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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May 21. 2023

소설 <조금 아는 여자의 사랑>

현태는 지난가을 이후 단 한통의 전화나 한편의 메시지도 없이 침묵을 유지하더니 겨울이 끝날무렵 장문의 메일 한통을 보냈다.

살고 있는 세가 만기 돼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동안 집값이 너무 올라 엄두가 안 난다며 어디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이주와 거주의 자유가 있거늘 그걸 물어오는 데에는 다른 속내가 있으리라고 혜원은 생각한다. 그말은 곧 이사비용이나 집을 새로 구하는데 드는 돈을 대달라는 뜻인 걸 그녀는 잘 안다.  그러자 휴, 한숨부터 새어 나온다.


"나랑 살거야 나중에?"

" 제발 유치한 생각좀 하지마. 힘들때 서로 돕고 케어해주는 정도지, 같이 살기는.."

이라며 늘 그녀의 애절한 마음에 생채기를 내면서도 딱히 아니라는 답을 유보해 그녀를 혼란에 빠트리기 일쑤였다. 그런게 벌써 3년이 다 돼간다. 그러는 동안 서로가 어긋나거나 다른 상대가 생겨  헤어졌다가는 관성이라도 작용하는듯 다시 붙고 그런 상태로 또 어긋나고를 반복했다.



"거기가 그렇게 비싸?"

라고 혜원이 묻자 그는 "내가 가진게 없잖아. 그러니 죄다 비싸보이는거지"라며 그는 예상대로 돈 이야기를 꺼낸다.

혜원은 딱히 결혼은 아니어도 같이 살겠다는 마음조차, 대답조차 미루고 회피하는 이 남자에게 더는 심적, 물질적 도움을 준다는게 너무도 부질없다 느낀다. 더는 안된다는...

그녀는 몇번을 이문장 저문장을 썼다가 끝내는 답문을 쓰지 못한채 노트북을 닫는다.  더이상은 그에게 휘둘리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그리고는 그녀가 운영중인 북까페를 향해 차를 몬다. 이 차...

그러고보니 혜원이 늘 그에게 주는 입장만은 아니었다. 이 차만 해도, 비록 중고이긴 해도 현태가 사준 것이다. 오랜 생활고에 시달리다 두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그가 혜원의 도움과 설득으로 기사회생해서 공모에 응모한게 우수상을 받았던 것이다. 대상에 비해 반도 안되는 상금이었지만 당장의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자 현태는 그동안 누적된 채무를 중고차를 사주는 것으로  대신 한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런식으로 갚음을 해야 했다면 차를 서너대는 사줬어야 할걸...

그런 면에서 그가 교활하다면 교활했지만 혜원은 그쯤에서 돈 문제는 접기로 했다.



지금 북까페를 연것도 어찌보면 현태의 입김때문일 수 있다. 까페를 여는 데 그가 돈을 댄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나이 마흔이 되도록 기간제 교사를 전전 한다는것이 불안해 보였는지 어느날 넌즈시 북까페를 언급했고 그녀는 고심끝에  대출을 받아 까페를 열었다. 대학가여서 월세가 세긴 했지만 그만큼 수입도 괜찮아서 1년만에 그녀는 오랫동안 그려운 호수인근 원룸 오피스텔 한채를 매입했다. 더블베하나 놓으면 꽉 차는 좁은 공간이었지만 그녀는 틈이 나는대로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갔고 까페가 쉬는 날이면  현태와 그곳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 책을 보고 호수를 산책하다 근처 분식집에서 가락국수를 나눠 먹고 그 옆에서 까페라떼를 마시고...


그렇게 그 원룸 오피스텔은 언제부턴가 그녀의 세컨 하우스가 되었고 현태와의 은밀한 공간이 되었다. 주위에서는 월세를 놓으면 좋을텐데라는  조언도 했지만 최소 2,3년은 그렇게 둘만의 보금자리로 활용하고 싶었다.


"너 그 오피스텔 말야"

다음날 현태는 전화를 걸어왔다. 웬만해서는 전화를 하지 않는 그였기에 혜원은 긴장이 된다.

"오피스텔 뭐..."

"아니..내가 이쪽 원룸이나 오피스텔 알아봤는데 내 돈으로는 턱도 없드라구"

지난 가을 이후  벌써 흐른 세월이 얼만데 현태는 그동안 서로가 소원했다는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듯 했다. 혜원의 오피스텔에 들어와 살겠노라 지금 선포를 하는게 아닌가...

"나도 생각좀 해봐야지"

"...차는 잘 굴러가지?"

라며 현태는 자기가 사준 차를 감안하라는 식의 말을 한다. 치사하다. 그렇게 치자면 아직 그에게 받을 빚이 너무도 많다.



"난 여자가 싫어. 여자들 꼬물대는 거, 난삽한  사고방식 싫고 암튼 다 귀찮아"

현태는 어느날 작정한듯 내뱉았다.

아마 혜원의 아파트 단지 어디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한 말이이라...

"그리고 난 지금 여자를 옆에 둘 형편이 못돼. 나 사는걸 봐"

그말에 혜원은 어이없음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었다. 자신과 몸을 섞고 적지않은 돈을 가져가고 여행을 같이 가는 남자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올까 싶었다.

"그럼 난 여자 아냐?"

"시끄럽다"

그러고는 그는 피우던 담배를 눌러끄고 한숨을 내쉬며 허공에 눈을 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혜원은 이 관계가 너무나 고달프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들어온 현태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소파를 다 차지하고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코를 기 시작한다. 늘 이런 식이었다. 새벽이 다 돼서야 "자냐?"라며 운을 뗐고 그제서야 둘은 기계적인 섹스를 했고 다시 무심히 남으로 돌아가 잠을 이어갔다.




