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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May 07. 2023

소설 <드라이 플라워>

기원은, 어디 영화라도 보러갈까? 운을 뗀다. 그말이 떨어지자마자  나희는 영화앱을 클릭한다 . 마침 기원이 좋아하는 추리이 몇 있어 캡처해서 보낸다. 그러자 뜸을 들이던 기원은  "다귀찮아. 잠이나 잘란다"라는 답문을 보내온다.



나희는 힘이 확 풀린다. 한달 전 그가 헤어지고 첫 메시지를 보내왔을때만 해도 나희는 당장 그와 결혼이라도 하는줄 알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접고 당장 만나자고 했다. 그러자 기원은 "우리 시간좀 갖자"라며 에둘러 거절했고 나희는 자기가 성급했다 생각돼 그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러다 한달만에 그가 처음으로 영화를 핑계로 만나려고 해서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빠르게 대응했는데 또다시 거절을 당하고나자 둘이 다시 이어진건 맞나,하는 의구심이 든다. 해서 그녀는 따로 답문을 보내지 않고 밀린 일이나 마무리 지을 생각으로 회사로 나간다.



일요일이어서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텅빈 사무실 자기 자리에 앉으며 컴퓨터를  켠다. 얼마전 기사를 통해 수리를 받았음에도 회사 부팅은 느리기만 하다. 그동안 커피라도 마실 생각에 그녀는 커피 머신을 작동시키지만 기계는 먹통이다. 컴퓨터 부팅이 되는 동안 건물 1층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올 생각으로 그녀는 사무실을 나간다.



그렇게 편의점에 들어서자 주말이면  보이는 그가 매대를 정리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그가 나희를 알아보는 내색을 한다. 지난번  파리  패션쇼를  앞두고  휴일에도  나왔을때  마주친게  기억이난다.

" 주말만 일하시나봐요"

그러자 예의 사람좋은 미소를 날리며 그가 대답한다.

"평일엔 회사 다니느라고요"

그말에 나희는 이 사람이 아르바이트생이 아닌걸 처음으로 알게 된다. 어쩐지 주말만 나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있나 싶었는데...

"부모님이 하세요 여긴" 이라며   나희의 카드를 긁는다.

그렇게 나희는 라떼 한잔을 들고 편의점을 나온다.


일요일 도심은 한산하기 이를데 없다. 평일 이시간이면 교통지옥인 그지역 도로도 주말이면 텅 비어버린다. 그러자 평일에는 가려져있던 치부같은  유흥업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유도 없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다시 건물안으로 들어서는데 나희의 발 밑에 바삭,하고 뭔가가 밟히는 느낌이다.

뭐지?하고 나희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말라 비틀어진 트라이 플라워였다... 찬찬이 보니 장미였다. 누군가 사무실에 꽂을 꽂겠다고 가져가다 흘린듯하다...

나희는 왠지 그 드라이 플라워가 신경 쓰여 한참을 망설이다 그것을 집어든다. 날 리도 없는 향을 맡아보자 희미하게 아직 향이 남아있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그렇게 꽃을 들고 그녀는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사무실에 들어오자 컴퓨터 모니터는 이국의 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나희가 편의점에서 커피를 내릴 동안 계속 부팅 상태이다 조금전 켜졌다는 얘기다. 사장에게 몇번이나 컴퓨터 교체를 건의했으나 사장은 "나중에"라고만 되풀이하고 자기일 보기에 바빴다.


나희가  다니는 'f 갤러리'는 패션업체였고 사장 h는 프랑스유학파 디자이너였다. 처음엔 대기업에 속해 일하다가 자기 회사를 내겠다고 사직을 하고 강남 싼 자리에 회사를 차린것이다. 이제 서른 중반이 조금 넘은 이를ceo로 대접한다는게 나희로선 선선한 일이 아니었다. 나이차도 얼마 안나고 자기보다도 세상을 겪지 않은듯한 그녀가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불안불안했다.

그래도 일단 급여는 또박또박 나오니 나희는 더좋은 일자리가 나올때까지,라는 자기만의 조건을 내걸고 계속 근무를 하고 있다.




당장 그 다음주로 잡혀있는 패션쇼 일정을 체크하는데 나희의 전화벨이 울린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보자 휴일임에도 텔레마케팅 전화였다. 나희는 짜증스런 동작으로 그 번호를 차단한다.

