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일은사랑>

죄송하지만 부분 포장이사도 가능한가요?

by 박순영

“뭐야 나 아침에 생선 안먹는거 몰라?” 규혁은 예상대로 조기를 보고 짜증을 낸다. 안그래도 은진은 한소리 듣겠다싶었지만 어제 퇴근하고 장보는걸 깜빡 잊은탓에 냉장고 안엔 조기밖에 없어 망설이다 구운 것이다.

“미안, 어제 장을 못봤어..”

규혁은 조기를 사정없이 헤치더니 살을 한점 떼서 입에 넣는다. 그리고는 잠시후 켁켁거리며 이봐, 가시 걸렸잖아,라며 버럭 화를 낸다. 어디봐, 하고 은진이 그의 목을 보려하자, 니가 보면 알어? 하고는 에이, 하고 일어나 그대로 출근한다.

“병원 들러” 은진의 말을 무시하고 그는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은진은 3년전 거래처 직원으로 규혁을 처음 만났다. 밥 한번 먹자는 그의 청에 응한게 지금 동거까지 이어진 것이다. 둘은 함께 붓고 있는 적금만기가 되면 식을 올리기로 하고 일단 살림을 합친 것이다. 그러나 근래 와서 사소한걸로 자주 부딪치고 규혁은 심심찮게 은진의 문자를 씹기까지 한다. 예전엔 곧잘 서로 점심시간에 만나 같이 밥을 먹기도 했지만 요즘와선 도통 그런기억이 없다. 그에게서 문자를 씹히기라도 하면 그날은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전부터 규혁이 후배 여직원 K의 이야기를 종종하는것도 신경이 쓰인다. 어리버리해서 자기가 다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 나 지금 연애중,으로 들리는건 나만의 착각인가, 그녀는 혼란스럽다.

안되겠다 싶어 은진은 점심시간이 임박해서 규혁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고 연락한다. 다른날같으면 핑계를 대고 거절할 그가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흔쾌히 응한다.

그렇게 둘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만나 예전에 가던 음식점으로 간다. 후미진곳에 있어선지 점심시간임에도 손님은 그닥 많지 않다. 아침에 병원은 들렀구? 은진은 사뭇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말에 규혁은 , 물좀 먹으니까 내려갔어,라고 대답한다. 그럼 가시걸린게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에 은진은 조금은 억울해진다.

“우리, 점심 같이 한 지 얼마만인줄 알어?” 은진이 묻자,“ 그런가?”라며 그가 심드렁하게 받는다. 그리고는 잠시후 찌개정식이 나올때까지 둘 사이엔 별말이 없다. 3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변질된게 은진은 안타깝다.

“우리, 결혼 앞당길까?” 은진이 첫 수저를 뜨며 묻는다.

“돈이 어딨어!” 그가 대뜸 짜증을 낸다.

“적금, 거의 만기고”하자, “중간에 깨자고?”라며 그가 싫다는 티를 역력히 낸다.

이남자, 나를 사랑하긴 하는걸까, 은진은 그런 생각이 든다.

“실은...”은진이 운을 떼자, 이번엔 그가 말을 자르며 말한다.

“우리 시간좀 가질까 서로?”그의 이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뭘까, 그녀는 곰곰이 생각한다.

“어차피 세도 만기돼가고” 라는 그의 말에, 헤어지자는 이야긴걸 그녀는 깨닫게 된다. 이말을 하려고 오늘 점심같이 하자는 은진에 제안에 토를 달지 않았구나 싶다.


처음 살림을 합치자고 한건 규혁이어다. 데이트후에 바래다주는 게 귀찮다면서. 그렇게 시작한 동거 생활을 이젠 그가 깨자고 한다. 은진은 , 혼인신고라도 하자.는 말을 하러 나온터라 기가 차다.

“무슨 뜻이야 정확히?” 은진이 되묻자, 나 빨리 들어가야 해.라며 그가 계산하고 먼저 식당을 나간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 어쩌면 K라는 신입 여직원탓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그녀는 한다.

그렇게 은진도 회사로 돌아가지만 내내 실수만하다 팀장에게 호된 질책까지 듣고 뒤늦게 퇴근하던 그녀는 결심한다. 규혁의 말대로 갈라서기로.

“왜 아무말도 없어?” 규혁이 늦은 저녁을 먹으며 은진에게 묻는다.

“우리...자기 말대로”

“뭐..낮에 한말? 없었던걸로 해” 그가 두루뭉술 넘어가려한다.

“아냐. 이야기 끝내.” 그녀가 단호하게 나오자, 그가 수저를 내려놓는다.

“진짜야? 후회안해?”

