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프렌치 마들렌>

희원은 상상한다. 그와 '그녀'의 이쁜 결혼식을.

by 박순영

PD황이 일주일 휴가를 내는 바람에 희원은 7일치 원고를 한꺼번에 써야했다. 그렇게 메일로 원고를 송부하고 나니 새벽 5시. 잠자리에 들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황은 이탈리아 여행을 간다고 했다. 대학시절 배낭여행으로 갔을 때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와서 또 가게 된거라며 히죽거렸다. 이번엔 약혼녀와 함께 간다며 무척이나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 부럽다...하다가 한번도 가본적 없지만 아득하게 향수를 일으키는 남도 M시에 가보기로 한다. 그리고는 예전 같은 프로그램 글을 썼던 예인에게 전화를 건다. 같이 갈래? 그러자, 어쩌지? 나 이번에 작업 들어가는데...하면서 에둘러 못간다는 말을 한다.

같은 작가 교육원에서 둘다 드라마 작가를 꿈꿨고 예인은 라디오를 거쳐 벌써 TV단막극 두편을 내보내고 이번에 6부작 특집에 들아간다고 한다. 희원은 예인의 승승장구가 부럽기만하다. 그렇다고 라디오일이 그보다 못하다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예인은 자기 꿈을 이루지 않았는가. 작가교육원에 원서를 낼 당시 희원은 다니던 회사에서 이유도없이 해고통보를 받고 넋이 나간 상태였다. 어느날 출근해보니 자기 책상이 치워진걸 본 후에야 자기가 잘렸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순간 뇌리를 스친 얼굴이 여고동창 예인이었다. 우리 같이 글 쓰지 않을래? 그말에 예인은 글이라면 지겹다,고 했다. 당시 예인은 교양주간지 취재기자로 근무할때였고 당연히 글이라면 넌더리가 날터였다. 그럼 할수 없지, 희원이 말하자, 무슨 글? 하고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렇게 둘은 작가 교육원에 등록, 면접을 거쳐 기초반에 들어가 내내 함께 글을 썼다.

어쩌지? 이번 특집 끝나면 꼭 한번 가. 나도 M시는 꼭 가고 싶거든. 예인이 위로라도 하듯 다음을 기약한다. 그래서 희원은 혼자선들 못가랴싶어,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다음날 일찍 집을 나선다. 창가에 자릴 잡고 배낭을 위에 윗선반에 올리는데 자꾸만 굴러떨어진다.그렇게 배낭과 실랑이를 하는데 누군가 거들어준다. 고맙,하고 옆을 보면 자기 또래 한남자가 여행 가시나봐요, 하며 웃는다.


그렇게 3시간 반을 희원은 석우와 나란히 앉아 남도의 그 도시로 향한다. 그는 이것좀 드세요, 하며 과자같은걸 내민다. 희원은 처음 보는 과자였다. 레몬향이랑 버터맛이 일품이라며 그거 먼저 먹어보인다. 그제야 희원은 과자를 한 개 집어 살짝 깨물어본다. 그의 말대로 레몬향과 버터맛이 기가막히게 어우러져 자연히 두 개나 더 집어 먹고 난뒤, 죄송해요 제가 아침을 걸러서, 라는 궁색한 변명을 해야했다. 출출할 때 자주 사먹는거라며 다 드셔도 돼요, 라고 그가 웃는다.


석우는 반도체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반도체가 뭐예요? 하고 묻자, 휴대폰 칩 같은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더 이상 설명해봐야 희원이 알아들을거 같지 않다고 판단하고 그는 거기까지만 설명한다. 희원은 낯이 붉어진다. 여태껏 반도체를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해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기차는 3시간반을 달려 M시 중앙역에 도착한다. 즐거웠어요,하며 석우가 먼저 헤어지는 인사를 한다. 일단 숙소부터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저만치 보이는 안내소로 가던 희원은, 저기요! 하고 부르는 소릴 듣는다. 어디 묵으실건데요?


그렇게 둘은 게스트하우스 한곳에 나란히 들어선다. 4인실이지만 숙박객은 자기 둘 뿐이다. 이거 호텔이네,라며 석우가 좋아라 자기 짐을 푼다. 2층침대 두 개가 가지런하고 채광도 좋아서 흰색 커튼을 뚫고 해가 쏟아져 들어온다. 저 해가 지금 바다에도 떨어지고 있겠구나, 생각한 희원은 빨리 바다가 보고싶다. 전 좀 씻고 올게요,하며 석우가 욕실로 향하다, 아참, 하고 자기 휴대전화를 챙긴다. 순간 희원은 기분이 상한다. 내가 자기 전화라도 만질까 의심하네,라고. 하지만 잠시후, 그가 다시 전화를 갖고 와서 희원에게 맡긴다. 아무래도 샤워하는데 걸리적거릴거 같아서,라고. 그제야 희원은 기분이 풀어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희원은 그의 전화 액정을 본다. 석우와 어느 여자의 다정한 사진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여친인가보다, 하고 일별하고 자기 전화옆에 가진런히 놓는다. 그때 예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바다구경했어? 지금 나갈거야. 그랬다가 ,좀 있다,라고 덧붙인다. 같이 움직이기로 한것도 아닌데 왠지 희원은 석우를 기다려야 할거 같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를 나온 둘은 근처 냉면전문점에 들러 물냉면을 한그릇씩 시켜 먹는다. 아, 시원하다, 라며 웃는 석우의 미소가 해맑다. 여행, 오신거죠? 희원이 묻자,만날 사람이 있어서요,라고 그가 조금은 쓸쓸하게 대답한다. 순간 희원은 이 남자, 헤어진 여자를 만나러 왔구나, 전화기 바탕 화면의 그 여잔가보다, 라고 직감한다.

