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선물같은 사랑>
내가 조그만 선물 하나 준비해놨는데 볼래요?
남자가 현관문을 두드린건 자정이 넘어서다. 효정은 간신히 잠이 들려는 찰나여서 더더욱 짜증이난다. 남자는 처음엔 초인종을 눌러대더니 급기야 쾅쾅 철문을 두드려대는 것이다. 효정은 잠옷차림으로 문을 연다.
“무슨 일이죠?”그녀의 못마땅해하는 표정을보고 그가 잠시 주춤한다. 그의 팔엔 여느때처럼 그 강아지가 안겨 있다.
“예삐가 아파서요.”라며 그가 난감해한다. 그쪽 차좀...그말을 듣는 순간 효정은 어이가 없다. 지금 개가 아프다고 차를 빌리자는 말인가.
“그러지 말고 콜하세요”
“한번만요.”
어째 그가 쉽게 단념할거 같지 않아 효정은 잠시만요,하고는 잠옷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차키를 든채 집을 나선다. 운전은 제가 해도 되는데 , 라며 그가 말한다. 급하다면서요,효정이 앞장서 승강기로 간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한테 차키를 맡긴다는게 영 내키지 않아 운전은 효정이 직접한다.
“죄송합니다. 제 차가 지금 수리중이라...”
동물병원앞에 차를 대자마자 남자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이미 내려진 병원 셔터를 죽어라 쳐댄다. 차 안에서 그걸 보던 효정은 혀를 찬다. 그런다고 열리랴. 그런데 잠시후에 셔터가 올려지고 동물병원 유리문이 열린다. 궁하면 통하는구나, 효정은 깨닫는다. 그리고는 자기도 차에서 내린다.
효정은 아직 남자의 이름조차 모른다. 효정이 보다 저렴한 월세를 찾아 기어들어온 아파트 바로 윗층에 산다는것만 안다. 지난번 집주인에게서 월세를 올려달라는 전화를 받던날 1년넘게 해오던 편의점 사장에게서도 그녀는 전화를 받는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가게를 폐업하게 됐으니 그만 나오라는. 그런 안좋은 소식을 연거푸 듣고 효정은 당장 어떻게 사나, 고민하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외곽의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 단 두 동이 전부인 소규모단지에 근린시설이나 기타 아무것도 없이 달랑 구멍가게 하나와 미용실, 철물점이 있는게 다인 그야말로 열악한 주거 환경이었지만, 일단 보증금 500에 월세가 적다는것만 보고 덜컥 계약을 한 것이다. 일단 한숨을 돌리자는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집이 고맙기까지 했다. 효정 수중의 돈으로 외곽이나마 서울 한자락에 살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그런데 이사 온 첫날, 피곤해서 막 곯아떨어진 그시각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에 그녀는 잠이 깬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바로 위였다. 윗층에서 개를 키우는구나, 그녀는 짜증이 치민다. 어릴 때 동네 개한테 물린 이후로 애완견이든 애완묘든 반려동물이라는 그 개념 자체가 싫었던 그녀는 왜 하필,이란 생각이 들면서 이사를 잘못왔구나,싶다. 들리는 소리로 봐서 성견은 아닌듯싶다.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마디 해줘야 할거 같다는 생각에 다음날 일찍 위로 올라가 그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무슨...”하고 그가 파자마 차림으로 문을 연다.
“죄송한데요, 밤에는 개좀..”하자, 남자는 아, 어제 예삐가 좀 아팠어요, 한다. 개 이름이 예삔가 보다, 남자의 작명 센스가 올드하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암튼 좀 부탁드려요, 라고 하자 남자가 새로 이사 오셨나봐요?묻는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않고 자기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동네도 둘러볼겸 그녀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그렇게 내려오는 승강기를 기다리는데 문이 열리더니 윗층 남자가 예삐라는 그 강아지를 안고 타고 있다. 남자가 먼저 효정을 알아보고 , 안녕하세요 , 인사한다. 효정도 마지못해 눈인사를 하고 그의 품에 안긴 예삐를 본다. 예삐도 효정을 뚫어지게 본다. 조금은 두려움이 담겨있는 눈이라는 인상을 그녀는 받는다.
