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결혼식

by 박순영

주영은 며칠째 아무 연락도 없는 기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이 된다. 전화를 해도 연결이 안되고 메시지를 보내도 그에게서는 답이 없다.

그러다 늦은밤 그에게서 짤막하게 메시지가 도착한다.

"속초에 갔었어"라고만.

누구와, 왜 갑자기 동해에 갔는지는 설명이 없다. 늘 심하다싶을 정도로 깨알같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던 사인데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거때문에 온거야 여기까지?"

다음날 점심시간 기원의 회사 앞으로 주영이 찾아가자 기원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허허 웃어댄다.

"너 정말 아무 일 없지?"

그말에 기원은 물끄러미 주영을 쳐다본다.

"일이 ...있지"라며 그가 의뭉스런 웃음을 지어보인다. 순간 주영은 그게 '여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너, 여자 생겼구나"

"야, 돗자리 깔아라"며 기원이 흘러내리지도 않은 뿔테 안경을 살짝 치켜올린다.

대학 신입생때 도서관에서 자리 다툼을 하다 알게 됐으니 둘이 알고 지낸 시간도 10년이 훌쩍 넘는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크고작은 개인사를 서로 다 알고 있고 설령 숨기려 해도 들키는건 시간 문제였다.

"응. 이번에 우리팀 막내로 들어온 후밴데.."하면서 기원이 자기 앞에 놓인 생과일 쥬스를 홀짝인다.

"그런데...벌써 단둘이 속초까지?"라는 주영의 말에 기원이 씩 웃는다.

"미안, 벌써는 아니고 좀 됐지 그러니까.."라며 기원이 대답한다.

둘은 10년이상을 친구로 지낸 탓에 서로의 이성문제까지도 훤하게 꿰고있었다. 둘다 연애에는 지지리도 소질이 없어 번번이 차이든가 양다리에서 밀리든가 했고 그러면 마치 탕아가 고향에 돌아오듯 서로에게 돌아와 하소연을 해댔다. 그렇게 서로에게서 위안을 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하던 사이였는데 기원이 이번만은 심상치가 않다.

"너, 결혼까지 생각하는구나" 주영이 슬쩍 넘겨 짚어본다. "그건 아냐"라는 대답이 나오리라 예상하고.

하지만 기원은 "글쎄"라며 묘한 여운의 대답을 남기더니 회사에 들어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뜬다. 주영은 왠지 기원의 삶에서 밀려난 느낌이다.



보름후로 잡힌 회사 패션쇼 준비때문에 주영은 눈코뜰새 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여지없이 기원의 그 애매한 대답이 떠오른다 .글쎄,라던.

그러고 있는데 참가 모델 하나가 갑자기 몸이 안좋아서 무대에 설수 없다는 연락을 해온다. 중요한 포지션이어서 그녀를 빼고 갈수도 없다. 대표 s는 주영에게 대체 모델 명단을 건네고 빨리 전화를 돌리라고 한다. 주영은 오후 내내 그 일로 정신이 없다.

다저녁이 돼서 간신히 대체 모델을 섭외한 그녀가 막 퇴근을 하려고 종일 가방 깊숙이 넣어뒀던 휴대전화를 꺼내는 순간 기원의 부재전화가 세통이나 와있는걸 발견한다. 무슨 일일까?



기원은 첫눈에도 어리고 여리여리해보이는 그 '후배'라는 여자와 나란히 주영의 회사 근처 까페에서 주영을 기다리고 있다. 주영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로 가서 앉는다. 기원의 그녀는 '강해주'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여린 외모와는 달리 똑부러지는 데가 있어보이는 전형적인 요즘 세대다. 그녀를 보자 주영은 자신이 한참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넌 뭐하느라 전화도 안받냐" 기원이 그새 바뀐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물어온다.

"어..회사에 일이 좀 생겼어 . 그거 처리하느라고..."

하는데 해주라는 그녀가 "언니"라는 호칭을 쓰며 살갑게 굴기 시작한다.

"오빠가...언니한테 주라는데...부케"

그말에 주영은 머리를 세게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다. 그리고 그순간 허공에서 기원과 눈이 마주친다

"결혼, 하니?"

그말에 기원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게 됐어...속도위반"하고 그가 씩 웃으며 옆의 해주의 허리를 감싸안는다.

주영은 아직 노안이 올때도 아닌데 눈앞이 캄캄해진다...

"지난번 속초 갔을때..."라며 기원이 해주와 눈을 맞춘다.

주영은 자신이 왜 이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수가 없다.

"나는 왜 보자고?"

"너는 당연히 알아야지 베픈데..올거지 결혼식?"

아무리 혼전 임신이라도 날을 너무 빨리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보름후라니. 그러고보니 주영회사의 패션쇼가 열리는 날이었다.