스카이워크부터 가보자는 석우의 말에, 난 바다부터 보고싶은데,라며 희원이 고집을 피운다. 그래서 둘은 버스를 타고 가까운 해안으로 간다. 바다는 희원의 예상대로 한낮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이 나고 저멀리 떠있는 부표들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 이냄새,하며 희원이 바닷공기를 흡입하자, 석우도 따라 해본다.

그렇게 바다에서 한시간쯤 보낸 뒤 둘은 스카이 워크를 걷고 케이블카에 오른다. M시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본 뒤 미니그네를 함께 타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그리고는 초록과 빨강이 어우러진 인근섬에 도착한다.이게 양귀비예요. 라고 그가 알려준다. 말만 들었지 희원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양귀비여서 신기해한다. 섬은 작고 아늑하다. 그러다 석우가 시간을 본다.그걸 본 희원은 약속시간 다됐나봐요,조심스레 묻는다. 약속하고 온거 아니예요,라며 석우가 예의 쓸쓸한 미소를 내보인다.


다른코스는 다음날로 미루고 희원은 먼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다. 석우는 그녀를 만났을까, 이야기는 잘 됐을까, 그녀는 샤워준비를 하며 그런 생각을 한다. 피곤한 탓에 10시도 안돼 그녀는 자기로 한다. 이상한건 몸은 피곤한데 잠은 깊이 들지 않는다.잠깐동안 H를 만난거 같다 꿈에서...그러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뜨면 석우가 돌아와있다. 내가 깨웠나 보네요, 그가 미안해하며 말한다. 친구 잘만났어요? 희원이 묻자, 그는 대답대신 씻고 올게요 하며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한다. 잘안됐나보다, 희원은 석우가 안됐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날은 L광장에서 열린 버스킹 구경을 하다 근처 베이커리에 들어가 빙수 1인분을 시켜 나눠먹는다. 빙수는 이렇게 나눠먹는 맛이라고 석우가 웃으며 말한다. 희원은 왠지 고백해야 할거 같아 용기를 내서 말한다. 제가 살짝 휴대폰 바탕화면을 봤어요,라고 .하자 석우는 그랬어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맞다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M시에 온거라고...남친 있어요? 라고 그가 되묻는다. 석우에겐 감출 필요가 없다 생각돼 희원은 H의 이야기를 한다. 일때문에 알게 된 인디음악을 하는 친구였고 6개월을 사귀다 일방적으로 차였다고. 그러자, 석우는 그렇군요,라고 대답한다.




그날 4시를 조금 남기고 석우는 이따 게하에서 봐요,라며 희원을 남기고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희원은 혼자서 명물바위며 근린 공원을 돌고 지친몸을 택시에 구겨넣는다. 오늘은 그가 꼭 만나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하다 깜빡 잠이든다. 아가씨 다왔어요, 라는 기사의 말에 눈을 뜬다. 샤워를 하면서 그녀는 역시 어제 본 바다가 제일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위 부표며 쏟아져 내리던 그 햇살....


그녀가 씻고 욕실에서 나오자, 자기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석우가 눈에 들어온다.그의 낯빛으로 봐서 오늘도 잘 안됐구나,싶다. 왠지 그의 가녀린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로 다가가는데, 그가 애써 웃음지으며 저녁 먹을래요? 물어온다. 둘은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무인기앞에서 각자 먹을걸 주문한다.희원은 새우버거, 그는 치즈버거를 주문하고 제로콜라 하나씩을 추가로 누른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거 먹음 안되는데,라며 그가 애써 웃어보인다. 그러다, 그가 얼른 고개를 돌린다. 울고 있다 그가....오랜 사랑인가보다, 희원은 생각한다. 그렇게 그는 한참 고개를 돌리고 있더니, 새우버거가 더 맛있어보인다며 농을 하다 울먹인다. 헤어지지않기로 했는데... 그의 음성이 떨린다. 서울에서 남도 이 먼곳까지 오로지 헤어진 여자를 보기 위해 온 이 남자의 순정이 아름답다고 희원은 생각한다. 그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석우의 전화다. 석우는 일순 긴장하며 발신인을 확인하곤 미안합니다,라며 자릴 박차고 뛰어나간다. 부럽다, 희원은 생각하며 남은 새우버거를 마저 먹는다.