“운동 나가시나봐요”“ 남자가 예삐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예삐가 좀 아파서 며칠 걸렀어요,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남자의 후줄근한 차림이나 출근준비로 바쁠 시간에 개 산책이나 시킨다는 걸로 봐서 이 남자도 백수구나, 그녀는 생각한다.
그렇게 둘은 승강기에서 내려 현관 유리문을 나란히 나선다.
”이쪽으로 돌면 개천도 나와요“라고 하지만 효정은 일부러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그때까지도 그의 이름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동물병원에 들어서자 예삐는 곧 숨이 넘어갈것처럼 헐떡인다. 의사는 긴장된 얼굴로 이런저런 응급조치를 한다. 그렇게 10여분이 흐르자 예삐는 다시 고른 숨을 쉬게 된다. 그걸 저만치서 지켜보던 효정은 자기도 모르게 휴,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걸 느꼈는지 그가 돌려 그녀를 본다. 둘의 눈이 마주치자 효정은 왠지 민망해, 잘됐네요, 하고는 유리문을 밀고 병원을 나간다.
”예삐가 심장이 안좋아요“ 집으로 오는길에 그가 말한다. 응급조치를 받고 간신히 되살아난 예삐는 그의 품에 안겨 잠들어있다.
그런 말을 듣자 효정은 왠지 예삐가 안돼보인다.
”정민기라고 합니다“라고 그가 통성명을 하고자 한다. 효정은 자기 이름도 알려줘야 하나 망설이자, 이효정씨?하며 그가 싱긋 웃는다. 그건 어떻게,라고 하자, 지난번 세금고지서 봤다고. 왜 남의 세금고지서까지...라는 생각이 들어 이 남자 오지랖한번 넓다, 그녀는 생각한다.
”언제 차 한찬 대접할게요“라며 그가 헤어지며 말한다. 그러든말든, 한밤중에 문이나 두드리지마, 하는 얼굴로 효정은 그와 헤어져 집에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아직 아침도 안먹었다는걸 깨닫고 그녀는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간단히 요기를 한다. 그러는데 정민기,라며 자기 소개를 하던 그가 퍼뜩 떠오른다. 내가 뭐하는거야,하며 효정은 생각을 떨쳐낸다. 그리고는 구인란을 검색한다. 왜 내가 들어가는 회사들은 줄줄이 도산 아니면 폐업일까, 내가 불길한 기운이라도 몰고 다니는걸까,라며 그녀는 씁쓸해진다.
며칠후, 초인종이 울려 효정은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한다. 민기였다. 이 남자 또 무슨, 하며 짜증부터 나는걸 간신히 참고 효정은 문을 열어준다. 시간되시면 올라오세요. 제가 차 한잔 대접할게요,한다. 이남자 민폐덩어리구나, 효정은 귀찮은 생각에 예삐는 괜찮죠?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려하지만, 레몬차 있거든요, 그가 계속 어필한다. 그래서 효정은 할수없이 윗층 그의 집으로 올라간다.
둘이 들어서자 저만치서 깽깽 짖으며 예삐가 달려온다. 자기한테 엉겨붙으면 어쩌나, 효정은 겁을 먹지만 예삐는 민기의 다리를 휘감으며 계속 꼬리를 흔들어댄다. 이놈 안물어요, 민기가 예삐를 안으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뉴스를 보면 , 우리 개 안물어요,라는 말이 비호감 1위라는걸 떠올리며, 효정은 그깟 레몬차 한잔 얻어먹겠다고 따라온 자기가 한심해진다.
”실은 같이 살던 친구가 입양했는데..“라며 민기가 예삐의 내력을 알려준다. 같이 살던,이란 동거를 뜻할까, 그녀는 잠시 궁금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결혼까지 약속했는데..“민기가 말끝을 또 흐리자 효정은 살짝 그가 안돼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예삐를 입양했다는 ‘그여자’가 개도 데리고 갔어야 하는거 아닌가,싶을 때 마침 민기가 말을 잇는다. 예삐는 놓고 가라고 했다고. 여자를 붙잡진 못하고 그녀의 개만 데리고 사는 못난남자, 효정은 생각한다. 그렇게 레몬차를 나눠마시고 자기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한참을 그의 말을 곱씹는다. 나랑 무슨 상관인가,하면서도 그가 계속 뇌리를 맴돈다.
