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설마 다시 연락이 오랴 싶었지만 그는 약속대로 부산에 다녀온 뒤 연락을 했고 대번에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잠시 망설이다 알려줘도 될 사람같기에 번호를 주었더니 곧바로 전화를 걸어와
지금좀 h대 근처에서 보자고 하였다. 조금 성급한 느낌은 들었지만 뭐 어떠랴 싶어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다 저녁에 h대로 갔고 그와 만나 맥주를 마셨다.
알고보니, 그는 모대학 미대 교수였고 당시 나는 라디오를 쓰고 있었다.
그는 '우리 말놓죠'하며 스스럼없이 나를 대했고 나보다 한살 어린 그가 그리 싫다는 느낌이 없어 나도 말을 놓았고 최소한 그날밤 그는'오래 갈 이성 친구'' 그 선을 넘지 않아서 나는 홀가분하게 귀가할수 있었다.
당시 나는 한 외국인과 연애중이어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일 여유가 없었기에 더 그랬을수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이후로 갑자기 '도전적'으로 내게 대쉬를 해왔고 나는 당황하였다.
그는 이미 내게 따로 연인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건 뭐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는 아주 친밀한 사이에나 해댈 지극히 프라이빗한 부분까지 내게 다 털어놓는데 나는 슬슬 부담이 갔다.
그리더니 어느날은 난데없는 '청혼'을 했다.
해서 '난 니가 남자로 안보여'라고 했더니 '왜'라며 무척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이후로는 왠지 거리를 둬야 할거 같아 전화로 나오라고 하면 그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피하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상대는 짜증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어느 휴일날, 다시 h대 근처로 오라고 하여서 마지못해 갔더니
나를 보자마자 '눈썹 잘못 그렸네'라고 콕집어 지적을 하였다. 당시 나는 감기가 걸려 원래는 나올 컨디션도 아니었고 애인도 아닌 남자를 ,것도 내키지도 않는 자리에 나간다 생각하니 굳이 정성들여 화장할 필요를 못 느꼈다.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한 그는 어디 조용한 데로 가자고 했고 나는 그당시 친구들과 자주 가던 여의도 모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더니 그는 들어서자마자 툴툴댔다.
'이런데선 스킨쉽 하기가 그렇잖아. 다른데로 가자'며 나의 팔을 끌었다.
해서 '너 무슨 얘기하는거니? 니가 뭔데.'라고 나도 발끈해서 맞섰다.
그는 하는 수 없다는듯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내내 그 오픈된 공간을 불편해하였다.
그날 그와 헤어진 이후로 나는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쪽도 한달정도 연락이 없어 '이심전심 단절'로 생각했는데 어느날 연락이와서 우리 집 앞이라며 나올수 없냐고 물어왔다. 나는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한 상대라 '나, 너 별로 보고싶지 않아'라고 했더니 그말에 그는 발끈해서 '니가 어디 가서 교수남편 얻을수나 있을거 같아?'라며 당장 나오라고 재촉을 하였지만 나는 지겨움에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세월이 한참 흐른후에 , 몹시 추운 어느날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리는걸 보고는 망설이다 들어갔다. 세월도 흘렀고 그가 결혼하였다는 얘기도 들려와서 이제는 부담없이 정말 친구할수도 있겠다 싶어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나왔지만 그는 끝내 아무 연락도 주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끝났다. 앞으로도 만날일은 없을테고 무엇보다 '자신이 교수'라는걸 내세워 나를 갖겠다던 그 오만함이 나의 정서와는 너무 거리가 먼 탓도 있다.
지금은 한참 어린 이쁜 아내와 자식 낳고 사는것으로 안다. 알고보니, 엄마에게 취미 미술을 가르치던 아르바이트생의 학과 선배였고 그래서 간간이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수 있었다. 그정도의 인연이었으면, 그가 오만을 부리지 않고 자신을 다스릴줄 아는 타입의 남자였다면 내게도 시간을 좀 주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연애에 이어 결혼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마음이 하는 일이 따로 있다. 그것이 연애고 사랑이고 결혼인 것이다. 마음이 아닌 불순물이 개입하면 설혹 결혼까지 간다 해도 오래 갈수 없다는걸 이제는 안다.
물론 사회적 지위, 그에 따른 명예와 권력의 힘 자체를 부정하는것은 아니지만 왜 마음이 해야 하는일을 다른것으로 움켜쥐고 쥐락펴락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잠시나마 연이 있던 사람이고, 비록 뒤틀린 방식이지만 나와 살고싶어 한 사람이기에.
모쪼록 무탈한 여생을 보내길 바라본다.
그 누구도 너의 슬픔, 근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지만 , 너의 '실수'에 대해서는 모두가 주목을 한다. fb