그와는 늘 이런식이다. 도무지 진전이 없는. 그러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놓지 못하는...



북까페를 닫을 시간이 다 돼서 혜원이 마무리를 할 즈음 딸랑, 현관 유리문 종이 울렸다. 그녀가 돌아보자 거짓말처럼 현태가 우두커니 서있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러 왔구나, 그가 끈질기다는 생각이 든다. 현태는 아무 말도 없이 의자들을 테이블 위로 거꾸로 올리며 혜원을 돕는 시늉을 한다. 어떻게 말할까...그 오피스텔만은 빌려줄수 없다고 얘기해야 하나....혜원은 도어락을 잠그면서도 온통 그 생각이다.



이 남자가 내 생의 무엇인데 내 소중한 보금자리를 내어준다는 말인가. 안 할말로 남에게 빌려주면 돈이라도 들어오지, 현태는 그냥 지내겠다는 얘기다. 그것도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없이.

늘 이런식이었다. 처음 현태가 자기에게 다가올때도 혜원의 당시 처지, 남자 여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렇게 다가와서는 군주처럼 군림하기만 한 것이다.


현태가 다가올 즈음 혜원에게는 오래 만나온 남자가 있었다. 세상이 말하는 '건실한 사업가'이자 혜원을 알뜰히 보살피는 배려심도 남달랐지만 혜원은 어쩐지 터프하고 조금은 불량스러운 현태에게로 마음이 기울어 결국 그와는 결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간 바보스러운 선택이 아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헤어진 그는 곧바로 선을 봐서 결혼해 지금 아이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사업도 승승장구하면서...



한번인가 그에게서 메시지가 온 적이 있다. 잘 지내냐고.

혜원이 한것도 바람이라면 바람인데 그는 그에 대해 일체의 원망이나 비난도 않고 그저 혜원의 안녕무탈만을 빌어주었다. 그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혜원은 여러번을 울었다. 그리고는 절대 잃지 말아야 할것을 잃은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어쩌면 어거지로 이어진 인연이어선지 현태와는 순간순간이 어긋나고 삐걱대고 착취당하고 기만당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지난 가을 끊어진것도 혜원과 있는 자리에서 다른 여자와 한시간 넘게 통화한게 화근이었다. 그것으로 혜원이 화를 내자, 자신을 구속할 거면 헤어지자고 했고 그렇게 사단이 났다.



그리고는 처음 연락이 온건데 혜원의 오피스텔을 쓰자는 것이다. 둘 사이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하지만 현태는 이미 결정한듯 했고 그가 한번 마음먹으면 기어코 해내고야 만다는 것을 알기에 혜원은 반은 포기하는 심정이 된다.

그렇게 현태가 거들어줘서 퇴근을 조금 앞당긴 혜원은 이제 현태 입에서 나올말만 기다리면 된다.

"어디 가서 소주 한잔 할까?"

현태도 헤어져있던 지난 몇개월이 서먹했는지 술을 권했다. 하지만 혜원은 운전을 핑계로 거절했다.

"그럼 길거리에 서서 이야기 하자고?"

그는 조금 기분이 상한 얼굴을 하더니 못할것 없다는듯이 이야기를 했다.

"니 집좀 빌리자. 일단 6개월만. 월세 내면 되잖아"

하지만 혜원은 그가 결코 그녀에게 월세를 낼 리가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이 되질 않는다. 이상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난 몇개월 떨어져있는 동안에도 왠지 그와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이 안들더니 이렇게 또다시 이어지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둘은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생각좀 해볼게"

"그래 그럼 "

하더니 현태는 차를 두고 왔는지 버스 정류장쪽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저 남자를 또 볼 일이 있을까, 혜원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차에 올라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딱 일주일후, 현태는 아직 잠도 덜 깬 혜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 니 짐좀 가져가라..."

현태와 함께 그 오피스텔을 골랐고 그때 정한 도어락 비빈을 여태 바꾸지 않았다는게 여간 후회되지 않았다. 그렇게 현태는 자기 소유의 집을 돌려받기라도 하듯 혜원의 오피스텔을 차지해버렸다. 혜원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게 있었지만  애써 참았다. 아니 그걸 행동으로 옮길 자신이 없었다. 헤어져있던 그가 막무가내로 자신의 영역으로 밀고 들어오는걸 어쩌면 사랑이라 믿은 걸까?


그렇게 며칠이 흐른후 그녀는 까페문을 일찍 닫고 그 오피스텔로 향했다. 중간에 마트에 들러 현태가 좋아하는  광어회와 과일 몇가지,캔맥주를 사고 그 옆 남성복 아울릿에서 현태의 수트 한벌도 구매했다. 그렇게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오피스텔에 도착해 위를 올려다보니 자신의, 아니 현태의 방은  불이 켜져있다. 그가 아직 깨어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어두운걸 몹시 싫어하고 거부반응을 보여 섹스를 할 때도 늘 불을 밝혀둬야했다. 그것이 혜원으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혜원은 1층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그리고는 버튼을 누르는데 옆의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그리고는 귀에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 요즘 영화 재밌는거 있어?"그 말에 혜원은 고개가 홱 돌아간다. 그순간 현태와 혜원의 두눈이 허공에서 부딪치고 이어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둘 사이를 파고든다.

"누구야 오빠? 아는 사람?"

"응. 여기 집주인 . 좀 아는여자"


그 말에 혜원은 들고 있던 양손의 짐을 놓아버리고 만다. 그렇게 당황한 혜원은 아랑곳 않고 현태는 여자의 어째에 팔을 두른채 주차장을 빠져나가 멀리 사라져간다...



(4) Foreigner - I Want To Know What Love Is (Official Music Video)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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