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검색을 통해서야 인애는 준수의 대상 소식을 알게 되었다. 사전통보라는 게 있어서 족히 사나흘에서 일주일전에는 준수가 당선 소식을 알았을테고 그러면 제일 먼저 자신에게 알렸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의 마음속엔 수만가지 물음표가 떠오른다.
119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때 준수는 거의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다급히 달려나온 응급실 간호사의 이런저런 지시에도 그는 눈도 뜨지 못하고 이름도 말하지 못하고 산송장처럼 들것에 누워있었다. 인애는 그 순간 울컥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리 된것이 다 자기탓만 같았기 때문이다.
둘은 늘 돈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준수가 요구하는 돈은 점차 금액이 높아져만 갔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수천대의 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25평 아파트가 전재산인 인애로서는 그야말로 사채를 끌어다써야 가능한 그런 정도의 돈까지 요구했다.
얼마전 바꾼 차에도 굳이 외제 루프박스를 얹겠다고 징징대는 그를 보며 인애는 이 남자의 정신연령이 몇살일까 궁금했다. 필요하면 직접 달아!라고 소리쳤지만 몇분 지나지도 않아 인애는 이미 결제 마지막 단계를 클릭했다.
"너 장인애 아냐?"
2년전, 연극 <동물원 이야기>를 보고 나오는데 누군가 뒤에서 인애의 팔을 사납게 잡으며 물어왔다.
돌아본 인애는 누군가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 나 준수. 허준수"
그제야 인애는 잠깐 다녔던 야간 대학원 문학과의 선배라는 걸 기억해내고 마지목해, '아...'하고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인애는 서른이 훌쩍 넘어 대학원에 진학했고 거기서 학교신문을 편집하게 되었다. 짧은소설 꼭지를 만들어 준수에게 청탁을 했다. 당시 준수는 아내와 별거중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이미 이혼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학부때 이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실력파였고 소설뿐 아니라 이따금 시며 평론도 유수의 문예지에 발표하는 작가였다
"야, 내 짠밥이 고작 학교신문이야?
준수는 단칼에 인애의 원고청탁을 거절했고 인애는 더 푸쉬를 하지 못하고 밤새워 직접 글을 썼다. 그리고 퇴고를 마칠 즈음, 띵, 하는 메일 알람이 왔고 준수가 보낸 짧은 소설원고를 받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인애가 쓴 소설은 쓸모없게 돼버렸지만 그래도 기꺼이 인애는 그의 소설을 신문에 실었고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일을 계기로 둘은 두어번 술자리를 같이 했지만, 이렇다 할 뒷얘기 없이 인애는 도중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이후 둘의 관계도 끊어졌다.
그게 이미 한참 전임에도 준수는 대학로 극장에서 인애를 단번에 알아보았고 인애는 그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어디가서 술이나 먹자"
준수는 마치 사나흘 전에 본 사람처럼 살갑게 굴었고 인애는 그닥 내키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를 따라 호프집으로 향하고 있다.
"애는 처가 키워"
묻지도 않은 말을 준수는 잘도 쏟아내었다. 그렇게라도 자신이 현재 혼자임을 강조라도 하는듯이. 다시말해, 그 누구와도 사귈수 있다는 암시를 하는 것 같았다.
인애는 그저 아,...하며 듣기만 하였다.
"넌 시집 갔구? "
그 질문을 하고 나서 준수는 목이 마른듯 아직 한참 남은 맥주를 한번에 다 마셔버렸다.
인애는 짧았던 s와의 만남을 얘기할까 하다 그만두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인애의 대답에 준수는 꽤나 흡족해 했다.
이후, 준수는 자기 신간이나 글이 올라올때마다 거의 제일 먼저 인애에게 알리곤 하였다. 인애는 그때마다 고맙다, 축하한다,는 형식적 인사를 했지만 내내 어색한 감정은 어쩔수가 없었다.
딱히 사귀는 것도, 그러자고 한것도 아닌 사이에서 이런 일이 꽤 오래 진행되자 둘 사이에 무언의 어떤 약속이라도 이루어진 것 같고 그에게 이미 매인것 같은 속박감도 들었다.
싫은 사람에게 이리 하지는 않으려니 하면서 그와의 결혼을 가끔 상상해보았지만 결론은 그리 낙관적이지가 않았다.
준수는 대학원 시절, 이른바 '바람둥이'로 명성이 자자했고 인애가 그만 둘 무렵에는 강사 h와 영문을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잘은 몰라도 아마도 그런 일련의 일들로 이혼을 해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학교를 그만두고나서도 어쩌다 준수가 떠오르면 인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곤했다.
어느날밤, 아니, 새벽이 거의 다 돼서 인애는 전화벨이 울리는걸 듣게 된다.
누구지? 하고는 발신인을 확인도 않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술취한 준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니집 앞이야"라는 준수는 마치 오랫동안 연애라도 한 사이처럼 곰살맞게 굴었다.
