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떨어지든 돈이 바닥이 나든 나는 태평하다. 문제는 동네친구가, 어깨 수술하고도 내 걱정을 끊지 못하고 동네 전단지까지 죄다 훑어보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까는 전화가 와서, 추가대출을 좀 받게나, 해서, 안그래도 그럴 생각 있음, 했더니. 연속 1금융건은 힘드니 저축은행, 어쩌구 해서...어디야? 했더니 호수공원 걷고 있다고 해서, 안아프면 오든가,했더니 빛의 속도로 왔다.그래서 오므라이스 둘을 시켜놓고 밥알 튕겨가며 이 얘기 저 얘기 했다.
30년을 지상파 방송국 다니다 퇴직하고 나오니 세상에 사기꾼이 너무 많더라는...그래서 지상파 정도면 대기업, 관공서급, 즉 온실이라고 했더니 맞는다고.. 자기 동료 하나가, 퇴직하고 은행가서 대출을 받으려고 했더니 소득없다고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재직당시엔 얼굴만 보여도 대출 받으라고 꼬시던 인간들이 문전박대를!
그 말에 괜히 내 마음이 안좋아 돈 만원을 택시비로 주었다. 몸도 아픈데 갈 때 택시타라고. 그랬더니 그돈 아낀다고 걸어갔다. 남자 걸음으로 금방이지만, 코끝이 찡했다.
이달말까지 수술부위에 물 닿으면 안된다고 해서 2주째 머리도 못감고 있다고 한다.
와이프한테 머리 감겨 달라고 해, 라고 잔소리 했더니 알았어...하고는 미관광장을 건너 엠시티 자기 집으로 향하는 그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예전 방송국 앞에서 자주 만나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꼭 맥주를 곁들여서 음식값이 꽤 나와도 군소리 않고 내주던. 어쩌다 내가 내면, 그러다 굶는거 아냐? 하고 걱정하던.
이런 얘길 쓰다보니 천상병의 [광화문 근처의 행복]이 떠오른다....
ps. 오늘 낸 종이책 표지를 들여다보니, 여자가 공중부양을하고 있다. 바코드 넣는다고 그림을 움직이다 그 모양을 만든거 같다.해서, 내일 파일교체일이라 그여자 착지시키느라 돈 만원 썼다.
광화문 근처의 행복 - 천상병
광화문에,
옛 이승만 독재와
과감하게 투쟁했던 신문사
그 신문사의 논설위원인
소설가 오상원은 나의 다정한 친구.
어쩌다 만나고픈 생각에
전화 걸면
기어코 나의 단골인
'아리랑' 다방에 찾아온 그,
모월 모일, 또 그랬더니
와서는 내 찻값을 내고
그리고 천 원짜리 두 개를 주는데---
나는 그 때
"오늘만은 나도 이렇게 있다"고
포켓에서 이천원을 끄집어 내어
명백히 보였는데도,
"귀찮아! 귀찮아!"하면서
자기 단골 맥주집으로의 길을 가던 사나이!
그 단골집은
얼마 안 떨어진 곳인데
자유당 때 휴간(休刊)당하기도 했던
신문사의 부장 지낸 양반이
경영하는 집으로
셋이서
그리고 내 마누라까지 참석케 해서
자유와 행복의 봄을---
꽃동산을---
이룬 적이 있었습니다.
하느님!
저와 같은 버러지에게
어찌 그런 시간이 있게 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