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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Apr 07. 2023

에세이 <예전 백마에서>

요요히 흐르던 달빛.

일요일, 백마근처를 돌아볼 일이 생겼다. 예전에 거기서 지인과 술을 마신적이 있고 TV에선 얼굴 보기 힘든 라이브 위주의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린 방송일 때문에 만났는데 막상 그런 분위기가 되자 노래와 분위기에 심취해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한것 같다.



이후로 그쪽에 갈 일이 없어 잊고 지내다 경의선을 탈일이 생겨 지도를 들여다보니 백마가 눈에 띄었다.



그때 그는pd였고 그 오래전에 일면식이 있던 사이였다. 나는 그에게 써둔 단막극 원고를 주었고 그의 응답을 기다렸지만 그에게선 연락이 없었고 해서 내가 뒤늦게 전화를 걸어 채택 여부를 물었다. 했더니 "글쎄, 뭐 그리 당기질 않네요"하던게 떠오른다.


연출자가 매력을 못느낀다는 바에야, 하고는 나는 그 원고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른일을 하며 2년여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친구로부터 미술 전시회에 가자는 전화가 걸려왔고 그렇게 해서 우린 시내 모처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전람회를 본것 같다. 그리고 밖엔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것도같다.  



그리고는 다 저녁에 집에 들어왔는데 전화 자동응답기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누구지? 하고는 테잎을 돌려보자 내 원고를 거절한 그 pd가 다급한 목소리로, 지난번 그 원고로 가려고 하니 수정좀 부탁한다는 내용을 녹음해놓았다. 그순간 나는 이런일도 있구나, 싶으면서도 2년의 공백을 만들어버린 그가 야속해 수정도 콜백도 하지 않았다. 그결과 그 작품은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방송을 탔다.



그러고나서  저녁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그로부터 받고 그렇게 우리는 그의 주거지에서 가까운 백마 어느 까페로 향했던것 같다. 수정도 거치지 않았는데 시청률이 잘 나왔다며 그는 미소를 지었고, 막상 얼굴을 대하자 서운했던 감정은 사그러들고 그렇게나마 내게 또한번의 기회를 준 그가 고마웠다.

라이브 음악이 흐르고 맥주 몇잔, 단출한 안주가 전부였지만 분위기는 따스했고 까페를 나오는데 저만치 어둠속에 요요히 흐르던 달빛이 신비롭던 그런 겨울밤이었다.



이후로 한작품 정도 더 그와 했던거  같기도 하고 그 이상의 연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백마에서의 그 홀가분하고 조금은 감사했던 마음의 기억은 내게 아름답게 남아있다. 가끔 그의 소식이 궁금해지면 포탈에서 이름 석자를 검색해본다. 대부분 고참  pd가 되면 연출현장에서 멀어지는데 그는 꽤 늦게까지 드라마를 만든것으로 나온다.




이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일도, 그럴 필요도 없는 사이가  되었고, 그저 아련히 기억에나 남아있지만 어쨌든 그날 백마 그 까페에서 흐르던 라이브음악과 요요히 떠있던 만월에 가깝던 그 달만은 그리움으로, 젊은날의 애틋한 감동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이번에 다시 백마에 가면 한번 찾아보려고 한다. 그 까페가 여전히 있는지...아님, 내가 흘려보낸 시간과 더불어 이미 폐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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