“안그래도 나도 비슷한 생각 했어. 그래서 낮에 만나자고 한거야.”라며 그녀는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 맘대로해! 라고 그가 버럭 화를 내며 식탁을 떠난다. 그래 이길밖에 없는거야,라는 그녀의 눈에 벽에 걸린 ,둘이 제주도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들어온다. 저런짓을 왜 했나, 그녀는 후회스럽다.

다음날 저녁 규혁이 퇴근하고 왔을 때 그녀는 외곽 원룸 하나를 구두계약했노라 이야기한다. 그말을 들은 규혁은 ,그러시든가요! 라며 비아냥댄다. 아침에 생선을 내놨다고 타박하는 정도의 관계라면 더 이상 같이 살 의미가 없다고 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라 그길로 동네 수퍼며 철물점에 들러 자기 물건을 담을 박스며 청테잎, 그밖의 이사도구를 산다.

양손가득 그것들을 들고 들어서자, 내가 도와줘? 라며 규혁이 팔을 걷어 부치는 시늉을 한다.

“필요없어. 혼자 할수 있어.”라고 내뱉고 그녀는 구해온 박스들에 자기 짐을 하나씩 넣는다.

“잘 생각해”규혁이 그녀에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러자 은진은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온다. 저런 무책임한 사람을 믿고 3년이란 시간을 허비한게 아깝기만 하다...그렇게 한참 자기 짐을 싸는데, 밖에 나갔던 그가 다시 들어온다. 이거, 하며 목장갑을 내민다.




“이거 사러 나간거야?”은진이 쏘아붙이자 “손다치잖아”라고 그가 히죽 웃는다.

“내가 지금 장난하는거 같아?”은진이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한다.

“오늘이 마지막인줄 알어”라고 그녀는 맹세하듯 말하고 그날밤 규혁의 품에 안긴다. 규혁은,내가 잘못했어,라며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그나름으로 노력한다. 그러고 있는데 규혁의 전화벨이 울린다. 이미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울리는 벨이라 규혁은 사뭇 긴장한다. 회사에 일이라도 생겼나,하고는 전화를 보더니 받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순간 은진은 발신인이 K임을 직감하고 얼른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온다. 나 전화좀,하더니 그는 아예 밖으로 나가버린다.

저런놈하고 다시 잘 해보려고 한 내가 병신이다,라며 은진은 아까 싸다만 짐을 마저 꾸린다.


그냥 일과 관련해 모르는게 있어 걸려온거라고 규혁이 아무리 해명해도 은진의 마음은 이제 돌이킬수 없을 지경이 돼있다. 그러자 규혁도 체념을 했는지, 같이 해줘? 라며 은진의 짐싸기를 거들기 시작한다. 그걸 보자 은진은 부아가 치민다. 어떻게든 말리면 못이기는 척 주저앉을 생각이었는데 이남자, 이제 거들기까지 하는구나, 생각하니 이젠 정말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집은 보증금이 얼마래?” 은진의 짐을 싸던 규혁이 물어온다. 무슨 집? 하자, 구두계약했다면서,라고 그가 묻는다.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보증금 이야기를 들은터라 돈을 준비해갔음에도 차마 진짜 계약을 할 수 없어 생각좀 해보겠노라 되돌아왔는데 규혁은 둘의 결별을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설음이 복받친다. 그리고는 다시 그에게 매달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애써 자제하고 남은 짐을 마저싼다.


그리고는 다음날 정말 그 집을 계약한 그녀는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퇴근후 집에 들어서는데, “어? 이거...” 하는 규혁의 소리가 들린다. 왜? 하고 묻자, 이거, 우리 애기거...라며 규혁이 아기 신발 한 켤레를 들어보인다. 그걸 보자 은진은 머릴 한대 세게 맞은것처럼 멍해진다.


작년 이맘때, 며칠 계속 속이 메스꺼워 혹시나 하고 찾은 산부인과에서 임신 6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떡하냐며 울먹이는 그녀에게 규혁은 뭘 어떡해, 낳아야지,라며 좋아했다. 하지만 은진은 식도 올리지않은 상태에서 애를 낳을수 없다고 고집하고, 그일로 둘은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규혁이 양보해서 간단히 식을 올리기로 합의를 봤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은진은 출근길 버스 안에서 하혈을 한다.