오늘쯤 기원을 만나는게 맞지 않나, 싶자 갑자기 허탈감이 밀려든다. 그러는데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기원이다.

"심심하다. 넌 뭐하니?"

그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나희는 그 심심할 시간에 둘이 만나는게 어떻냐고 답문을 보내고 싶지만 저쪽이 먼저 언급도 않는데 그러기는 싫어 "회사"라고 짧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어쩌면 기원이 회사로 올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는 패션소를 주관하는 기획사 a에 업무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모델들에게 쇼일정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단체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고나서야 옆에서 마시지도 않은 커피가 다 식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차...커피를 사왔지...하면서 나희는 가볍게 몸을 풀고 커피를 한모금 들이킨다. 그러자 온몸에 달달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그녀는 커피의 향을 음미한다....향도 달달하다. 이래서 그녀는 라떼를 제일 좋아한다.


남은 커피는 창가에서 마시려고 그녀는 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도심의 휴일은 적막하다 못해 서글프다. 저만치 차고 넘치는 대형 쓰레기통이  메트로폴리스의 민낯을 보여주는듯하다...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아래서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게 보인다. 누군가 싶어 미간을 좁혀가며 자세히 보니 1층 편의점 그 남자다.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마치 오래 사귄 연인에게 하듯 자연스럽기만 하다...

기원과는 오래 사귀었어도 저런 나이브함이 없었는데....


"일 끝났음 내려와요!"라며 그가 그녀를 향해 소리친다.

한 10년 만난 연인같다...

그녀는 자기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창에서 떨어진다. 가게로 내려와서 뭘 하자는 건지...그녀는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오는데 옆자리에 잊혀진채 놓여있는 아까 그 드라이 플라워가 눈에 띈다. 이제 수명이 다 했으니 버리는 것이 맞겠지만 왠지 안됐다는 생각에 그녀는 빈컵에 물을 담아다 꽃을 담가놓는다. 그렇게 해주면 마치 되살아 나기라도 하는것처럼...


잠시 잠을 잔거 같다. 패션쇼 사전 업무를 모두 처리하고 나자 갑자기 잠이 쏟아졌고 그렇게 그녀는 잠에 곯아 떨어졌다.

꿈에서 익숙한 느낌의 어떤 남자를 만난거 같다. 마치 오래 알고 지닌듯한...기원이었나? 그라기에는 너무나 다정했다. 아니라면 누구였을까...

아마도 기원을 만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같아. 그녀는 마침내 용기를 내기로 한다. 그리고는 기원에게 전화를 걸지만 신호음만 계속될뿐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예전에도 기원은 바쁘거나 귀찮으면 누구의 전화라도 이런식으로 따돌림하기 일쑤였다. 사람은 안 변하는구나,하면서 그녀가 그만 포기할 즈음,"어"하는 기원의 응답이 들려온다.



그 순간 전화를 쥔 그녀의 오른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혀가 굳어지는 느낌이 든다.

"우리...볼까?"

그말에 기원은 한참 답이 없다.

"좀더 시간을 갖자고 하지 않았든가?"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그 말에 나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해선 안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재회초기가 재이별할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어느 블러거의 글도 떠오른다. 조심해야 하는데 자기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사무실이야..."

나희는 기원이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왜...특근이야?"

나희는 할말이 없다. 너를 만났어야 하는건데 애먼 일만 하고 있다는 말은 차마 입으로 나오지를 않는다.

"무리하지마"라고  말하고 기원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우리가 다시 이어지긴 한걸까....

나희는 꺼지는 액정을 보며 자기 둘의 관계도 이렇게 꺼져가는 것만 같다.


언젠가 봐야 할 자료여서 나희는 해외 퍠션 동향이 실린 외서들을 읽기 시작한다. 퇴근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지만 집에 가봐야 기원의 생각만 할게 뻔해 날이 저물때까지 회사에 남기로 한다. 그러다보니  배가 출출해 온다. 김밥....하며 그녀는 다시 아래 편의점으로 향한다.


"어서 오"하던 그가 "퇴근해요?"라며 그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온다.

"아뇨...배 고파서.."라며 그녀는 김밥 매대로 가서 삼각깁밥 두개를 집어든다. 그리고는 계산대로 오자 그는 "난 이거 뜯는걸 아직도 몰라요"라며 계산을 해준다.