"어쩌면 못갈수도 있어"라는 그녀의 말에 기원은 "왜?"하고 큰 소리를 친다.

주영은 어이가 없고 은근 화도 난다. 내가 꼭 지 결혼식에 가야 하나,그런 생각이 그녀를 스쳐간다.

"회사 행사랑 겹쳐서"라는 그녀의 대답에

"야, 나 장가가는데 니가 빠지면 돼?"라고 기원이 씩씩댄다.

그러자 해주라는 그녀가 옆에서 거든다.

"언니 안오심 섭섭해요 저..."

서로 언제부터 알았다고...



다행히 행사는 오후 4시부터였고 기원의 결혼식은 2시였다. 2시간의 텀이 있으니 빠르게 움직이면 둘다 소화할수 있다는 생각에 주영은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부지런히 머리에 웨이브를 넣으면서도 자신이 누구에게 이쁘게 보이려고 이러나 싶고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그녀는 주말이고 해서 길이라도 막힐까봐 지하철을 타고 강남으로 향한다. 피로연까지는 참석할 시간이 안된다. 그냥 얼굴도장찍고 축의금내고 예식 앞부분만 보고 나오자, 패션쇼장에는 최소 30분 전에는 도착해야한다....

마음 급한 그녀가 막 예식홀에 들어서는데 저만치서 헤벌쭉 웃고 있는 기원이 눈에 들어온다. 덜떨어진 놈... 주영은 끌끌 혀를 찬다. 그러고 있는 주영을 알아보고 기원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축의금좀 많이 내라"

그말에 주영은 어퍼컷이라도 날리고싶은걸 간신히 참는다. 대신 싸늘하게 눈을 흘기고 , 준비해온 봉투를 축의금함에 넣는다.

"해주 보려면 신부 대기실에 가봐"라며 기원은 또 반푼이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만좀 해. 좀!"하고 주영이 눈치를 주자 기원이 어리둥절해 한다.

해주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계속 사진을 찍고 있다. 이쁘긴 이쁘다...라고 주영은 생각한다. 이제 20대 중반이니 자기보다 한참 어린셈이다. 저 반푼이 놈 , 운도좋네,라며 신부 대기실 입구를 서성이는데 "언니!""하고 해주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쁘다 해주씨..."라며 그녀는 정해진 너스레를 떨어준다.


예식 앞부분만 본다는게 부케받고, 친구들 사진 타임까지 가다보니 주영은 자칫 회사행사를 놓치게 생겼다. 사진찍고 성급히 홀을 빠져나오는데 기원이 눈치도 없이 따라나온다.

"어디 가?"

"나 오늘 회사 행사 있다고 했잖아"

"태워다 줄까?"

"미친놈..."

그러고는 주영은 냅다 뛰기 시작한다.그러다 오르쪽 하이힐 굽이 삐그덕거리더니 부러져버린다.

"야 , 안되겠다 내가 데려다줄게"라며 뒤쫓아온 기원이 부러진 굽을 주우며 말한다..

순간 둘의 시선이 부딪친다.

나쁜자식...

그러나 기원은 그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뭐? 하는 표정을 짓는다.

"됐어. 이 그지같은 놈!"하고 주영은 기원의 손에서 부러진 신발굽을 낚아채 건물밖으로 뛰쳐나간다.

하지만 주말이고 예식장근처라 빈택시가 보이질 않는다. 계속 시간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주영 앞으로 리무진 한대가 스르륵 미끄러져 온다. 아직도 저러고 신혼여행을 가는 반푼이가 있나, 하고는 요란하게 풍선이며 꽃, 깡통으로 치장한 그 차를 보던 주영은 운전석에서 건치를 드러내며 자기를 향해 미소를 날리는 기원을 보게 된다.


기원이 모는'렌트한 리무진'을 타고 주영은 늦었다며 계속 투덜댄다.

기원은 차로 꽉 막힌 주말 도로를 곡예하듯 잘도 빠져나가 패션쇼 딱 10분전에 행사장 앞에 차를 갖다댄다. 그리고 둘은 서로 장한일이라도 해낸 양 서로 얼싸 안는다. 무언가 힘든일을 해내면 늘 하던 행동이었던지라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주영은 ,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그에게서 떨어진다..그러자 기원도 멋쩍어 하며 "나참 결혼했지"라고 배시시 웃는다.

"해주가 기다리겠다 빨리 가봐"라고 하자 기원은 "홧팅!"하며 난데없는 구호를 외친다.


차에서 내려 행사장 입구 회전문을 타던 주영이 힐끔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기원이 여태 가지 않고 차에서 내려 두손으로 큰 하트를 그려보이는게 눈에 들어온다. 얼빠진 놈...

그녀는 어서 가라고 손짓을 날리고 재빨리 회전문을 통과해 엘리베이터로 달려가는데 또다시 노안이 왔는지 눈앞이 흐려지며 콧물까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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