"지금 늦었어요 선배"라고 하자,
"커피 한잔만 안될까? "라며 그는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신새벽에 인애의 거실에서 마주 앉은 준수는 예상과는 달리 조금은 데면데면해 하면서 인애가 커피와 함께 내온 꿀물을 마셔댔다. 이럴거면 왜 굳이 들어온다고 한걸까, 인애 역시 어색하고 내심 피곤했다. 그러다 여명이 밝아을 즈음,
"우리 사귀자"라는 준수의 폭탄 선언에 인애는 "네?"하고 화들짝 놀랐다.
인애가 할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그는 인애의 손을 잡아왔다. 이렇게 또다른 남자가 내 인생에 들어오는구나...인애는 반은 체념한 채 그를 받아들였다.
준수는 유난히 낚시를 좋아해서 최소한 철마다 한번씩은 남도를 찾곤 했다. 그때마다 들어가는 비용 일체는 오롯이 인애몫으로 떨어졌다. 그는 이혼후 '형편이 점점 안 좋아져서' 서울 외곽 고시원이나 다름없는 원룸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양육비도 보내지 못한다고.
인애는 자주 책을 내고 그나름의 인세도 받을 그가 그렇게 산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선배는 왜 나 초대 안해?' 정도로 마무리했다.
인애가 ,다니던 외국계회사를 그만 두고 현재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준수는 이런식으로 수시로 돈을 가져갔다. 처음엔 액수가 크지 않아 인애는 거절않고 내주었지만 점점 그 액수가 불어나더니 어느날은 차를 바꾼다면서 2천 이상의 돈을 요구하였다.
"선배, 내 형편 알잖아. 퇴직금으로 근근이 사는거"
"그렇지..미안하다 없던 얘기로 해" 해놓고는 2,3일수 그는 다시 차 타령을 했다. 해서 인애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받고 그에게 새차를 뽑아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느 루프박스며 그밖의 이런절런 부품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인애는 점점 준수가 부담이 됐고 그가 정말 원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돈일수 있다는, 어쩌면 자신의 집일지 모른다는 의혹에 휩싸여갔다. 어쩌다 이런 내색이라도 할라치면 준수는 '그럼 다 집어치워! 그렇게 나를 못믿을거면!'이라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게 아주 관행이 되었다.
연애기간에 돈이 오간 사이가 순조롭게 결혼까지 가는 확률은 거의 없다는 글을 읽고 인애는 이만 준수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그가 심장마비를 일으키던 날도 그 문제로 집에서 둘은 한바탕 싸운 뒤였다.
"야, 그럼 마지막으로 밥이나 먹고 헤어져!"라며 준수가 앞장을 섰고 인애도 마지막으로 밥 한끼 못 먹으랴 싶은 마음에 뒤를 따랐다.
그리고는 그는 청운 터널을 지나자마자 얼굴에 식은땀을 흘려대더니 급기야는 갓길에 차를 주차시키고 왼쪽 가슴을 움켜쥐며 그대로 의식을 잃은 것이다.
"어떻게 되시죠? 보호잔가요?"
응급실 간호사의 날선 질문에 인애는 달리 할말을 찾지 못하다 얼결에 '약혼자'라고 둘러댔다.
"진짜 보호자는 없어요?"
간호사는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인애를 쏘아보며 물었지만 인애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인애가 우물쭈물하는 상이 준수의 사태는 점점 더 위급해지고 들것은 여기저기 검사실로 돌고 있다.
인애는 이 모든게 집에서 나오기 전 준수에게 이별을 통보한 자신의 탓인거 같아 무거운 죄책감에 주저앉을 것만 같다.
그리고는 잠시후 의식이 돌아온 준수는 병원임을 알아차리고 "그래도 살았네?"라며 희죽 었었다. "나 심장이 안좋거든..."
그리고는 4박 5일을 그는 입원해서 혈관 조영술과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병원비좀 내라, 나, 이번에 공모낸거 있거든. 그거 나오면 몽땅 줄게"
그렇게 해서 인애는 간병과 함께 700에 가까운 병원비를 대납했다. 대상이 2000이니, 700정도는 문제없다는 준수의 말을 믿기로 하고.
그러나 준수는 대상 통보를 받고도 여러날을 침묵한 것이다.해서 인애는 그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그러나 그에게선 한시간이 넘도록 답문이 오지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제일 먼저 대상수상 소식을 자신에게 알렸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서운함이 인애를 서운하게 했다. 그러고 있는데 준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 그돈 700떼먹을까봐 그래?"
그말에 인애의 의식은 혼미해진다. .마치 며칠전 준수가 차안에서 의식을 잃던 때처럼...
"그게 아니구, 축하한다는 말..."
"그거 아니잖아. 아직 타지도 않은 상금에 압류 거는거잖아!"라며 그는 발끈해서 소리친다.
인애는 순간, 자신의 통장잔고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준수를 만난 뒤 무한대로 넘어간 돈이 과연 얼마며 자신에겐 얼마가 남아있는지를 확인해야겠다는 불안이 그녀를 엄습한다. 전화기에서 준수의 욕설이 쏟아져 나오는 동안 그녀는 잔고를 확인하다...집을....집을 내놔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