그 다음날 민기는 생선이 싱싱해 많이 샀다며 생선이 가득한 비닐봉지를 그녀에게 내민다. 내가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하면서도 효정은 애써 웃어보인다.
”차 한잔 줄래요“ 그가 조심스레 청한다. 생선까지 받아든 마당에 야멸차게 거절할수 없어 효정은 일단 들어오라고 한다.
”오래는 못있어요 예삐가 혼자 있어서...“
그 말에 ‘그여자’가 그렇게 좋았음 죽어라 붙잡었어야지 놓쳐서는...효정은 커피를 내리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자 지난 봄 모질게 헤어진 그가 떠오른다. 이젠 너를 봐도 안고 싶지가 않아,라던 그가....자기의 이별또한 이 남자만큼이나 못났다,생각하면서 그녀는 방금ㅁ 내린 커피 두잔을 갖고와 그와 마주앉는다.
”집이 이쁘네요.“ 이쁘고 말고 할 것도 없는데 그는 인사치레까지 한다. 그런걸 보면, 사람이 좀 맹해서 그렇지 나쁘진 않은거같다,효정은 생각한다.
”하시는 일은...“ 효정은 조심스레 묻는다. 그러자, 그냥요...글 써요. 영화 시나리오,라고 그가 수줍어하며 말한다. 아, 작가였구나,그녀야 효정은 그가 자기처럼 완전 백수는 아니라는걸 알게 된다. 그런데 그는 효정이 놀고 있는걸 알기라도 하는지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되풀이하진 않는다. 그런거보면, 이 남자 배려심도 있어,라고 그녀는 잠깐 생각한다.
철지난 장마치곤 꽤나 비가 퍼붓던날, 민기는 예삐가 없어졌다며 가쁜 숨을몰아쉬며 그녀를 찾는다. 그말에 효정은 그런데 왜 나한테...하려다 만다. 대신 어쩌다요,하고 묻자, 청소한다고 현관문을 열어놨는데 그 사이에..라며 그가 안타까워한다. 비오는날, 현관까지 열어놓고 청소할건 또 뭐람,하면서도 그녀는 카디건을 주섬주섬 걸치며, 같이 찾아봐요,한다.
그렇게 둘은 쓰나마나한 우산을 쓴채 세찬 빗속을 예삐를 찾아 헤맨다. 자기 개라도 되는양 효정은 예삐 이름을 목놓아 부른다. 그러나 한시간을 빗속에 이곳저곳을 뒤져도 그 조그만 강아지는 보이지 않는다.
”한번도 이런적이 없는데“라며 민기가 안절부절한다.그런 그를 다독이며 일단 쉬라고, 효정은 말하고 자기가 좀더 찾아보겠노라 한다.
그러다 퍼뜩, 지난번 그가 말한 개천이 떠올라 그쪽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곳에서 비를 맞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예삐를 보게 된다.
”이자식 어디갔었어!“라며 그가 다 젖은 예삐를 효정으로부터 받아들며 감격에겨워한다.일단 목욕부터 시키세요, 하자 고마워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그가 과할정도의 감사치레를 한다. 그렇게 둘을 올려보내고나자 효정은 왠지 헛헛한 느낌이 든다. 그러고보니 민기와 레몬차, 커피도 나눠마시고 생선까지 나누고 개도 같이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남자와 나는 무슨 연이 되려고 만난걸까, 그녀는 궁금해진다.
그리고는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지난번 민기가 준 고등어가 뒹굴고 있는걸 본다. 그래, 찜을 하자. 해서 갖다주자,효정은 생각한다.
”안그래도 무넣고 찜해먹음 맛있겠다 생각했는데“라면서 그가 환하게 웃는다. 같이 해요 점심, 그의 말에서 그녀는 따스함을 느낀다.
