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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근처의 행복

by 박순영

일요일인데도 출근한 친구 하나가, 너 개천 좋아하지?하면서 청게천 사진을 보내왔다. 얼마전에 본 운정호수 비슷해서, 얘가 거긴 왜 갔나, 했더니 청계천이라고.


청계천은 분수를 비롯한 조형물이 12개, 다리가 총 22개라고 한다. 어느해 늦여름 엄마와 난 문득 다 저녁에 청계천 보러갈까? 하고는 뜬금없이 광화문행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청계천은 예전의 후줄근한 모습을 완전히 벗고 말끔하게 단장돼있었다. 해가 졌어도 여기저기 물놀이 하는 시민들로 붐볐고 물론 그만큼의 연인들이 추억을 쌓고 있었다. 엄마와 나도 잠시 앉아 물을 감상하던 기억이 난다.


청계천이 새롱운 명소로 부각됐다면 청계천이 시작되는 광화문 거리는 내겐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자주 광화문 대형서점에 나가 책을 보고 더러는 사기도 하면서..그러보면 그때는 참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 듯하다. 이젠 책을 보면, 이걸 어떻게 각색해서 돈을 벌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는데..


이렇게 기억속의 광화문에 나가보면 천상병의 시 <광화문 근처의 행복>과 만나게 된다. 워낙 유명한 시라 굳이 여기 쓸 필요는 없을듯하다. 자신을 '버러지'라 칭하며 광화문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준 신에게 감사하는 내용의 시였다. 언젠가 그가 운영한다던 주점앞을 지나간적도 있다. 들어가진 않았지만, 저기, 천상병이 하는 데야..뭐 그렇게 아는척도 했던 것 같고.


물론 천상병이 노래한 광화문은 그로부터 숱한 변화를 겪었고 시인도 귀천했지만 나는 천상병과 그의 소설가 친구 오상원이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그곳에 나갈라치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인다. 이젠 더 이상 그곳에서 만날 인연도 없는데...


오늘 청계천 사진을 받았으니 조만간 광화문에 한번 나가볼 생각이다. 봄가을엔 건조해서 바닥이 다 드러나도 여름이면 출입 통제까지 할만큼 불어나는 정릉천과 청계천 비교도 할겸.


그러고보니 나 역시 어릴때는 시를 썼던것 같다. 그걸로 자그만 상도 받고 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시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지만 가끔 브런치에 올라오는 시들을 접하다보면 조금은 맑고 순수했던 내 어린날의 시심이 되살아나는것 같다. 그렇다고 다시 시를 시도할 일은 없으리라. 이런 무미건조함과 강퍅함으로 무슨 시를 쓴다는 말인가.



친구가 보내온 청계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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