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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Apr 06. 2023

에세이 < 반추될 나의 천변일기>

삶은기다림의 연속..  

요며칠 매사에 의욕도 떨어지고 몸은 계속 처지고 어제는 호 흡곤란까지...이러다보니 솔직히 만사가 귀찮고 뭘 해도 안될거 같고 그렇다. 아닌게 아니라 하루의 절반을 누워서 뒤척뒤척. 나이들어가는 값을 이렇게 하는건가,하면서도 아직 '그때'는 아닐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간신히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별탈 없이 그냥저냥 지내는거 같다. 가끔 친구가 오면 수다도 떨고 같이 음식도 시켜먹고. 그러나 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하는거 같진 않다. 그저 무난한 이야기, 세계적 궁핍의 시대 따위가 단골 화두가 된다. 물론 그런게 덜 중요하다는건 아니지만, 무언가 겉도는 느낌, 아니면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랄까.



어젯밤도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깨다보니 자는게 더 피곤할 지경이었다. 이럴땐 정말 모든걸 놔두고 어디 멀리 여행을 가거나 한달정도 문밖을 안나가고 방구석을 지키는게 낫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든다.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있는데 도통 의욕이 나지 않으니.



예전 회사 생활을 잠깐씩 할때는 이런 타임이 되면 어김없이 그만 두곤 하였다. 그래서 가끔 이력서라도 쓰려면 그럴듯한 재직기간을 쓸게 없다. 단 한가지 학교에서 아이들 영어강의를 한거 외엔. 그것도 막판에는 지겹고 돈은 안벌려서 계속좀 해달라는걸 뿌리치고 도망치듯 여기까지 이사를 온 셈이다. 그 모든걸 내려놓기 위해. 물론 그때는 뒤늦게 대학원을 들어가 학위를 마치고 2년제 전임(지금은 조교수라고 한다고)자리라도 얻을 내 나름의 목표는있었지만...사실 석사를 따고 그런 제의가 실제로 있었는데 내쪽에서 거절을 했다. 이유는 '멀다'는 이유로...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그쪽으로 이사를 가든 차를 사서 움직였으면 되는걸.


공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석사를 따고 타대학 박사과정에 합격까지 해놓고 등록을 하지 않았다. 석사과정동안 징그럽게 나를 괴롭혔던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정치, 음모, 편가르기, 편법, 그속에 휘말려들어 당했던 수모와 굴욕의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게다가 아직도 여전한 교수와 학생의 도제적 관계 등.

그래도 그때 꾹 참고 박사과정에 들어갔더라면, 하는 상상을 아주 가끔은 하곤 한다. 공부를 아예 놔버리진 말았어야 하는데, 정도의 회한이랄까. 조금 느슨하더라도 그래도 이어는 갔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후회같은것이다.



힘들땐 잠시 쉬는 rest거지, 아예 놓지quit는 말라는 말이 있다. 회사생활도 한두달 하고는 놔버리고 마니 안한만 못한게 된것처럼 글쓰는 것도 쓰다만 것들을 들춰보면 이젠 손을 댈래야 댈수가 없다. 그당시 감각, 느낌, 이런것들을 기억해내기도 힘들고 하다만 걸 다시 붙든다는것도 쓰잘데기 없어 보이고 그렇게 마무리해서 보내본들 채택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이럴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때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분간 쉴수는 있어도 아예 놔버리는 일은 없기를. 그렇게 다 떠나보내면 내게 남는건 아무것도 없다.

오늘 나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난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루틴한 나의 일과를 소화해낼것이다. 비록 열정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해도.  마치 오래 된 부부들처럼.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만 삶이 지속되는건 아니니 내 심플한 일과정도는 해내고싶다.



모른다. 이럴때 끝맺지 못한 난치의 원고를 마무리할지...

실제로 공들인 글은 묻혀버리고 마지못해 ,짜투리시간을 메꿀 요량으로 써댄게 채택되기도 하므로.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될대로 되라,식으로 할때 의외로 풀릴때가 있지 않은가.


아무튼 어제 오늘 꿀꿀한 하늘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은 다운되지만, 그대신 집건너 개천은 제법 물이 불어 걸을만 하다. 콸콸 물소리도 들려오고.

천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름 장마철이 와서 며칠 계속 폭우가 오면 아에 출입통제를 할만큼 물은 놀랍도록  불어나고 그 흐르는 소리는 멀리서도 들린다. 고막을 뚫을 기세로...





그 천변이 말라 있을때야 정말 볼품없어 쳐다보기도 싫지만 조금만 참고 우기가 찾아오면 난 어김없이 그 불어난 개울물에 감탄하며 그래도 내가 사는 이곳이 그리 후지진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일말의 고마움까지 느끼게 된다 . 이사를 하든 안하든, 설령 멀리 떠난다해도 여름날 개울이 내든 그 청아하면서 웅장한 물소리는 결코 잊을수 없을것이고 아스팔트 위에서도 곧잘 반추될것 같다.

오늘도 오후 늦게쯤 나가볼 생각이다. 비가 그쳤으니 물은 줄었겠지만 아직 밑바닥을 드러내진 않았으니   남아있는 물이 내는 소리는 들을수 있으리라...

물없는 개천이 보기 싫다고  흙으로 메워버렸다면, 비에 대한 기다림이 없었다면 오늘의 정릉천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힘들면 잠깐 쉬어가는거지, 완전히 놔버리진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회복의 시간은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갖고 기다리기. 우리삶이 별게 아다. 기다림의 연속,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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