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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by 박순영

"오늘도 늦어?"

현주는 끓여놓은 된장찌개를 보며 정수에게 전하를 했다.

"어...또 야근이네. 밥 먹었어? 안먹었음 먼저 먹어"

"뭐야 맨날..." 하고 현주는 전화를 끊었다.


신혼여행 휴가를 낸 동안 일이 산적해있다고 정수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시피 하였다.

둘은 서로 거래처 직원으로 알고 지내다 1년여의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비슷한 성장내력, 엇비슷한 가정환경이 서로의 결혼을 무리없이 진행하게 했다

딱히 서로가 없으면 죽고 못 사는 것도 아니지만 없으면 왠지 허전해지는 그런 차원의 감정들이었다.

서로 그걸 알기에 오히려 편한 부분도 있엇다. 감정을 오버할 필요도 없고 웬만하면 타협하고 살아간다는 게 묵시적 조건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신혼여행 뒤 매일 혼자 저녁을 먹게 된 현주는 툴툴거리며 수저를 들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으로 내다본 바깥엔 키가 훌쩍 한 웬 낯선 남자가 서 있엇다. 순간 현주는 본능적으로 오싹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초인종이 울렸고 이번엔 슬그머니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여기 혹시 정현주씨 댁 맞나요? 꽃배달 왔는데요"라는 말에 현주는 풉, 웃음이 삐져나왔다.

매일 야근한다고 늦는게 미안해서 남편 정수가 보냈으려니 하고 문을 열엉준 그녀는 배달원으로부터 커다란 꽃다발을 받아들고 사인을 해줬다. 그러자 남자는 '그럼'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아파트 복도를 갈어나갔다.



집안에 꽃다발을 들고 들어선 현주는 대뜸 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또.."

조금은 짜증난 소리로 정수는 대답을 했다.

"치...고맙다구"

"뭐가?"

"꽃....자기가 꽃 보낸거 지금 받았어"

"밥 먹고 쉰소리하네? 무슨 꽃?"

그말에 현주는 움찔했다. 남편 정수가 보낸게 아니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다른놈이 보냈나 보네. 잘 생각해봐"하며 정수는 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누구지? 하고 꽃 속을 아무리 뒤져도 카드나 메모따위는 발견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후, 마트에 가서 장을 보던 현주는 이것저것 정신없이 주워담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캐셔의 빠른 손놀림을 보며 감탄하는데 자기가 담지도 않은 부대찌개가 담겨있어 , 이게 뭐지? 하며 캐셔에게 '그건 빼주세요'라고 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자긴 집은적도 없는 생선이며 조각케익이 담겨있는걸 보며 카트가 뒤바뀌었나 곰곰 생각했다.

좀 이른 시각이어서 손님이 그닥 많지 않았고 연신 카트를 밀고 다녔기에 바뀔리가 없었다. 그럼 누가 장난을....하다 현주의 머릿속을 퍼뜩 스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강민규.

그럼 어쩌면 꽃다발도 민규가 보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자기 주소를 알아내서 보냈을까? 불길한 느낌까지 들었고 카트에 실린 그것들을 찬찬이 보니 모두가 민규의 기호식품들이었다.



그날밤 현주는 섹스를 원하는 정수를 마다하고 거실로 나왔다. 커튼 사이로 들어어는 달빛이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조만간 민규, 그를 만나게 될거라는.

그리고 사흘후 정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규와 재회를 하였다. 헤어진 지 3년만에.

둘의 결혼은 팔짱끼고 식장에 나란히 걸어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둘은 그렇게 긴 버진 로드를 걸어갔다...

그순간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를 둘러본 둘의 눈에 실신한 여자, 그러니까 민규가 사귀던 여자 해인이 쓰러져있는게 보였다. 그렇게 결혼은 파투가 났고 서로의 예물을 돌려준뒤 없는 일이 되었다.


"나한텐 다 정리했다고 했잖아"

"난 했지. 근데 해인이가.."

"해인이...당신 말속에 아직도 애정이 철철 넘쳐...나쁜자식"하고는 그의 뺨을 후려치고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년을 지내왔다. 그렇게 결혼식이 파투나고 그녀라고 온전히 살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럴수록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고 외로움이 막바지에 달했을때 고맙게도 정수가 다가워줬다.


