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이별

회자정리.

by 박순영

처음 이집을 분양받고는 매주 엄마와 함께 영등포에서 여기까지 달려와 공사진척을 확인하곤 했다. 그만큼 이 집은 내게 첫사랑같은 설렘과 기대를 주었다.


그런 뒤면 어김없이 뒷산에 올랐다. 처음엔 몇미터 오르지도 못해 숨이 턱 막혔지만 그것도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길은 다시 양갈래가 되고 왼쪽은 칼바위방향이고 오른쪽은 그냥 동네산길이다. 대신 전나무숲이 울창해 비나 눈이 오면 장광을 이룬다.


어느 늦가을, 엄마와 역시 주말을 맞아 달려왔고 그때 산에 올라 내려다본 인근 동네의 초저녁 불빛들은 정말 따스하기만 했다. 게다가 여기저기 낙엽이 뒹굴고 스산한 바람에 그 이파리들은 날리고 .

그풍경을 보면서 '여기서 죽어도 좋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도 옆에서 '근사하구나'를 연발하셨다.


그로부터 18년을 살고 이제는 산이 아닌 물을 찾아 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나를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느낀다. 그렇다고 나의 산에 대한 애착이 사라진것도 아닌데...

그저 조금은 트인 공간에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인데.


가끔 친구가 올라치면, 같이 뒷산을 오르는데 그 친구는 관찰력이 남달라 나는 무심히 지나치는 물웅덩이까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올챙이라도 있으면 쭈그리고 앉아 신기해한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 니 사는곳이랑 여기랑 바꾸자...라고.


가끔 택시를 타서, 정릉 가주세요,하면 '공기좋은 데 사시네요' 하는 경우가 많다. 하기사 오랜 동네고 아직 미개발 지역도 많고 대신 나무며 산은 많으니 달리 할말도 없을듯싶다. 처음엔 그래서 그 '공기'얘기가 썩 달갑지 않았는데, 이젠 '네, 공기 좋아요'라고 자신있게 답한다. 그러다보면 가슴 한켠에 지금도 개천에 청둥오리랑 백로가 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사하면 저녀석들과 이별인데...


떠남.jpeg


그럼 안떠나면 되는데 난 이사 포기를 안하고 있다. 내놓은 지 6개월동안 큰 금액을 다운시켰지만 역시 주택대란이 맞긴 한거 같다. 그래서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다.


안 떠나고 눌러앉아도 될걸 굳이 가려 하는 나나, 헤어지지 않아도 될 인연들이 굳이 떠나가는거나 도긴개긴이다 그러고보면. 회자정리,라는 말만큼 슬픈 말도 없는거 같다.


이번주는 내내 황사라고 하니 패스하고 주말이나 다음주쯤 오랜만에 뒷산에 오르기로 한다. 오래전 공사진척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여길 드나들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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