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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케익

by 박순영

하객들사이에서 드디어 웅성이는소리가 들려왔다.

"신랑이 안오네."

"혹시.."

이런저런 수군거림은 신부대기실까지 들려왔고 신부인 하영을 향해 미소를 짓는 얼굴들도 속으로는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영은 폰으로 몇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신랑인 영후는 받지를 않았다. 그러더니 급기야 '전화기가 꺼져있으니..'라는 자동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하영은 당장이라도 호텥식장을 달려나가 영후에게 가서 사정을 듣고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그렇게 마지못해 미소짓고 있는 하영의 입가에 가늘게 경련이 일었다.

그때 뒤늦게 달려온듯한 진우가 후, 하고 숨을 고르더니 신부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랑이 오지 않은사태를 모르는지 진우는 속없이 하영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이뻐'라는 입모양을 만들어보였다.



하영과 진우는 대학 신입생때 교내 미팅에서 만나 연인과 친구사이의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 옆 대학에서 원정농구를 온 영후가 구경하던 하영에게 강하게 대쉬, 그럻게 진우와는 그저 친구로 남게 되었고 진우도 초등동창을 뒤늦게 동문회에서 만나 사귀는 분위기였다.

"야, 우리 나중에 애낳으면 사돈 맺자"라는 진우의 말에 하영은 "그러든가"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둘이 이어지는 관계는 그렇게 뒤로 한걸음 물러나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좁은 캠퍼스에서 하루걸러 얼굴을 부딪치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든 하영과 진우는 서로 고민이 있으면 주거니받거니 술을 나눠 마시며 토로를 하기도 하였다.

"야 , 우리가 결혼했더라면...으,끔찍해"

진우가 몸서리를 치자 "너만 그런거 아니거든?"질세라 하영이 맞받았다.

둘의 대화는 늘 그런식이었다.

그러면서도 기이한건, 한번도 커플 모임을 가진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건 둘 사이에 무언의 금기같은 것이었다.


"야 근데 신랑은 어딨냐?"

하영옆에서 촌스럽게 v자를 그리고 기념촬영을 한 진우가 눈치없게 물었다.

"그게...."하는데 하영의 뺨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너 우냐? 넘 좋아서?"

"바보자식..."하며 하영은 신부장갑으로 눈가를 꾺꾹 눌렀다.

'무슨 일인데?'하고 그제서야 상황을 눈치챈 진우가 음소거로 하영에게 물었고 하영도 역시 입모양만 만들어 대답했다. '글렀어'라고.


사회자는 계속해서 애드립을 치면서 시간을 끌었지만 하객들은 혀를 차면서 하나둘 식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거야. 왜 신랑 안와?"

그말에 하영은 참고 있던 울음을 그만 터뜨리고 말았다.

하영은 짚이는 데가 있었다. 영후의 '그녀'가 떠올랐다. 한번도 본적 없는 그녀지만 영후가 자주 언급해서 마치 만난 사람처럼 여겨졌다. 영후의 고향친구라는 그녀.



"난 동문회나가면 대장 노릇하잖아"

"치, 유치하긴"

"고정멤버가 넷인데 그중 하나가 여자애야. 걔, 내 말이라면 꼼짝도 못해"라고 으스대던 순간, 하영은 영후가 '그녀'를 마음데 두고있음을 깨달았지만 그저 '친구'라는데 더 캐물을수도 없었다 . 하지만 언젠가 둘이 데이트를 하는도중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한시간 가까이 붙들고 있는 영후를 보고는 심상찮다는 느낌을 받은것도 사실이었다.

"언제 나좀 소개시켜줘"라고 하영이 말하자

"니가 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분이 상한 하영은 더 묻지 못했다.


"걔 여자있어"라며 어깨를 들썩이며 신부대기실에서 부케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는 하영을 진우는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황망하기만 하였다. 이미 식은 파투가 거의 난 상태였고 3단 웨딩케익이 비어가는 식장에 처연하게 남겨졌다.

"야, 그런건 결혼전에 다 정리했어야지" 진우가 속삭이자

"나 죽고 싶어 진우야"하며 하영이 더 크게 흐느꼈다.

"다 들려 "

"나좀 데리고 나갈래? 어디든 좋아"라는 하영의 청에 진우는 난처하기만 했다.

