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원해 je te veux

by 박순영

오늘은 습도까지 높아서 집에서 입던 긴팔 셔츠를 걷어내고 나시원피스를 입었다. 예년보다 빠른셈인데 조만간 에어컨 시운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여름옷을 입고나니 내가 무장해제 되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문득 에릭 사티의 "널 원해je te veux"r가 듣고 싶어 유투브를 클릭했다.


말년이 비극적이었던 예술가들은 많은듯하다. 비단 말년뿐이겠는가마는...


오랜기간 음악적 동료이자 부부로 살았던 미셸 베르제와 프랑스걀만 해도 남편은 40대 초에 ,와이프도 70을 못채우고 갔다. 그것도 각자의 연인을 따로 둔 채...


그러가하면 누구나 집에 카피 한점씩은 갖고 있는 반고흐도 처연한 삶과 죽음을 맞았다. 근래 와서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동네 불량배들의 소행일수도 있다는...난 그의 그림중에서 '아몬드나무'와 '방'그리고 주치의였던 '가셰박사'를 유난히 좋아한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아를르에 가보고싶다.



그런가하면 서두에서 언급한 에릭사티는 지독한 실연끝에 나머지 생을 자기 방에 틀어박혀 음악에만 몰두했다. 얼마나 실연의 후유증이 컸으면 세상을 단념하고 그렇게 살았을까.



그리고 무용가 이사도라는 달리는 차 바퀴에 자기 스카프가 끼어 죽었다. 너무나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죽음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은 처참했어도 그들이 남긴 작품은 세월을 뛰어넘어 여태 회자되고 불리우고 감상되고 있다. 그것만 봐도 예술엔 역시 그나름의 '자생력'이 있는것같다.



이처럼 예술은 구차하게 동의를 구할 필요없이 본능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여 공감하게 하고 때로는 다채로운 상상을 가능케 해주며 마음의 안도와 설레임을 주는 마력을 지녔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살인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멸의 문학작품을 읽으며 사기를 치는 이도 없으리라. 예술은 그 하나하나가 설령 미완이라 해도 하나의 오브제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한순간의 점멸, 눈부신 찰나, 영원한 오이디푸스, 이런것들이 모여 예술을 이루고 또 그너머의 세상을 가늠케 하는듯 하다.


이 예술의 끝자락에나마 서있다는게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2) Satie - Je te veux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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