읽은 이는 많지 않은듯하다. 일본에서는 그나름 스타작가라고해서 소설과 에세이를 한권씩 주문한 적이 있고 에세이집 제목은 <꽤괜찮게 살고 있습니다>였던거 같다. 평소 에세이를 읽지 않던 나로서는 큰 기대를 안하고 있던 터라 그녀의 건조하고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은 꽤 신선하게 와닿았다.
<카모메식당>은 영화로 만들기 위해 영화감독이 써딜라고 한 소설이었던것 같고,그나름 무난히 읽히는 정도지만 <꽤 괜찮게...>는 분명 신변잡긴데도 전혀 넋두리같지 않고 처짐없이 일정수준의 탄력성을 유지했다. 그야말로 에세이미학의 절정을 보여준 작품이다.
작가는 눈에 들어오는 그 어느것 하나 놓치지 않고 어쩌면 조금은 병적으로 그것에 달려들어 묘사하고 해부하고 그것과 얽힌 사연들을 풀어나간다. 그러나 문체는 한없이 건조하고 간결해 세련미가 물씬 풍긴다. 일본이유독 에세이가 강한 이유는 그들 특유의 '미시적 감성'에 기인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이것은 사전적 정의처럼 '주변부의 탈중심적 목소리들, 다양하고 이질적 목소리들'이라 할수있다. 그래서 요코 스스로도 자신의 문학을 '틈새문학'이라 지칭했는지 모른다. 그만큼 그녀의 이야기들은 마이너minor적 프레임 속에서 건조하고 짧게,간결하게 흘러간다.
어느 출판사 투고란을 보면 '죄송하지만 에세이는 받지 않습니다'라는 구절을 보게 된다. 이처럼 에세이는 아직도 문학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누구나 쓸수 있는 그저그런 신변잡기 정도로 폄하되는 경우도 많은듯하고...그래서 소설이나 기타 문학의 하위 장르처럼 취급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코의 글을 읽고나면, 더이상 에세이가 주변부문학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요코는 그만큼 에세이의 위상을 높인 작가라 할수 있다.
언젠가 리뷰를 올리겠지만 <꽤 괜찮게..>는 기존 에세이의 틀을 과감히 깨버린 돌연변이처럼 보인다. 에세이가 늘 선하고 부드러울 필요는 없다. 자신을 버린 가족이야기도 쓸수있는것이고 돈 떼먹고 도망간 애인이야기도 쓸수 있다. 의자 하나, 낡은 외투 한벌에도 다 사연이 있다면 그것을 자기만의시각, 자기만의 목소리로 풀어내는게 바로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요코는 처음 칼럼니스트로 시작해 에세이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한번을 봐도 잊히지 않는, 지나치는 결에 봤는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그런 사람, 그런 풍경이 있다면, 그런것이 글이 되고 문학이 된다면 요코의 글은 에세이의 abc를 가장 쉽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