"알려드릴게요"라며 나희는 삼각김밥 뜯는 법을 그의 앞에서 시범을 보인다. 그러자 그는 "아!"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그녀가 편의점을 나서는데 "저기요!" 하며 그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희가 돌아보자, 언제 퇴근하냐며 그가 멋적어 한다. 얼핏 나희보다 한두살 위쯤으로 보인다. 그러면 가정이 있는 남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희는 주초에 해야 할 일 까지 미리 해둔 터라 시간이 널널하다. 둘은 편의점 앞 계단턱에 나란히 앉아 삼각깁밥을 먹는다. 보통 한개만 먹어도 배가 부른 나희였지만 그날은 왠지 두개를 사고 싶었고 그렇게 나머지 하나는 정민의 몫이 되었다. 나희가 시범을 보였음에도 정민은 삼각깁밥을 잘못 뜯어 엉망을 만들어버린다. 그걸 보고 나희가 안타까워하자 정민은 "이게 어렵네"하면서 여전히 비닐에 붙어있는 김을 손으로 떼어낸다.

"무슨 일 해요?"

그가 김과 밥이 따로 노는 주먹밥을 한입 베어물며 묻는다.

"패션일, 아니 저는 사무직이예요. 경리도 하고 메일도 보내고 일정 조율도 하고.."

"멀티 플레이어네"라며 정민이 해맑게 웃는다. 그의 잇사이세 김이 끼어있다는 말응 나희는 차마 하지 못한다.

"난 웹디자인해요."

그말에 나희는 어디선가  그 일에 대해 본 기억이 난다.

"대강 알아요 어떤 일인지" 하자 그는 폰으로 인터넷을 클릭한다. 그리고는 한 쇼핑몰 페이지를 보여주면서 자기가 만든 화면이라고 자랑하듯 말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아이처럼 귀엽기만 하다.

"일요일에도 일하러 나온거 보면..."

"..."

"남친은 없나보다"

그말에 나희는 그도 싱글임을 직감한다. 그러고나서 조금은 민망했는지 정민은  옆에 놓인 생수를 들이킨다.

"조금있음 알바생 오거든요? 그럼 어디 가서 영화라도 볼까요?"라며 정민이 애써 용기를 낸다. 나희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기원과는 다시 이어진게 확실한가? 그럼에도 한달째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오늘도 만나자는 자신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녀가 대답없이 머뭇거리자 "제가 괜한 말을"하며 정민이 제안을 무르는 모양새를 취한다.

"아뇨 봐요 영화"

그말에 정민의 주저하던 얼굴이 금방 환하게 펴지면서 빛이 다 난다.

"가방만 들고 올게요"라며 나희는 쏜살같이 사무실로 달려간다.




나희는 자기가 컴퓨터를 켜놓은채 나갔다는걸 뒤늦게야 알고는 전원버튼을 누른다. 이놈의 기계는 켜질때나 꺼질때나 한참 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기계가 완전히 꺼지고 그녀가 막 핸드백을 집어드는데 사무실 문이 덜컹 열린다. 정민이라는 생각에 "다 됐어요"라며 문가를 쳐다본 나희는 하마트면 놀라서 주저앉을뻔 한다.  기원이었다. 도무지 움직일 기미가 없던 그가 왔다...

"기원씨.."

하면서 다가가는데

"다 됐어요?"라며 정민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온다.


두남자는 서로를 어색하게 쳐다본다. 그러더니 기원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아니라고 나희가 손사래를 치려는 순간 기원은 문가를 막고있는 정민을 밀치고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그의 뒤를 따라 나가려는 나희를 이번엔 정민이 잡는다. 오랫동안 봐왔다고. 이시간을 기다려왔다며 그가 뜬금없는 고백을 한다. "미안합니다. 영화는 아무래도"하고 그녀가 그를 빗겨가자 "사람갖고 장난합니까?"라는 새된 소리가 날아온다. 그리고는 전에 본적없는 굳은 표정을 지어보인다. 나희는 무엇이든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어떤말도 나오지를 않는다. 정민은 한참을 쏘아보더니 등을 돌려 복도를 걸어나간다.그렇게 두남자가 나간 뒤 열린 문틈으로 어두운 복도를 한참 보던 그녀가 물이라도 한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돌아서는 순간, 아까 자신이 유리컵에 담가놓은 드라이플러워가 눈에 들어온다. 더이상 생명도 없는걸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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