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많은 글을 써대도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게 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을 만나도 유독 잔상이 오래 가는 경우와 같을 것이다.
오랜만에 장편 시나리오를 써볼까 했는데 시작도 전에 지쳐버려 그만두려는데 퍼뜩 한작품이 떠올랐다.<<사랑의 오류>>에 수록된 <그들이 사랑한 방식>이 그것이었다.
오랜 연인, 그러나 너무시간을 끌어 결혼포인트를 놓쳐버린, 그래서 갑자기 다가온 이별.
이 작품을 쓸때 엔딩이 이렇게 흘러갈줄 몰랐다.
사실 난, 정교한 틀을 먼저 만들고 쓰는 경우보다는 대강의 느낌, 살루엣 정도를, 어떤땐 전혀 구상을 하지 않고 마구 써대는 유형이다.
아무튼 그래서 장편 대신 10-15분 분량으로 <그들이 사랑한 방식>을 각색해서 몇군데 보냈다.
그외에도 <<티타임의 연가>>를 예전에 각색놓은 것과 강간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데졸레>등, 몇가지를 뭉뚱그려 보냈다.
그래서 하나라도 채택이 되면야 좋지만, 안돼도 나중에 시나리오 선집으로 내면 되는것이기에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조차 안해도, 내가 그런글을 썼다는 기억, 그걸 각색, 영상화를 시도해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유독 기억에 남는, 그래서 되짚어보게 되는 인연들과도 이렇게 다시 만났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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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는 버스가 움직일 때까지 미동도 않고 서서 창가의 윤정을 바라보았다.
은호는 '전화하라'는 손 모양을 만들어 보였고 윤정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헤어지지 않기로 했는데, 그저 밥 한끼 먹으며 가는 해를 함께 보내러 온 건데도 그녀와 은호의 마음속엔 깊고 커다란 싱크홀이 생겨버렸다.
은호가 점이 될 때까지 돌아보다 윤정은 고개를 돌렸다. 차는 지하 차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