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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문구점의 기적

by 박순영

노트북 배터리가 다돼서 끝까지 쓸수 있을지 모르지만

꼭 지금 쓰고 싶은 글이 있다.

바로 엄마가 말년에 하신 '문구점'이야기다.



엄마는 여경으로 40년을 근무하시고 정퇴를 하신다음

언니와 함께 쇼핑센터에 자그맣게 문구점을 내셨다.

그리고는 언니와 함께 몇년을 꾸려가시다가

언니가 청주로 이사를 가면서 혼자 하셨다.

그때 나는 한마디로 '백수'나 다름없는 말이 좋아 '작가'지 그냥 '한량'생활을 할때였다.


그런데도 한번도 엄마쪽에서

'나와서 거들어라'라는 말씀을 안하시고

'할머니 따님은 집에서 뭐해요?'라고 지인들이 에둘러 나를 욕하면

'걔 작갑니다'라고 당당하게 얘기하곤 하셨다.


그러다 어느날엔가 내게도 '현타'라는게 와서 나는 두팔 걷어부치고

엄마 '문방구'에 나가 일을 거들었고 처음엔 물건의 위치를 몰라 한참을 헤맸지만

한달 정도 하다보니 눈에 익어 금방금방 손님께 물건을 꺼내줄수 있었다.


처음엔 '문구점에나 나가 앉아있는 루저'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걸로 밥을 먹는다면 최소한의 도리는 하자'는 걸로 바뀌었고

나이 70에도 씩씩하게 가게를 꾸려가시던 엄마가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어느해 연말, 크리스마스 이브에 몇백의 수입을 하루에 올리고 나서는

매일 이렇게 팔아대다가는 체인을 내도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고 이후로 장사는 점점 안됐고 인근에 이마땡이 들어오면서 상가전체가

'개업중 폐업'상태가 돼다시피 하였다.

급기야는 내 손으로 '굿바이 세일'이란 플래카드를 걸고는 가게를 접어야했다.



내가 '문구쟁이'를 한건 2년여가 고작이었지만

추운 날은 엄마를 대신해 일한다는 알량한 자부심이 있었고

뒤늦게 엄마가 가게에 나오시면 '왜 왔어'라며 툴툴대면서도 '이만큼 벌었어'라며 '돈통'을 열어보이며

우쭐댈수 있었다.


그렇게 문구점을 접고나서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늙기 시작하셨고

80조금 넘어 욕실에서 나오다 미끄러지면서 척추를 다치면서 독한 약을 드시고

그것으로 귀가 잘 안들리게 되었고 그것은 치매로 이어져 결국 시설에서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비록 2년여지만 내게 '사람구실'을 할수 있게 해준 내 어머니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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