"결혼 축하한다는 의미로 보낸거라고 생각하면 안될까?"

꽃배달 운운하며 현주가 화를 내자 민규는 너무도 태연히 , 그러나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해댔다.

"여기가 헐리웃이니? 옛 여자한테 결혼축....말도 안돼"

"우리 친구하자 이제...어차피 같은 아파트에 살기도 하고"

"당신이랑 내가 친구 먹을수 있어?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알았어...다신 아는척 안할게"

하고 민규는 9층에서 내렸다.

12층 자신의 집까지 올라가는 동안 현주는 곰곰 생각을 해봤다. 아는척 하지 않는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걸..


그런데 이상한건, 민규의 존재가 드러나기 이전까지는 남편 정수와 그런대로 만족한 섹스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로부터는 그를 멀리하게 되고 어쩌다 관계를 가져도 심드렁해서 인위적인 신음소리를 내줘야했다...왜 이러지 내가...

아무래도 만나서 결단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현주는 하게 되었다.


물어물어 민규가 902호에 산다는걸 알게 된 민주는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결번으로 나와서 궁리끝에 쪽지를 써서 문틈에 꽃아놓았다. 그리고는 인근 까페에 먼저 가 앉아있었다.

그러자, 아마도 쪽지를 본듯한 민규가 약속시간을 조금 넘겨 까페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곧바로 현주를 향해 걸어왔다.순간 현주의 가슴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심장이 밖으로 튕어나올것만 같았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네"하며 민규는 늘 마시던 카모마일티를 한모금 입에 넣고 음미를 하였다.

"이사가 줘."

"뭐?"

"이렇게 어떻게 사니. 이사 가 얼른"

"야..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그래, 이삿날 너 봤어. 그리고는 나도 심쿵했지...하지만 뭐 어쩌냐.어쨌든 2년 계약하고 들어온 걸...서로 모른척 하면 되잖아"

"남편을 속이는거 같아서 그래. 그리고 당신, 아니 강민규씨 너를 보면 화가 복받쳐"

그말에 민규는 찻잔을 가만히 내려놓고 지긋이 현주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져갔다.

"애는 없는거지?"

뚱단지같은 그 질문에 현주는 화가 버럭 나서 "니가 뭔데..애 타령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옆자리의 연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힐끔거리는게 보였다.

"아무튼 한달줄테니까 이사 가. "하고 최후 통첩을 날리고 현주는 까페를 나왔다.

어둠이 짙어지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이제 막 차를 주차시키는 남편 정수가 눈에 띄었다. 구세주라도 만난양 현주는 정수에게 달려가 백허그를 했다.

"이 여자가 미쳤나...야, 다 보잖아"라고 해도 현주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그후로 정말 이사를 간건지 민규와 다시 마주치는 일은 생긱지 않았다.

그러자 안도와 함께 희미한 서글픔이 현주의 마음속에 자리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예전 일이고 옛남자라 해도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산다는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어느날 장을 보고 자기 동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은 웬만하면 경적을 누르지 않는걸로 아는 현주는 짜증을 내며 돌아보았다.

근 한달만에 그렇게 민규와 현주는 재회했다.



"내말을 콧등으로 듣니 귓등으로 흘리니"

라고 대뜸 현주가 쏘아붙였다.

"애처럼 굴지마. 내 사정은 전혀 고려 안해?"

"이러다 남편이 알게 되면....니가 책임질래?""

그말에 민규는 담배를 한대 물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담배태우는 모습에 현주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민규는 금방 담배를 눌러 끄고

"갈게. 보름만 시간을 줘"라고 말을 했다.

그말을 하는 민규의 옆모습이 현주에겐 안쓰럽게 느꺄졌지만 그렇다고 그냥 계속 살라고 할수도 없었고 , 더군다나 이제 막 신혼살림을 차린 자기가 옮겨가긴 죽어도 싫었다.



"당신 아이 소식은 없어?"

며칠후 저녁을 먹다 불쑥 남편 정수가 물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하긴...요즘은 매번 피하기만 하니까"

"내가 언제"라고 하면서도 현주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실직고 민규의 이야기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생기겠지 뭐..."

"피임하는건 아니지? 난 애 빨리 낳고 싶어. 그래서 당신 직장도 그만두라고 한거고"

"그게 뭐 원한다고 되고 그런건가 뭐?"하고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였지만 요즘 와서 안그래도 남의 아이라도 보게 되면 괜히 한번 볼이라도 만지고 싶어지는 현주였다.

