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하면 누구보다 원작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떠오른다. 그의 난해한 문체의 원서를 몇번이나 펼쳤다 덮고 하던 일이 떠오른다. 이영화는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리메이크 해서 더 알려진 케이스다.
'lolita'의 뜻은 단순히 말하면 '사춘기 소녀'를 뜻한다.
불문학교수인 험버트는 휴가를 맞아 어느 하숙집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주인여자의 딸 '로'를 만나게 된다. 안그래도 어릴적 파리에서 만난 그의 첫 사랑에 대한 미련이 가슴깊이 남아있는 그는 한눈에 로의 육감적이며 유혹적인 모습에 끌려들어간다. 그러나 그 속내를 모르는 로의 엄마가 그에게 접근하고 '농담같은 결혼'을 하지만 결국 험버트의 사랑의 대상이 자기가 아니라 딸임을 알고는 자살해버린다. 그렇게 '부녀관계'가 돼버린 로와 험버트...그들의 지난하면서도 광기어린 사랑의 여정이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린데 , 한결같은 험버트의 로에 대한 애정과 갈망과는 달리 로는 이 사랑을 가지고 거래하려 하고 불량기 있는 퀼트에게 마음이 더 가고 험버트는 늘 그 부분이 신경이 쓰이고 결국엔 그일로 참극에 이르게 된다.
영화음악의 대가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비극미가 가득한 ost속에 둘의 사랑의 행적이 펼쳐지는데 섹스 한번에 돈 얼마,식의 계산을 해대는 철없는 사춘기 소녀 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험버트의 처연함이 ost만큼이나 쓸쓸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우리는 왜 금기된 것에 대한 욕망을 가질수밖에 없을까? 대다수가 그렇게 살면서도 또 대부분은 그것을 자제하고 감추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개인과 사회사이의 괴리, 감정의 부조리함, 도덕이나 모랄의 공허함을 이 영화는 '부녀사이의 로맨스' 내지는 '중년남자와 사춘기 소녀'간의 연애이야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소설속의 그것처럼 마냥 한결같지 않고 한대상만을 갈구하지 않는 잔인한 습성을 가진것 또한 보여준다.
사랑만큼 복잡하고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것도 없음을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되새김 하였다. 사랑을 하면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욕정의 노예가 돼서 더더욱 불행해지는 그 아이러니,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으로 가득한 시선과 개인의 내면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결국 그 사랑은 지탄받고 더럽혀지고 종말을 향해,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를 비롯한 예술의 의미를 굳이 찾는다면 나는 그것을 '저항'이라 말하고 싶다. 본질적으로 위선적인 삶과 사회에 반기를 드는 소소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잘 만들어진, 혹은 잘 쓰여진 문학이니 예술이니 영화가 지탄받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의 치부를 들춰 보여주는 '거울'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험버트도 다 알고 의식하고 있다.어린 로에 대한, 법적으로 자기 딸에 대한 연정과 욕구가 부도덕함을 . 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진실되고 강한 울림을 주는 자신의 본능을 따르기로 하고 그것은 사회와 부딪칠수밖에 없다.
이 둘을 갈라놓는 퀼트라는 인물은 험버트몰래 로를 데려가서는 불법 성착취물을찍는데 써먹는다. 그런 퀼트를 로는 '내 앤생의 유일한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그 말을 듣는 험버트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고만다. 로에게 있어 사랑은 험버트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것이라 하겠다. 다시말해 사랑이란 결코 성스럽고 미지의 것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속된 것일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로....'더럽혀진 로'임에도 험버트는 애써 과거의 풋풋하고 유혹적이었던 어린날의 '로'로 있어주길 고집한다.
워낙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고 그래서 원작을 한번쯤 읽어볼것을 추천한다. 소설과 영화의 문법이 똑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두 장르는 같은 말을 한다. 사랑은 광기라고. 그 사랑이 사회의 용인을 넘어설 경우 가혹한 처벌이 가해진다는 것을. 비단 사랑뿐이겠는가. 비단 예술뿐이겠는가....우리 삶의 거의 모든 입자가 낱낱이 사회의 검열과 통제, 승인을 받아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