예삐는 고등어 한점이라도 얻어먹을까싶어 식탁주위를 계속 맴돈다. 민기가 먹구싶어 예삐? 하자 예삐는 깽깽대며 어서 달라고 발버둥을 친다. 그런 예삐를 보다, 효정은 살을 조금 떼어내 가시를 발라 예삐입에 넣어준다. 개는 좋아라 먹는다. 그런 효정을 민기가 물끄러미 본다. 둘의 눈이 그렇게 서로 마주치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그리고 잠시후 괄괄해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여자 하나가 현관에서 민기와 허그하는걸 효정은 보게 된다.
여자가 있었어,라며 효정은 자신이 바보같다 생각한다. 딱히 그를 좋아한다는 마음은 아직 없지만 어쩌면 그렇게 발전할수 있다고 생각이라도 한것처럼 그녀는 실망과 배반감을 동시에 느낀다. 고등어찜까지 해서 갖다 바친 자신이 완전 바보라는 생각을 한다.
다음날 분리배출하러 나가다 민기를 마주친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아무말도 안한다. 그가 몇마디 해도 못들은척 하자 민기도 입을 다문다.
그러고 난뒤 한동안 민기나 예삐와 마주치지 않는다. 이사갔나? 효정은 생각하자 왠지 예의 또 헛헛한 느낌이 밀려든다.
어느날, 효정은 한군데 면접을 보고 축 늘어진채 차를 몰고 단지로 들어선다. 그때 마주오는 승용차를 보고 길을 터주는데,그 차가 자기앞에 와서 서는걸 보게 된다. 누구지?하는 그녀에게 차에서 내린 민기가 다가온다. 아, 공업소 갔다는 그 찬가보다,그녀는 생각한다. .하지만 차는 거의 새것처럼 보인다.
" 얼마전에 고료가 좀 들어와서요"라며 민기가 짐짓 새차임을 강조한다.지난번 그녀와 허그를 하던 그여자가 떠올라, 차 좋네요, 마지못해 한마디하고 그녀가 주차시키려 방향을 잡는데, 그때 오해한거 같아서요,라며 그가 그녀를 따라오며 말한다.
순간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번 내 영화 감독,이라고 그가 그녀의 정체를 알려준다. 그말을 듣자 효정은 더 발끈한다. 그바닥은 그렇게 막막 허그하고 그래요? 그러다 뽀뽀도 하고 그러겠네? 잠도 자고...자기도 모르게 방언처럼 터져나온 말을 그녀는 주워담지 못해 난감하다. 그러자 민기가, 그렇게 화났어요?”라고 묻는다. 효정은 당황해서 주차하다 그만 뒤 화단에 차를 박고만다.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녀가 내리지못하고 차에 갇혀있을 때 민기가 다가온다.
“내가 조그만 선물 하나 준비해놨는데...볼래요? 지금 집에 있는데”
그말에 효정은 그게 뭘까, 궁금해하면서도 차마 뭐냐고 묻지 못하고, 대신 예삐 잘있죠?라고 묻는다. 요즘은 짖는 소리가 안들려서 이사갔나 했다고. 그러자, 민기가, 그놈 갔어요 무지개 다리 너머서.라고 대답한다.
무지개..라던 효정은 자기가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더더욱 차안에서 나오질 못한다.
그래도 편하게 갔어요,라며 민기가 그녀의 운전석 문을 열어준다. 천변에서 비에 젖어 떨고 있던 예삐 생각에 효정은 안쓰러워 하면서도 한편 이 남자, 이제야 '그여자'로부터 헤어났구나 싶다 . 궁금하지 않아요 내가 준비한 선물? 그것도 이번 고료로 산건데...
효정은 더 이상 머뭇거리다간 되레 자신의 본심을 더 들킬거 같아 차에서 내려 민기를 뒤따라 승강기로 향한다. 승강기 버튼을 누르고 내려오길 기다리던 민기가 조심스레 한손을 내민다. 망설이던 효정이 그의 손을 잡는 순간, 기계가 멈추고 문이 활짝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