"이럴때 신랑 대역이라도 있으면 불러오는건데"라는 그의 말에 , 울고 있던 하영이 울음을 뚝 그치더니 상기된 눈빛을 진우에게 던졌다.

"뭐?" 괜히 겁이 난 진우가 흠칫하자

"니가 좀 해줘. 나중에 술살게"라는 하영의 말에 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야, 부모님이 가만 계시냐?"

"내가 나중에 설명하면 돼. 이해하실거야 "

"말이 되는 소릴해. "

"한번만....한번만 부탁이야. 응?"

하영의 그말에 진우의 혼은 허공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한순간에 하영후로 둔갑한 진우는 신랑입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주 가까운 친인척외 대부분의 하객은 신랑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물론 청첩장에 영후와 하영의 사진을 박긴 했지만 근거리에서 가까이 보기 전에는 알수 없는 것이었고 아는 이라고는 오직 양가 부모뿐이었다.

안그래도 아들 영후의 결혼식 펑크에 몸둘바를 몰라하던 신랑의 부모는 오히려 대역을 해준 진우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였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가짜 결혼식이 벌어지고 드디어 행진을 하는 순간 하영은 두다리에 힘이 풀려 간신히 걸음을 옮겼고 그런 하영을 진우는 한껏 힘주어 리드를 했다. 그렇게 식이 모두 끝나고 케익 커팅 시간이 되었다.

화이트와 핑크가 절묘하게 배합된 3단 케익을 커팅하고 사진촬영만 하면 오늘의 '연기'도 끝이 나는 판이었다. 함께 케익 커팅을 하는 동안 하영은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뻔했다. 그런 하영을 진우가 간신히 진정시켰고 저만치서 양가 부모들이 약속이라도 한듯이 일제히 손수건으로 얼굴의 식은땀을 닦아내는게 보였다.

"고마워 서진우"

하영이 낮게 속삭였다.



"저 케익 내가 가져가도 되니?"

사진 촬영이 다 끝났을때 진우가 낮게 하영에게 물었다.

"너 좋을대로 해"하더니 하영이 실신을 해버렸다.

그런 하영을 진우는 들쳐업고 인근 병원으로 달려갔다. 정말 영화를 찍는것만 같았다.

"내가 왜 여기?"

거의 한시간만에 응급실에서 눈을 뜬 하영이 내뱉은 첫마디가 이랬다.

"이제 다 끝났어. 개자식"하며 진우는 영후의 욕을 하였다.

"넌 어쩌다 여자있는 놈을 만났냐. 나처럼 싱글을 만나야지"

"너도 있잖아...왜, 헤어졌어?"

"그렇게 됐지 뭐..."

그리고는 둘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거 소송걸려면 뭘로 거는거지? 혼인빙자, 이런거 없어졌으니까..."

그말에 하영은 맥없이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때문에 내가 웃는다"

"일어날수 있어? 가서 케익 먹자."

"아참, 니가 가져간다고 했지?가져 가"

"같이 먹자구"

그말을 하영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미친놈"

그날밤 하영을 안은 진우를 하영은 마구 때리고 발길질하며 욕을 해댔다.

"나, 너좋아해. 우리 결혼했어 오늘"

"뭐 같은 놈"

"너도 나 싫지 않잖아. "

"결혼...아유 이걸!"

"출출한데 우리 케익이나 먹자"하고 진우가 호텔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웨딩 케익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욕을 해대던 하영도 그를 따라갔다.

"난 단거 별로 안좋아해. 조금만 줘"라며 먼저 접시를 내민건 하영이었다.

그말에 진우가 삐뚤빼뚤한 치아를 내보이며 씩 웃었다.

"너 이빨 교정부터 해라.안그럼 나, 이 결혼 무효로 할거야"라는 하영의 으름장에 진우가 접시위의 케익을 포크로 떠서 하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맛있다. 그렇게 달지도 않고" 라며 하영이 한입 더 달라고 하였다. 하영의 입에 한입 더 넣어주며 진우가 물었다.

"우리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까?"

"음...어디로...뭐? 신혼여행? 이 자식이 정말?"


그날밤 s 호텔 805호는 프런트에 민원을 넣을수밖에 없었다. 밤새 윗층이 요란하게 떠들고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통에 잠을 이룰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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