그날밤 현주는 ai를 사용해 자신과 정수 사이에 태어날 2세를 그려보라고 하였다. 자신들의 사진을 넣어서.

그러자, 볼이 통통하고 눈망울리 선하고 머리가 반곱슬인 아기 사진이 모니터에 떴다...

그러자 이번엔 장난기가 발동해 예전 폰앨범을 뒤적여 민규와 자신의 사진을 넣고 독같은 주문을 했다..

그러자 둘을 똑같이 나눠 닮은 아이가 생성되었다...풉....그런 자신이 우스우면서도 조금은 애틋한 느낌이 들었다. 둘이 애를 낳았더라면.....하는 아쉬운 생각을 하며 그녀는 컴퓨터를 끄고 정수가 먼저 잠들어있는 침실로 향했다.



"결혼식 그렇게 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그래서, 그여자하군 어떻게됐어?"

민규와 현주는 얼마후 분리배출을 하다 마주쳐 단지 놀이터 그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했어"

그말에 현주는 아찔해졌다.

"내 애를 가졌더라고...그래서 그렇게 식장까지 달려온거고"

"그럼....지금 그 여자랑 사는거야 여기서?"

" 죽었다. 애 낳다가."

요즘 세상에도 출산하다 죽는 일이 있나보다,하며 현주는 마음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다보니 같이 살던 집에서는 도저히 못살겠더라구. 그래서 옮겼는데...이래서 사는건 코미딘가 봐."

그말에 현주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내뱉었다.

"그냥 살어. 그럼. 내가 갈테니까 이사"

"니가?"

민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내가 피해줄게. 그래도 한두달은 집도 찾아야 하고 짐정리도 해야 하니까 그동안만 기다려줘"하고 그녀는 먼저 놀이터를 나와 자기 동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 너 여기 좋다고 했잖아"

난데 없는 이사 이야기에 정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야, 계약기간도 있는데"

"물어주면 되잖아 복비"

"니가 돈 안번다고 막 쓰네? 왜...여기가 싫어?"

"그냥 뭐...좀더 시내로 나가면 어떨까? 여긴 넘 외곽이고"

"답답했구나...하긴 회사 생활하던 사람이 하루종일 , 인프라도 없는 데서 살았으니...생각해보자"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후 정수는 집주인에게 나갈거라는 통보를 했고 복비는 자신이 내겠노라 했다.

안그래도 싸게 전세를 줬다며 툴툴대던 주인은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대출을 받아 조금 더 번화한 단지로 이사를 가던날,

잔짐을 들고 내려오던 현주와 민규가 엘리베이터안에서 마주쳤다.

"너 정말 가냐?"

"가지 그럼...."

'어디로?"

"왜 쫓아 오려구?"

그말에 빈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바보야. 내가 왜 너한테 꽃을 보냈겠어? 너 결혼축하한다고? 개뿔"

이라며 그가 발끈해서 내뱉었다.

"그럼 뭐야....그럼 아직도 날"

"그래, 아직도 널..."

이러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둘의 대화는 끊어졌다.



그렇게 새로 이사간 집은 평수는 줄었어도 주위에 이런저런 인프라가 즐비했고 크고 작은 의료시설도 갖춰져있었다...

저녁을 먹다 구역질을 해대는 아내 현주를 보며 정수는 "내일 같이 가보자 병원"이라고 들떠서 말했지만 현주는 왠지 불안했다.



그렇게 집을 옮긴 지 일주일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주는 902호 민규의 집을 찾았고 둘은 격정적으로 서로를 안았다. 다신 만나지 말자고 . 이젠 끝이라고 하면서...


의사는 현주의 자궁 내진을 하더니 임신이 맞다고 하였다.

순간 정수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현주는 혼란속에 빠져버렸다.

그말만 안했어도...아직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민규의 말만 없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텐데....하면서 현주는 차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정수를 물끄러니 바라보았다.


"타 얼른. 이제 조심, 산모님"

그리고 정수는 그날따라 서행과 조심운전을 하면서 집을 향해 달렸다...

현주는 울음이 타져 나오는걸 억지로 참았다. 그러자 멀미는 더 심해져 결국 도중에 차를 세워 토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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