“임신 초기엔 조심해야 하는데”라며 여의사가 끌끌 혀를 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그 며칠 규혁과 함께 사들인 아기 용품들을 품에 안으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기 신발, 모자, 배냇저고리,딸랑이....그걸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넣어놨다는걸 이제야 알아차리고 그녀는 아이를 잃었을 때처럼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이건 어떡하지? 버려?” 규혁이 조심스레 묻는다. “버리긴 왜 버려!”그녀는 쏘아붙이고 자기 짐 속에 아기용품을 차곡차곡 넣고 테잎으로 붙인다. 그리고는 “아기용품”이라고 매직으로 써넣는다. 그걸 본 규혁이 은진을 가만히 안아온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면 안되겠냐고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이삿짐트럭 불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말에 규혁은 그녀에게서 떨어진다. 그러더니, 너 정말 이러기야! 라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은진은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묵묵히 짐을 싼다. 그러다 이쁘다 싶으면 그때마다 한두개씩 사들인 식기며 법랑들이 떠올라 부엌 선반을 열어젖힌다.


그걸 본 규혁이 , 어쭈! 야, 나 밥 먹을건 놔둬! 라며 와서 그녀의 손에 들린 그릇이며 수저들을 뺏는다. 굶어! 은진이 소리친다. 치사하다 진짜...왜, 변기, 니돈으로 갈았으니까 저것도 떼어가지 왜? 그가 발끈하자, 그럴까? 하고는 그녀는 욕실로 가서 변기 뜯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뜯어지나 봐라, 내가 전문가 불러줘? 했더니 은진이 매섭게 그를 쏘아본다. 그리고는 그릇을 정확히 반만 남기고 죄다 박스에 담는다. 독하다 독해.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 내린다는 말이 그냥 있는게 아니었어,라며 규혁이 혀를 찬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이삿짐 몇시에 오라고 했어?”그가 묻는다. “좀 있음 와”라며 그녀가 시간을 본다.

“출근은?” 그가 묻자,“월차냈어.”라고 그녀가 대답한다.

그러자 규혁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박스들을 현관쪽으로 옮겨놓기 시작한다. 바보, 지금이라도 잡으면 될걸, 그녀는 그런 그가 야속하기만 하다.

“아기용품이라고 쓰인건 살살 다뤄!”그녀가 주의를 주자, 규혁은 그 박스를 찾아내 정말 조심조심 옮긴다.

“우리 마지막으로 밥이나 먹구 헤어지자”규혁이 말한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그러든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그러고는 집앞24시 콩나물국밥 전문점으로 간다. 가끔 규혁이 숙취상태로 들어오면 둘이 곧잘 가서 해장을 하던 곳이다.

보글보글 끓는국엔 여느때처럼 달걀한개가 둥둥 떠있다. 후후불며 먹기 시작하던 규혁이, 가끔 연락해도 되지? 라고 묻는다. 이 인간이 정말 끝을 보려나,싶은 은진은, 연락해서 뭐하게?라고 쏘아붙인다. 알았어. 그럼 잘살아. 문단속 잘하고. 라고 말한다.

아침을 같이 하면서 혹시나 재결합의 계기가 마련될까 했던 은진은 이제 비로소 모든게 끝났음을 인정한다.

처음부터 연이 아니었어, 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아이를 잃었을 당시엔 죽을것처럼 아프고 슬펐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끝날 연이었다면 차라리 잘된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무 놈이나 만나지 말고” 규혁이 다 먹고 끄윽 트림하면서 마치 여동생에게 훈계하듯 말한다.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네요” 그녀가 맞받자,

“같이 살자고 얼씨구나 합치고 그러지도 말고”

“야, 강규혁! 아무려면 너만도 못한놈이랑 또 살까봐!” 그녀가 참지못해 소리를 내지른다.

그렇게 각자 더치 페이를 하고 식당을 나오니 저만치 작은 이삿짐 트럭 한 대가 와있는게 보인다.

“왔네” 규혁은 그렇게 말하고 담배 한 개비를 불당긴다.

“담배 피지 말라고 했지 내가!” 은진이 쏘아붙이자

“마누라처럼 이야기하는거 봐, 대박” 하고 규혁이 어이없어 한다.

“맘대루 해!”히고 은진이 트럭쪽으로 간다. 그리고는 인부 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규혁이 실실 웃으며 다가온다.

“수고하십니다. 죄송하지만 부분 포장이사도 가능한가요?"라고 인부들에게 묻는다.

왜? 하는 표정으로 은진이 쳐다보자, 야, 나 이집 보증금 올려줄거 없단 말야. 같이 가.라고 한다. 어딜? 하던 은진은 어이가 없다. 부분포장은 되지만 요금이,하고 인부 하나가 추가금 얘기를 하려하자 , 은진이 말한다. 저남자 짐이니까 저남자한테 청구하심돼요,라고.


야, 애기 낳고 키우긴 넘 작잖아, 새 집에 들어서며 규혁이 내뱉은 첫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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