자정이 가까워 와도 석우는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와 밤을 함께 보내나보다, 싶어 희원은 그를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그는 들어선다. 그의 밝아진 모습에 희원이 안도한다. 그녀가 마음을 돌렸구나, 싶다. 전 오늘 올라가는데,하자 석우가 저는 하루 더 있다요... 해상크루즈를 같이 타기로했다고 한다. 순간 희원은 그에게 악수를 청한다. 왜요?라는 표정으로 그가 물어온다. 저 이제 가잖아요..라고 희원이 대답한다.

그리고는 체크아웃을 하고 희원이 나오는데, 바래다줄게요,하고 석우가 따라나온다. 그럴 필요없다고 해도 그는 굳이 그녀와 함께 택시에 오른다. 택시 안에서 석우가 말한다.크루즈관굉이 끝날즈음그녀에게청혼할거라고. 잘되길 빌어요,희원이 말하자, 고맙습니다,한다.


그리고는 역사에 도착하자 그가 두리번거린다. 뭐 찾아요? 희원이 묻자, 저깄네,하며 석우가 저만치 베이커리를 향해 앞장선다. 베이커리에 들어가 무언가를 찾는 시늉을 하더니, 있네,라며 그가 프렌치 마들렌 한통을 사서 희원에게 내민다. 올라갈 때 먹으라며. 고맙습니다. 희원이 마들렌을 받으며 대답한다.

남은 휴가는 그야말로 후딱 지나갔다. 예인은 M시가 어떻냐고 물어온다. 니가 봤어야 돼,라며 희원은 예인을 약올린다. 방영된 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그대로 보존돼있던 드라마 촬영지 이야기까지 그녀는 애써 복기하며 M시를 이야기해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고 하자,남자는 안 만났구? 예인이 슬쩍 물어온다. 만났지 당근, 희원이 석우를 떠올리며 대답한다. 어떤 남자였냐고, 다시 만날 약속은 했냐고 예인이 닦달하듯 물어온다. 그말을 들으며 희원은 상상한다. 그와 ‘그녀’의 이쁜 결혼식을.

비가 몹시 내리던 날, 녹음시간에 늦어 빗길을 뛰어오느라 희원의 바짓단이 다 적는다. 지금즘 PD황이 있는대로 짜증내고 있을걸 생각하면 조금은 고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서둘러 방송국으로 향하는데 얼핏 아는 얼굴을 본 것 같다는생각이 든다. 설마,하는 생각에 이석우씨? 하고 그녀가 불러본다. 그말에 저만치 가던 남자가 멈추더니 뒤를 돌아다본다. 그가 맞다. M시를 함께 둘러본. ‘그녀’에게 청혼할거라던 그가 맞다.

석우는 조금 주저주저하면서 희원에게로 온다. 오랜만이네요, 희원이 반기자, 대뜸 ,잘안됐어요,라고 그가 말한다.

녹음시간이 임박했음에도 희원은 그와 근처 까페로 들어간다. 해상공원을 다 돌때쯤 그녀가 결별을 말했다고 그가 침울하게 말한다. 아...자기도 모르게 희원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래서 희원이 상경한 날, 뒤늦게 자기도 상경했노라 한다. 그럴줄 알았음 같이 올라오는건데 그랬어요,라며 석우가 수줍게 말한다. 희원은 잠깐 시간을 본다. 지금쯤 오프닝이 나가고 있을거란 생각을 한다. 그러자, 일어나죠,하며 그가 먼저 일어난다. 까페앞에서 그가 악수를 청한다. 희원이 그 손을 잡는데 황 PD가 빨리 오라고 전화로 닦달한다. 연 되면 또 보겠죠,라며 그가 빗속을 걸어간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 희원도 방송국을 향해 냅다 달린다.

그때 어디선가, 레몬과 버터향이 뒤섞인 오묘한 냄새가 난다. 설마,하며 냄새의 근원지를 킁킁대며 찾는다. 그러자 새로 생겼는지 작고 아담한 베이커리가 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새로 생겼나봐요?하며 그녀가 들어서자 저만치 매대에 진열돼있는 프렌치 마들렌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홀린 듯 마들렌에게로 다가간다. 그러자, 그거 우리집에서 젤 잘나가요, 드셔보세요, 주인이 권하는 소리가 들린다.

프렌치 마들렌 한통은 금방 동이 난다. 스탭, 게스트들이 하나씩 집어 먹으니 빈 통이 된다. 강작가,이거 어디서 샀어? 황 PD가 묻는다. 그러자 요앞에,라고 하려던 희원이 고쳐말한다. 멀리 남도에서 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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